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cm, 천장 바르기 좋은 키

by 김보경

영상, 카드뉴스, 콘텐츠만 알던 23살의 내가 봉사 동아리에 들어갈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플랜 A–Z 어디에도 봉사활동이란 없었다. 그것도 대학 끝자락인 3학년 2학기에 새로운 동아리에 들다니. 우연히 본 홍보 게시물 마감일이 다음 날인 게 이유였을까. 마감만 되면 눈이 뒤집어지는 탓에 홧김에 지원서를 썼고, 생각보다 딱딱한 면접에 당황하며 그렇게 얼렁뚱땅 AweSome의 일원이 되었다.


봉사에는 큰 관심이 없었지만, 자칭 간생간사(간지에 살고 간지에 죽는다) 라이프에서 집수리 봉사는 말 그대로 awesome 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이름이 마음에 든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걸 좋아하는 나. 'A(하나가 모여) we(우리가 되어) Some(어떤 집이든 수리한다)'는 동아리 이름에 단단히 홀렸다. 당시 동아리에 들어오지 않을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우연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순간은 어쩌면 필연이었을지도.

동아리에 들어간 첫 2주, 동아리 분위기를 보겠다는 마음으로 술자리로 향했다. 신입생 환영회에서 4차까지 온 유일한 신입생이 된 그날부터 이미 서로의 온도에 녹아들었고, 그렇게 부푼 기대로 첫 봉사에 나섰다. ‘그래도 명색이 키가 153인데, 천장 도배할 일은 없겠지? 대신 벽은 마스터해야지!’ 동아리 친구들에게도 '천장 할 일은 없지 않느냐'는 장난 섞인 질문을 던지고는 했는데, 그럴 때마다 이해할 수 없는 답이 돌아왔다.


“우마(도배 사다리) 올라가면 네 키가 딱이다. 천장 바르기 안성맞춤임.”


짧은 키를 놀리며 그냥 하는 말인 줄만 알았지, 팔 아픈 천장 도배를 시키려고 하는 말인 줄 알았지. 우마 위에 올라서서 풀 발린 벽지를 머리 위에 얹어보기 전에는 몰랐다. 부러워하던 '큰 키'는 우마에 오르면 너무 높아서 목이 꺾이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사실을. 높은 천장에 팔이 닿지 않을 때는 여전히 모자란 길이가 원망스럽지만, 다리 높이를 조정하며 우마에 올라서는 순간과 사랑에 빠졌다. 20대 초반. 직접 경험해 보기도 전에 늘 어림짐작하고, 지레 겁먹었다.


"고학년에 동아리 들어가면 환영받지 못할 거야."

"도배, 장판은 힘쓰는 일이 많을 거야."

"키가 작으니까 천장은 못 할 거야."

"벌레가 많이 나오면 다음부터 봉사 안 갈 거야."

"봉사 동아리 사람들은 술 안 좋아할 거야."

마냥 힘들 것 같던 도배는 머리를 써야 할 일이 더 많았고, 작은 키지만 천장 도배를 가장 좋아하게 됐으며, 벌레가 많이 나온 집은 술자리 무용담이 되었다. 그렇게 도배와 장판에 중독된 지 햇수로 6년 차. 아래서는 보이지 않던 해괴한 장식이 우릴 괴롭힐지도, 누군가의 실수로 모두가 패닉에 빠질지 알 수가 없다. 결국 모든 일은 우마에 오르기 전까지는 아무도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그저 숨 한 번 크게 내쉬고, 우마에 오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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