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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빌꿍 Dec 31. 2020

12월 31일, 29살

매일이 오늘 같다면 조금 더 진중하게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시 오지 않을 걸 알아 조금은 특별하게 보내려고 했는데 월요일 출근하자마자 급박한 프로젝트를 맡게 됐다. 정신없이 한 주를 보내다 벌써 2020년이 저물어 간다. 오늘 내 20대의 마지막 날이다.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나는 간혹 책이든 TV 언저리든 후회 없이 살았다는 사람을 보면 '당신은 거짓말쟁이야.'라고 단정 짓는다. 먹고사는 일은 대개 다르지 않을 텐데 당신은 어떤 삶을 살길래 그런 확신을 말하나, 당신도 들여다보면 곳곳에 그런 순간들이 존재할 거라 생각한다.


뭔가를 적어낼 때 나는 비관적이고 조금은 비뚤어진다. 그리고 현실로 돌아가면 잘 웃고 긍정적이라는 말을 듣는다. 예전에는 저게 내 모습이고 이건 가짜며 연기다 싶었는데 지금은 어느 게 진짜인지 아님 둘 다 인 것도 같다. 그렇다 해도 싫지가 않다.


지난주 회사 사람들과 점심을 먹다 연말 계획에 대해 얘기했다. 나는 올해가 지나기 전, 20대를 돌아보고 잘 보내주기 위해 이번 주 중 오후 반차를 내고 회사에서 집까지 뛰고 걸으려 한다고 했다. 올라가자마자 그 여정에 동참할 러닝화를 주문했다. 물론 회사로. 그리고 내 작은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오늘 점심엔 코로나19로 인해 큰 타격을 받은 업종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듣다 보니 나만 꼭 힘든 게 아니다 싶었다. 그나마 영향이 덜한 업종에 종사하고 월급도 따박따박 나오며 선배들과 달리 부양할 가족이 없어 내 몸 하나만 잘 누리면 됐다. 그 사실에 다행스러웠다. 최근에 마음이  있었다. 그래야 할 것 같아 떠버린 마음과 면접을 보러 가는 일을 팀의 선배들에게 얘기했다. 갈 때도 다녀와서도 싫은 소리 한 번 안 하는 이 사람들에게 고맙다.


요즘 나는 내 일을 사랑해보려고 한다. 사랑까지는 아니어도 매력적인 부분이 있어 이따금 즐겁다. 사용자의 편의와 공간에 맞는 가구를 제안하고 설계하는 이 직업이 좋다. 이번 주는 입사하고 처음으로 프로젝트를 맡았다. 누가 나를 좋아하면 쉽게 알아채는데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과 같이 일할 수 있다는 사실도 좋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는데 알게 된 것도 같아 몸에 부침이 없다.


내일이면 정말 서른인데 아쉽지만 마냥 서글프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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