여행자처럼 동네 한 바퀴를
송복련
바람을 쐬러 동네 한 바퀴를 돌아보는 일은 즐겁다. 헐렁한 옷을 입고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다니면 오래된 은행나무와 느티나무를 만날 것 같고 지나가는 장사꾼과 동네 어른들과도 마주칠 것 같다. 지금은 그런 것과는 한참 멀어져 고향처럼 변하지 않는 풍경들이 그립다, 사람들은 많아도 대부분 익명의 인물로 스쳐갈 뿐 어쩌다 드물게 아는 사람을 만난다. 그나마 익숙한 건 거리와 건물이다. 요즈음처럼 자주 임대라는 커다란 글씨가 붙은 가게를 지날 때는 마음도 텅 빈 가게처럼 어둑신해진다. 신축건물이 올라가거나 신장개업을 하면 거리는 금방 생기가 돌고 기대감으로 꼭 한번 찾아보게 된다.
한참 비었다가 새로 문을 연 디저트가게 앞에 긴 줄을 보았다고 한다. 특별한 곳인가 보다. 디저트라면 눈이 번쩍 뜨이니 당연히 가봐야지 싶은데 정작 줄을 서는 건 불만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마스크를 구입하느라 초긴장이 되었던 순간에도 쓰다 남은 마스크로 버티며 줄 한번 서지 않던 내가 아닌가. 오늘은 마침 비가 오고 있다. 평일이고 하니 설마 줄을 서지는 않을 테지. 그런데 예상은 빗나갔다. 멀리서도 줄을 선 사람들이 보인다. 좋아하는 것을 구하기 위해서 기다리는 인내도 필요하지만 구태여 경쟁하듯이 대열에 참여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벗어나고 보니 자유로움이 좋다. 더디 가는 시계를 연신 들여다보며 20분을 겨우 견뎠다.
평소 이 뒷골목을 자주 걷는다. 번잡을 피해 걷기 좋은 곳이다. 학교 담장이 길게 뻗어 있는 우회도로는 일방통행이다. 봄날 울타리 너머 개나리들이 사태지듯 넘어오는 것도 좋지만 목련꽃이 빌딩 틈바구니에서도 터줏대감인양 자리를 지키며 새처럼 날개를 편다. 녹음이 우거지면 그늘을 주는 이 길은 낮에도 좀 으쓱한 느낌이 들었다. 언젠가 벽화를 그리더니 골목이 훤하다. 부푼 기대감을 가지고 그 길을 걸어 도착했다.
프랑스어 상호 껠끄쇼즈는 말해주지 않으면 읽기 어렵다. 디저트하면 프랑스를 떠올리니 본고장의 맛을 따라 상호도 따라 가는가 보다. 두 사람씩 들여보내고 기다린 끝에 드디어 입성했다. 실내는 좁았고 진열된 시그니처 메뉴인 바닐라 타르트는 동이 났다. 그러면 우선 시각적으로 눈을 사로잡는 메뉴를 선택해야겠다. 아직 맛의 미묘한 차이를 감지할 만큼 혀의 감각은 그다지 예민하지 않다. 나 같은 사람은 굳이 유명한 곳이 아니라도 되지만 미각의 섬세함을 느끼려면 예민해져야 하고 선택 또한 중요하다. 아직 외양에 눈이 끌리니 고수가 되려면 멀었다.
테이블 두 개와 창가에 의자 2개가 전부이니 오래 앉아 있는 곳이 아니라 필요한 디저트를 사 가는 쪽이다. 좀 아쉽기는 했지만 창가에 앉았다. 디저트는 다양한 종류와 문화를 경험하기 위해 뒤늦게 가진 취향이다. 여행지를 순례하듯 카페 분위기를 먼저 살핀 다음 주문한 디저트가 나오면 오감을 동원해서 느끼려고 애쓴다. 마치 탐험하듯이 집중한다.
주문한 디저트가 나왔다. 강정처럼 ‘피스타치오’는 말린 과일과 견과류들이 버무려져 익숙하다. ‘몽블랑’은 산길을 가듯 가느다란 오솔길이 정상을 향해 감아 오른다. 정상에는 기념사진 찍기 좋은 표지석인양 금빛으로 반짝인다. 먹기가 아까울 정도지만 몽블랑을 먹을 때는 정상에 놓인 밤을 먼저 먹으라고 권한다. 럼과 위스키로 절인 통밤은 그만큼 향을 내기 위해 공을 들였다는 뜻이리라. 실력 있는 파티 시에가 틀림없다. 너무 달지 않고 텁텁하지도 않으면서 은은한 향이 배어나왔다. 천천히 음미하면서 얼그레이 프렌치 블루 티로 개운하게 입맛을 마무리했다. 베르가못향이 진한 대표적 얼그레이는 차분하게 들뜬 기분을 가라앉혔고 갈색빛 도는 찻물은 적당했다.
한가롭게 동네 한 바퀴를 돌아보면 늘 같은 것 같지만 조금씩 변화가 보인다. 새롭게 개업하거나 폐업을 하면서 부침하지만 이내 빈자리는 메워지고 활기를 띠게 된다. 도시 여행자처럼 동네 한 바퀴를 돌며 골목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숨겨진 정보를 알아내어 찾아가는 장소는 신선하고 즐겁다. 이 골목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이어져 생기가 넘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