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상 차리는 사위

"이번에는 여보 차례야"

by 장보영
아내의 글



결혼 이후 명절에 더 바빠졌다. 본래 명절은 가족과 이웃들이 서로 복을 빌어주며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 먹는 좋은 날이다. 하지만 결혼을 하면 챙겨야 할 가족도, 왠지 지켜야 할 것 같은 의무들도 두 배는 늘어난다. 우리도 그랬다. 평생 듣고 보아온 명절의 풍경 따라 몸이 저절로 움직인다. 이를 테면 부모님께 드릴 용돈을 준비하고 음식 재료를 미리 구입하여 만드는 것. 고유의 영역처럼 아내는 부엌에서 떠나질 않고, 남편은 거실에서 어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 딸들이 명절에 자기 시가와 친가에서 모두 부엌일을 한다는 건 결혼하고 알았다.



양가의 가풍은 특히 명절에 더 큰 차이를 보인다. 시부모님은 가족들의 모임에 더 의미를 두는 편이고, 친정 부모님은 상차림에도 신경을 많이 쓴다. 양가 부모님, 특히 어머니 두 분은 지향하는 바가 완전히 다르다. 시어머니는 명절의 의무를 최소화하려는 뚜렷한 의지를 가지셨고, 친정 엄마는 가부장제를 정답처럼 믿고 계신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세 딸을 키운 나의 엄마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시부모님께는 가장 좋은 걸 대접해야 해."

혼수를 고를 때에도 '시부모님 오실 때 내어드릴 방석'을 사라고 하고, 근사한 식기를 보면 '시부모님을 대접할 때' 쓰라고 한다. 30년 동안 나를 키워준 엄마는 정작 본인이 받을 부모 대접에는 큰 욕심이 없고 오직 시댁! 시댁에만 잘하라고 수없이 강조했다. 정말이지 지긋지긋할 정도였다.



결혼 후 첫 명절을 앞둔 때였다. 설 다음 날이 시아버지 생신이라는 얘길 했더니 엄마가 안 되겠다며 짐을 싸들고 왔다. 그리고 우리 부부와 함께 잔뜩 장을 본 뒤 직접 팔을 걷어붙여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고기만두, 한우 불고기, 잡채, 각종 전까지. 남편은 일이 있어 금방 나가는 바람에 엄마와 나만 허리가 부러지도록 종일 음식을 만들었다. 엄마는 준비해온 저장용기를 꺼내 음식을 그득그득 담아주었다. 노동의 이유는 오직 하나뿐. 엄마는 내가 첫 명절에 '예쁨'을 받고 '점수'를 따기 원했다. 다른 날도 아니고 시아버지 생신까지 있다면 이 정도는 준비해야 한다고 하면서.



다음 날 아침, 엄마와 만든 음식을 잔뜩 싣고 시댁에 갔더니, 정작 시어머니는 크게 반기지 않았다. 애초에 '외식할 거니까 아무것도 하지 말자'라고 하셨는데 바라지도 않던 명절 음식 세트를 서프라이즈 선물로 받은 셈이었으니. 어쨌든 시어머니는 고맙다며 두고두고 잘 먹겠다고 하셨다. 어머님이 만든 음식에 이것저것 함께 차려내어 식사를 했다. 그리고 점심은 예정대로 외식. 시어머니는 내게 몇 번을 강조했다.

"다음에는 진짜로 이런 거 안 해도 돼. 알겠지?"



내가 어제 하루 종일 엄마랑 뭘 한 건가 싶었다. 엄마는 내가 정성껏 음식을 만들어 시부모님을 대접하고 야무진 손끝으로 설거지를 척척 해내는 모습을 보여야 사랑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평생 그렇게 살았기 때문이겠지. 여동생만 넷 있는 외아들과 결혼한 데다, 거기에 딸만 내리 셋을 낳는 바람에 죄인처럼 노예처럼 살아온 사람. 엄마는 나를 사랑해서 내 시부모를 위해 돈과 체력을 다 쓰며 명절 음식을 했다. 사돈을 위한 명절 노동이라니. 이 사실에 오랫동안 마음이 쓰였다.



시부모님은 명절에 가족 모임 이상의 큰 의미를 두려고 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명절이라고 어머님과 같이 음식을 한 적도 없다. 멀리 이사를 와서 이제는 명절에 만나기도 힘들다. 올해 설날에도 올라가지 못했으니까. 시어머니는 마치 오랫동안 작정해온 것처럼 전통적인 며느리의 의무를 사양하고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신다. 같은 여성으로서 감사한 마음이다.



덕분에 나는 그럭저럭 즐거운 명절을 보내고 있지만 우리 부모님이 늘 걸렸다. 명절에는 딸만 가진 부모가 더 서럽다. 딸들을 모두 결혼시키니 명절에는 쓸쓸히 두 분만 남는 것이다. 큰언니는 강원도로, 작은언니는 전남에 가서 오래 있다 와서 막상 명절 연휴에는 모일 수가 없었다. 친정 모임은 언제나 명절 연휴의 마지막 날이나 그 주 주말이었다. 우리 부부가 첫날 먼저 가서 자고 오기도 했지만 제주로 오고 나서는 그것조차 어려웠다.



작년 추석이었다. 엄마는 일 때문에 평소 우리 집에 오기 어려웠는데, 모처럼 긴 연휴가 생겼으니 친정 부모님이 여행 겸 제주에 오시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고맙게도 언니가 항공료를 쾌척하겠다고 했다. 제주행 비행기표는 일찌감치 동이 났지만 매일 새로고침을 클릭하며 어렵게 두 자리를 구했다. 명절 당일에 부모님을 만나게 되다니! 그간 내색은 못했지만 쓸쓸한 명절을 예상했던 부모님도 무척 기뻐하셨다.



부모님이 오시면 뭘 하면 좋을지 남편과 의논하다가 문득 첫 명절이 생각났다. 딸의 시부모를 위해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든 엄마. 첫 명절이니 으레 그래야 하는 줄 알고 엄마가 시키는 대로 했던 것이 오래 후회가 됐다.

내 시부모님이 아무리 진보적이라고 해도 어쨌든 시가에서 나는 최하위 계급이 된다. 남편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시가에 가면 부엌에서 안절부절못해야 했고, 시어머니 생신이라고 친어머니에게도 해 드려 본 적 없는 미역국을 혼자 끓였다. 시부모님이 우리 집에 오신 명절에는 임신 중이었음에도 떡국이며 불고기, 잡채를 만들어 상을 차렸다. 그렇게 해야 도리인 줄 알았다. 시가에 방문했다가 설거지하지 말라며 만류하는 어머니에게 내 입으로 이런 말도 내뱉은 적 있다.

"에유, 이런 거 하려고 며느리 되는 거죠!"

다시 그때로 돌아가 주워 담고 싶다. 설거지야 기쁘게 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나는 왜 굳이 스스로를 내리깔았을까.



처음으로 명절에 내 부모님을 잘 대접해드리고 싶은데, 그걸 또 혼자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사돈을 위해 음식을 만들었다면, 또 내가 남편의 가족을 열심히 대접했다면 이번에는 남편의 차례가 맞지 않을까.

명절이 다가오자 마침 웹에서 며느리에 대한 이슈가 활활 타올랐다. 남편은 '그래도 우리 집 정도는 괜찮지'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게 아니라고 했다.

"내가 얼마만큼 노동을 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야. 친정보다 시댁을 우선으로 여기고 며느리가 가족 내에서 최하위 계급이 된다는 게 문제지. 자, 여보는 처가라고 하지? 난 시댁이라고 해. 아들 쪽에는 뭐든 높임말이 붙는다니까?"

"그래도 우리는 차례를 지내거나 사람을 막 부리지는 않잖아."

"그렇지만 명절날 시댁 식구들을 먼저 만나고, 나는 뭐라도 도우려고 눈치 보느라 바쁜데 여보는 친정에서 그런 적 있어?"

"없지."

"여보는 첫 명절에 처가에서 설거지했다고 엄청 칭찬받았잖아. 내가 하면 당연히 여기는데. 그리고 그때 우리 엄마가 허리 부러지도록 음식 하셨던 것 생각나지? 어머님은 바라지도 않으셨는데 말이야. 그 생각을 하면 아직도 마음이 아파. 그걸로 딸이 시댁에서 예쁨 받길 바라셨다는 것도."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어?"

"이번에는 여보가 음식 만들어드리면 좋겠어."

"내가 다하라고?"

"응! 내가 도울게."



명절날 저녁이었다. 남편이 공항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왔다. 두 분이 싸오신 간식을 먹으며 늦게까지 이야기 나누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본격적인 명절 상차림을 시작했다. 우리는 큰 욕심 없이 갈비, 옥돔구이, 전 정도만 만들기로 했다. 잡채와 송편은 미리 구입해두었고, 밑반찬은 있던 걸로 내었지만 그래도 차리느라 손이 많이 갔다. 엄마는 갈비 양념에 간만 맞춰주셨다. 남편과 나는 한식대첩이라도 나온 것처럼 정신없이 부엌을 돌아다녔다. 남편이 다 하기로 했으니 한 발 물러설까 했지만, 부모님은 사위가 혼자 애쓰는 것보다 우리 둘이 함께 준비하는 모습을 더 좋아하실 것 같았다. 평소에도 부엌일을 자주 도맡곤 했던 남편은 하던 대로 능숙하게 요리를 하고 상을 차렸다. 예전에 엄마가 시부모님 오실 때 쓰라고 하신 귀한 그릇을 꺼냈다. 예전에는 시부모님께 내어드렸지만 내 부모님도 마땅히 쓰실 수 있다.



사위의 효도는 며느리의 그것보다 언제나 큰 박수를 받는다. 예상한 대로 역시 '너 결혼 잘했다' 류의 칭찬이 이어지고 우리는 즐겁게 식사를 했다. 일부 아들 가진 부모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대접에는 미치지 못할지라도, 사위가 차려드리는 상을 한 번이라도 받게 해드리고 싶었다. 이미 남편은 친정에서 엄마에게 수없이 대접받아왔으니까 이런 날도 있어야지.



이벤트 한 번으로 체제가 전복되진 않을 것이다. 보통의 며느리들이 겪는 노동과 스트레스에 비하면 그 양도 질도 턱없이 부족하다. 남편이 실제로 혼자 다 차린 것도 아니니 대단한 성취는 아닐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꽤 신선한 자극을 받았다.


이런 그림도 가능하구나!




'완전한 평등'은 요원해 보이지만 대화를 통해 조금씩 그곳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 우리는 계속 실험 중이다. 자라나는 내 딸에게는 이 장면이 신선하게 보이지 않기를 바라면서.











남편의 글



기득권자는 자기 권리를 쉽게 여기고 작은 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약자는 권리를 잃어버린 경험을 절대 잊지 못한다. 나도 남자로서 얻어온 기득권은 잘 인식하지 못했다. 결혼 이후 아내가 호소하듯 했던 이야기들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여성의 삶을 돌아보게 됐다.



내 입장에서 첫 명절의 기억을 더듬어 보려고 하니 생각이 잘 나지 않았다. 기억력이 별로 안 좋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게 내게 큰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장모님이 집에 오셔서 함께 음식을 해주신 덕분에 몇 년만에 명절 분위기를 제대로 느꼈다고 생각했다. 장모님께 굉장히 감사했던 게 기억난다. 하지만 사돈에게 딸을 잘 보이기 위해 생일 음식을 하는 친정 엄마의 마음은 전혀 몰랐다. 나의 시야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집에서 음식을 푸짐하게 먹으며 명절 분위기를 냈다면 누군가는 그 음식을 차리기 위해 희생한 것이다. 그 누군가는 높은 확률로 여성이다.
나의 어머니는 며느리로서 명절 노동에 동원된 것이 한이 되어서인지 이젠 명절 때 음식에 대해 큰 부담을 갖지 않으신다. 결혼 전에도 명절에 모처럼 얼굴을 뵈면 외식을 하거나 평소 먹는 식단에 고기반찬 정도를 더하는 정도였다. 내가 결혼 후에도 비슷한 입장을 갖고 계신다.



아내와 내가 서로의 가족 모임에 가면서 여러 가지 관계들이 새로 형성됐다. 장남이었던 나는 아내의 가족에서 막내 사위가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위에게 집안일을 시키진 않는다. 물론 아내도 나의 가족 모임에서 많은 일을 하진 않는다. 어머니도 부엌을 잘 맡기지 않으시고.
우리의 가장 큰 차이가 있다면 부담과 압박감이다. 부모님 댁에 가면 아내는 뭐라도 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가만히 앉아있지 못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며느리에게 요구하는 게 다르기 때문이다.



아내가 이런 분위기를 나에게 말해주고 나서야 내 눈에도 보였고 점점 이해하게 됐다. 집에서 가족이 모였을 때 보통 ‘여자는 일을 하고 남자는 쉰다’를 기본 값으로 갖는다. 그렇지 않은 집이 얼마나 있을까?
지금으로선 남편에게도 중요한 열쇠가 있는 것 같다. 시댁에서 아내가 일을 안 할 수 없다면 남편이 같이 하면 된다. (돕는 거 말고, 같이.) 어머니가 자기 아들이 부엌에 오는 걸 못 견딘다면 이렇게 사는 게 맞다는 걸 직접 보여드리거나 최소한 아내의 가족 모임 때 설거지에 앞장서야 맞지 않을까. “우리 집에 온 아들”이 아니라 “독립된 동등한 성인” “시댁에 온 아내의 남편”으로 포지셔닝한다면 다른 게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아내의 가족 모임에 갔을 때 조카들과 신나게 놀아주거나 장인어른과 대화를 하는 것도 좋지만, 가사노동에 함께 하는 것에 도전하는 남편들이 많아져야 한다. 처음에는 사위가 손도 못 대게 할 수도 있고 지나친 칭찬 세례를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칭찬을 벼슬로 여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아내에겐 처음부터 당연했던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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