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의 현재
아내의 글
아침마다 아이의 명랑한 목소리에 눈을 뜬다.
일어날 때 제 기분이 좋으면 혼자 웃으며 종알거리고, 그게 아니면 칭얼댄다. 이제는 혼자 방문을 열고 나가 먼저 놀기도 한다. 어쨌든 여전히 ‘강제 기상’ 20개월 차. 원할만큼 자 본 적이 손에 꼽지만 이제 익숙해졌다. 밤에 깨지 않고 잘 자주는 것만으로 고맙다.
내가 남편보다 먼저 일어날 때도 있고 반대의 경우도 있다. 전날 늦게 자서 피로가 풀리지 않았다던가 몸이 썩 좋지 않다면 상대에게 양해를 구해 조금 더 잔다. 먼저 일어난 사람은 아이의 기저귀를 갈고 아침밥을 먹인다. 아이에게 먹일 것이 없으면 부랴부랴 반찬을 만들기도 한다.
지난 3월부터 어린이집에 등원하는 아이 덕분에 아침이 더 분주해졌다. 나는 아이가 입을 옷을 고르고 짐을 챙긴다. 이불을 세탁했다면 잘 싸서 가방에 담고, 준비물이 있다면 미리 확인해서 잊지 않고 챙겨둔다. 어린이집의 요청이나 필요사항은 주로 내가 체크한다.
아직까지는 남편과 함께 아이를 데려다주고 있다. 고맙게도 아이가 적응을 잘 해서 죄책감 없이 돌아설 수 있게 됐다. 이후의 오전 일정은 매일 조금씩 다르다. 쇼핑을 하거나 은행 업무나 택배 발송 등 가정의 일을 함께 처리하기도 하고, 각자 하고 싶은 대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이를 테면 도서관에 가거나 집에서 잠을 더 자거나 카페에 방문하는 식이다.
집에서 뭘 차려먹든, 밖에서 사 먹든 점심 끼니를 때우고 나면 월-수-금요일은 학교에 가서 독서와 글쓰기 수업을 한다. 올해에는 초, 중, 고등학교를 모두 나가게 됐다. 학령에 따라 다른 방법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건 꽤 흥미롭다. 보람도 재미도 있지만 역시 수업이 끝나면 심신의 에너지가 소진되어 너덜너덜해진 채 퇴근한다.
수업이 없는 화-목요일은 더 긴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카페나 도서관에서 책을 읽거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다 아이를 데리러 간다. 엄마 아빠를 다시 만나 기분이 한껏 좋아진 아이와 산책을 하고 집에서 함께 논다.
나는 식단과 장보기, 요리를 담당한다. 모든 식사를 내가 준비하는 건 아니지만 이 분야의 결정권을 가졌달까. 남편의 의견을 존중하며 장을 보고 식단을 구상한다. 아이가 먹을 것은 대부분 내 손을 거친다. 이유식을 마치고 유아식에 돌입한 이후 오히려 손이 더 많이 가는 것 같다. 최근까지는 아이의 음식과 어른의 음식을 엄격하게 구별했는데, 요즘은 아이가 엄마 아빠가 먹는 음식에 관심(+생떼)이 많아져서 저염식으로 요리해 함께 나눠먹기 시작했다. 이 모든 준비와 실천에는 약간의 공부가 필요하고 관찰도 해야 하며 나름의 신념도 가져야 한다. 매번 백 점짜리 식사를 제공할 수는 없다 해도 포기하지 않고 영양과 입맛을 꾸준히 고려하여 식단을 구상하는 일. 사실 내가 육아의 여러 과업에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기도 하다.
결혼 4년 차에 접어든 지금은 웬만한 집밥 메뉴는 큰 무리 없이 만들 수 있다. 어떤 날은 반찬이 없어서 동시에 대여섯 가지 요리를 한 적도 있다. 우리 엄마가 딱 그랬다. 한꺼번에 일을 왕창 벌린 뒤 차근차근 정리해가는 방식. 엄마와 나의 차이가 있다면 뒷정리를 대개 남편이 한다는 점이다. 덕분에 신나게 요리할 수 있다.
밥상을 물리고 아이와 좀 더 놀다 보면 잘 시간이다. 남편이 아이를 씻기는 동안 나는 집안을 후다닥 정리하고 갈아입힐 옷, 기저귀, 로션을 준비한다. 이후의 과정은 협력이 필요하다. 물기를 닦아주고 로션을 발라주고 기저귀를 채운 뒤 내의를 입히고 수면조끼까지 착용시키면 재울 준비 끝.
조용한 밤이 되면 별다른 대화 없이 각자의 업무를 한다. 혹은 집에 필요한 걸 쇼핑하거나 개인 작업, 공부도 한다. 틈틈이 의미 없는 웹서핑과 소소한 SNS 활동까지 하면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자정이다. 이 달콤한 자유를 유예하고 싶어서 1-2시까지 버틸 때도 있지만 그래 봤자 다음 날 아침만 힘들 뿐이다.
그래도 자기 전에는 남편과 꼭 안아주며 서로의 하루를 격려한다.
"오늘도 수고했어!"
남편의 글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하면서 아침에 무조건 나갔다 와야 하는 부담이 생겼다. (물론 다녀오고 나면 꿀 같은 시간이지만!) 비몽사몽 아이를 씻기고 아침을 먹인 다음 가방을 싸서 내가 먼저 밖으로 나온다. 요새 아이는 집에 틀어박혀 있는 것을 힘들어한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어린이집에서도 짜증을 낼 수 있기 때문에 아침에 밖에서 몇 분이라도 더 놀아준다.
아내와 둘만의 자유로운 점심시간을 보장받은 게 얼마나 감사한지 새삼 느끼고 있다. 이후에 나는 화-수-목-토요일에 일을 나가는데, 일이 없거나 시간이 남는 날에는 아내를 일터에 데려다줘야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제주는 대중교통이 불편하고 그녀는 면허가 없고 우리 집엔 차가 한 대이므로. 다녀와서 두어 시간 짬이 날 때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는다. (오전에 게으름을 부렸으면 이때 집안일을 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너무 금세 하원 시간이 된다. 일을 나간 날은 퇴근길에 아이를 데려오고, 그렇지 않은 날은 아이를 먼저 찾아서 아내를 데리러 간다. 제주에 온 이후에는 계속 아내가 일하는 날 데려다주고 데리러 오는 역할을 맡고 있다.
나는 설거지, 청소를 담당한다. 설거지는 시간 될 때 하루 1회씩은 하려고 노력하고, 청소는 보이는 대로 하는 편이다. 부엌 정리, 화장실 청소, 쓰레기 분리배출은 거의 내가 전담한다. 아내가 식사 준비 분야의 리더라면 나는 청소 분야의 리더가 되어 먼저 솔선수범하고 동기부여도 해준다.
그 이후 아내가 저녁 준비를 할 때 아이와 놀아주고 같이 시간을 보낸다. 밥 먹은 후에도 자기 전까지 힘을 빼기 위해 아이와 한바탕 더 놀고 그다음 씻기고 재운다. 목욕을 하루나 이틀에 한 번씩 하는데, 저녁에 따로 일을 하지 않는 이상 거의 내가 담당한다. 비누칠해서 씻기고 머리도 감기고 헹군다. 그렇게 씻겨 놓으면 아내와 함께 물기를 닦아주고 로션을 발라주고 옷을 입힌다. 다음 날 일이 없는 사람이 보통 재우기를 담당한다. 혹시나 잠들어버려도 괜찮을 사람 말이다.
아이가 잠들고 작업실에서 비로소 개인 시간을 보낸다. 다음 날 수업 준비, 음악 작업 및 공부, 사진 정리, 일기 쓰기와 스마트폰 게임을 하면서 쉬는 것이다. 어쩜 이렇게 밤 시간은 빨리 지나가는지. 예전엔 밤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한두 시까지 깨있었는데, 요즘은 되도록 밤 12시 정도에 일을 마무리하고 잠을 청한다.
아빠들의 젠더감수성을 다룬 볼드저널 8호에 저희 부부 인터뷰가 짤막하게 실렸습니다.
바다 건너 제주까지 오셔서 이야기를 들어주신 볼드저널 팀께 감사드립니다.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이번에 나온 볼드저널 8호 정말 좋았어요.
저희 기사가 어떻게 나왔나 훑어보다가
깜짝 놀라서 그 자리에서 정독하고
언제든 다시 보려고 쇼파 옆자리에 모셔두었습니다.
아빠라면, 남편이라면, 그리고 평등을 꿈꾸는 부부라면 필독을 권해드립니다.
균형잡힌 시각과 구성도 인상적이었고, 풍성하고 다채로운 사례들이 정말이지 탄탄하게 꽉 차 있어서
소장하면서 두고 두고 보시기 좋을 거예요.
마침 브런치에서 위클리매거진으로 연재하고 있군요.
https://brunch.co.kr/magazine/modernfathers#int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