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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네 Jun 04. 2022

주간 과자 도감

春雨, 봄 비

#. 국내산 들깨, 제주 천혜향





따뜻해지는 날들에 샘이라도 난 듯,

3월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봄비가 내리 내렸다.


맑은 하늘을 보여주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흐릿해지고 토독토독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떨어진 기온에 또다시

두터운 겉옷을 찾아 입어야 했지만

조용한 동네에 내려앉은 촉촉한 공기

귀를 기울이면 창밖으로 들려오는 빗소리,

물기를 머금은 서늘해진 바람,

축축해진 땅에 흘러나오는 비릿한 향.

조금씩 고개를 드는 푸른 잎, 그위 오밀조밀 자리한

물방울은 옷장 속을 뒤적거리는 조금의 귀찮음도

넘겨버릴 만한 일이었다.



 

 




온종일 집안을 물들였던 어둑어둑했던

시간이 지나고

잠깐 그쳤을 무렵 밖을 나섰다.

축축하면서도 푸릇한 향기가  

온 동네에 퍼져 있었다.


알 수 없는 바이러스도, 저 멀리서 넘어오는 짙은

미세먼지도 막아주던 단단한 마스크는

새로 피어나는 풀과 생기를 담은 흙의 향은

막지 못했다. 한걸음 한걸을 내딛을 때마다

마스크 안으로  비릿한 비의 향과

촉촉한 풀의 향이 밀려들어왔다.


이후에도 비는 내리고 그치고를 반복했다

그 시간이 지날수록 물기를 머금은 흙에선  

하루하루 지날 때마다

조그마한 새순이 돋아났고,

겨우내 바싹 색을 잃었던 나무들은

비 내리는 순간이 길어질수록

조금씩 색을 찾아가고 있었다.





마른 가지에는 새순이 돋아날 준비를 하고

커다란 벚나무 가지 끝에는 동글동글

꽃망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집 앞에 산수유나무는 하루가 다르게

노란 꽃이 피어나더니 어느새 온 가지가 노랗게

물들어 어김없이 봄이 오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봄비가 내리던 동안 마음에 담아두었던 것들엔

안개에 물들어 수묵화 같았던 산, 사계절 언제나 좋은 영감을 주는 나무, 좋아하는 빗소리도 있었지만

그 많은 즐거움 사이에서도 잔잔히 생각나던 건

봄 비로 흠뻑 적셔진  작은 뜰.

군데군데 마른풀과 손톱보다 작은 풀이

돋아난 땅이었다.


그 조그마한 땅에서 자라나는 녹색은 자세히 보지

않으면 땅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잎이 나는

풀이었다. 조금의 흙, 손바닥 만한 작은 땅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고개를 내밀어 작은 잎을 뻗어냈다.


풀은 언제나 그렇다. 하나하나 따지지 않고

생각하지 않고 그냥 최선을 다해 뿌리를 내린다.

돌 틈 사이도, 도로 위에도, 벽 틈에도, 이번에

보게 된 손바닥 만한 땅에서도,

조금의 흙, 물 , 볕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 뿌리를

내린다. 그리고 결국엔 동그란, 세모난,

뾰족한 잎을 피어낸다.


  


구애 없이 자라나는 풀과 작은 땅에서도

짙게 풍겨오는 비의 향은 집에 돌아와서도

계속 떠올랐고 결국 책상에 앉아

하나 둘, 비슷한 느낌의 재료를

끄적여 나갔다.


고민 끝에 봄비가 내려 촉촉한 짙은 땅의 느낌과,

푸릇한 잎을 표현하고 싶어 국산 들깨와

제주 천혜향, 방풍나물을 넣어 과자를 작업했다.


국산 들깨로는 페이스트를 만들고,

앙글레즈 베이스에 페이스트를 섞고

생크림을 넣어 무스를 만든다. 무스 끝에 소량의

국내산 들기름을 넣어 향과 풍미를 더 한다


속껍질을 벗긴 천혜 양은 큐브 모양으로 썰고

잘게 썬 방풍과 제스트, 사탕수수당을 넣고

인서트를 만든 후 들깨 무스에 넣어 굳힌다.


우유 캐러멜을 넣은 초코 크루스티앙 위에

들깨 무스를 올린다. 그 위에

방풍 가나슈와 천혜향, 들깨 크라클랑을 올린 후

마지막으로 천혜향 제스트와 방풍잎을 올려

마무리한다.








봄비로 흠뻑 젖은 땅.

그 안에 움트는 것들을 상상하며

春雨, 봄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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