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분담의 전제
아내의 글
요리를 마친 부엌은 그냥 외면하고 싶다. 푹 젖어 늘어진 비닐봉투에 식기들은 싱크대에 처박혀 있다. 안팎에 양념이 덕지덕지 묻은 냄비와 프라이팬 아래 채소 껍질이며 음식찌꺼기가 싱크대 거름망을 꽉 틀어막았다.
하지만 나는 가족이 먹을 음식을 완성했다. 내 역할은 여기까지이다. 남편은 밥을 먹으며 나의 노고를 인정하고 격려한다. 맛있다는 칭찬도 잊지 않는다. ('식당 차려도 되겠다'는 금기어로 지정됐다. 그건 칭찬 아니야.) 그리고 밥상을 물리면 그는 바통 터치하듯 부엌에 나선 후 비밀보장 팟캐스트를 틀어놓고는 설거지에 가스레인지 청소, 음식물쓰레기 정리까지 노련하게 해낸다. 이 난장판의 창조자인 나 역시 남편의 수고를 알고 인정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네가 무슨 수고를 했는지 알고 있으며 고맙게 생각한다'고 표시하는 것이다. 서로의 노동을 공짜로 만들지 않으려 노력한다.
감사의 표현 만큼 중요한 게 또 있다. 각자 할 일을 미루는 것에 대해 비난하지 않는 것. 각자 맡은 역할이 있지만 그 앞에서 상사처럼 굴지 않는 것이다. 나는 그가 며칠 동안 설거지를 쌓아두어도 조금도 따지지 않는다. 그 역시 내가 밥 하는 걸 힘들어 하는 날이면 직접 식사 준비를 한다.
우리 집 빨래의 역사는 건조기 구입 전과 후로 나뉘는데, 전에는 '널기'가 가장 큰 노동이었다면 이제는 개키는 일이 메인 이벤트 정도가 됐다. 덕분에 세탁 노동에 피차 훨씬 너그러워졌다. 이번에 혼자 다 한다 해도 억울하지 않다. 다음 번에 상대방이 나설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상대의 수고를 잊지 않는다는 걸 서로 믿는다.
나는 보통 온라인으로 장을 보곤 하는데, 어느 날 장아찌용 잎마늘이 나왔길래 호기롭게 주문했다. 제주에서는 잎마늘 장아찌를 흔히 볼 수 있다. 잎마늘 수확철이면 식당 밑반찬에 꼭 올라올 정도. 고기 요리에 곁들이면 찰떡궁합이라 나도 한번 만들어볼 작정이었다. 하지만 장아찌는 결단이 많이 필요한 요리다. 첫 번째 결단은 이전에 몇 번 먹다 떠나보낸 장아찌들의 환영을 무시할 것. 병 소독, 재료 다듬기, 간장 끓이기 등 간단하지만 시간이 필요한 일들이 그럭저럭 즐겁다고 생각해볼 것. 마지막 결단은 자주 꺼내 먹기로 할 것. 자신 없다면 장아찌를 쉽게 시작하기 어렵다.
그래서 냉장고 구석에 잎마늘을 방치한 거였다. 변명이 맞다. 냉장고 속에서 썩어가는 채소들에겐 저마다의 사연과 이유가 있다. 여기 있었다는 걸 잊어버려서, 금방 변색되어서, 장기간 냉장고에 있다보면 질산염 수치가 높아지기도 하므로, 혹은 그냥 손이 안 가서 버려지기도 한다. 그런 채소들을 볼 때마다 부끄러워 외면하면 나중에 남편이 슬그머니 치워놓는다.
그 잎마늘이 문제였다.
"이거 언제 할 거야?"
잊을만 하면 남편이 묻는다. 충동적으로 구입한 걸 이미 후회하고 있지만 그래도 겉으로는 의욕적으로 말했다.
"시간이 없어서. 그치만 곧 할 거야."
하지만 잎마늘은 끝부터 노랗게 시들어갔다. 냉장고는 하루에도 몇 번씩 열기 때문에 나도 남편도 조용히 그 과정을 본 셈이다. 사실은 그 횟수의 곱절만큼 부끄러웠다.
돈 관리 담당인 남편은 내가 장보기에 너무 많은 비용을 들이진 않는지 곧잘 걱정 한다. 사실 그는 가정 내 모든 소비 영역을 늘 면밀히 살핀다. 필요 없는 곳에 돈이 나가진 않았을지 확인하는 건 좋은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나는 가족이 먹을 음식을 구입하는 내 판단이 늘 의심 받는 기분이 들었다. 그것을 지적했더니 남편은 문제의 잎마늘을 또 언급했다! 꼭 필요하지 않은데 샀다가 버려진, 그러니까 '헛돈'의 사례가 된 것이다. 수치심은 매우 민감해서 살짝만 건드려도 감정이 격해질 수 있다. 나는 '다 내던지기' 전법을 사용했다.
"나 이제 장 안 봐. 요리도 안 해. 여보가 다 해." (네 말 때문에 내가 이렇게 화가 났다!)
남편도 물러나지 않았다.
"그래? 그럼 여보가 청소랑 설거지랑 돈 관리하고 다 해봐." (네 감정을 순순히 받아주진 않겠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왜 이렇게 언짢을까.
집안일에도 각자의 영역이 있다. 우리는 고마움을 바탕으로 자기 역할을 감당한다. 그리고 상대의 영역에 대해 함부로 지적하지 않는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남편이 설거지 할 때 냄비 몇 개를 깜빡 잊어 결국 내가 닦아도 그걸 말하진 않았다. 그릇에 기름자국이 남아 있어도 지적하지 않고 내가 다시 닦는다. 그냥 의견 전달하는 느낌으로 피드백을 할 수는 있지만 그것도 어쩌다 한 번이었다. 하나의 실수에 대해 두고두고 언급하거나, 설거지가 며칠씩 쌓였다고 눈치주는 말도 한 적이 없다. 내가 그런 말을 듣기 싫어하기 때문이다.
"자, 잘 생각해봐. 내가 여보에게 그런 식으로 지적한 적 있어 없어?"
내 말에 남편은 가만히 생각해보더니 대답했다.
"...없어."
나는 승자의 미소를 보이며 변론을 마친 변호사처럼 선언했다.
"그치? 난 여기까지만 말할게."
그러자 남편이 쿡쿡 웃는다.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금기어에 '잎마늘'도 추가되었다.)
‘서로의 수고를 기억하며 그것을 말과 행동으로 표현하자.’
‘지적하고 싶어도 일단 참고 기다리자.’
‘내가 듣기 싫은 말은 남편에게도 하지 말자.’
이렇게 다짐해도 물론 자주 무너진다. 일의 강도와 분량이 한쪽으로 기울어질 때도 많다. 살림에 육아를 끼얹은 삶이라면 폭발할 순간이 반드시 온다.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했다는 걸 기억한다. 내가 선택한 첫 가족인데 존중해야지. 비아냥거리거나 화를 내지 않고 사실을 말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물론, 만약 그가 뒷짐진 채 내가 시키는 일만 적당히 했다면 기꺼이 날을 세워 싸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성숙한 성인답게 알아서 자기 일을 찾으니 존중할 힘이 난다. 정말이지 상처를 주고받으면서까지 깔끔하게 살고 싶지는 않다.
가사를 분담한 두 사람의 청결 기준이 다를 때 한쪽이 불편하거나 힘들 일이 생기는 것 같다. 두 사람이 시소처럼 '깔끔'과 '지저분'의 양 축에서 균형을 맞출 수도 있겠지만 우리 부부는 애초에 둘 다 '지저분'쪽에 눌러 앉은 모양새다. 높은 기준을 두고 싸우는 것보다 적당히 포기하며 행복한 게 낫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손님이 오는 날 비로소 청소를 하는데, 관광지에 살아서 그런지 생각보다 손님이 자주 찾아온다. '손님 오는 날=대청소'의 전제가 생기니 마음이 편하다. 둘둘 말린 기저귀를 발로 툭 차면서 생각하는 것이다.
'다음 주에 손님 오니까 뭐.'
다행히 남편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남편의 글
반복된 일을 싫어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 좋아하는 아내는 요리를 하고 아이가 필요한 것을 살피는 역할을 한다. 나는 루틴에 딱 맞는 일을 좋아하고 정리하는 게 그나마 좋아서 설거지와 청소를 맡았고, 계산과 행정이 적성에 맞아 재정부를 담당하고 있다.
나는 아내의 수고와 노력을 가볍게 여기는 마음을 버리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설명하자면 일종의 '내로남불'의 확장판이라고 볼 수 있다. 내가 집안일을 하면 '와 이게 이렇게 힘들어?', '내가 이걸 어떻게 했는데...'등의 마음으로 자신을 토닥거리기에 여념이 없지만 아내가 하면 간단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아내에게 화살 같은 말을 했던 것 같다. 고마운 점이 있다면 아내가 위의 글처럼 내게 반격의 화살을 쏴주었다는 것.
덕분에 나는 아내의 삶을 더 객관적으로 보게 되었다. 그는 늦게까지 작업을 한 다음 날에도 피곤한 몸을 일으켜 아이의 아침을 준비하고 등원을 준비한다. 아이의 필요에 대해 꾸준히 생각한다. 음식 하나를 해도 메뉴 선정부터 재료 준비 상황, 어디서 뭘 더 사야할지 등 고려할 게 많다. 아이를 데리고 외출할 때면 날씨나 아이 상태를 보면서 짐을 싸야 한다. 나는 설거지나 청소처럼 이름이 붙은 일들을 주로 하지만 작아 보이는 큰 일들을 아내가 맡아서 촘촘한 그물이 되어 나의 빈자리를 메꾸고 있다.
나와 같았던 남편들이 있다면 작은 질문으로 점검할 수 있다.
아내와 역할을 완전히 바꾼다면 감당할 수 있겠는가?
여성에게 육아와 살림을 다 맡겨온 문화에서 우리는 자랐다. 요즘 살림과 육아하는 남자가 늘었다고 하지만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대체로 아내가 맡는 일이 더 많다. 집안일에 대해 아내들이 느끼는 부담이 더 크다는 점도 있다. 설거지 좀 하고 청소기 좀 돌렸다고 가정적인 남자가 되는 건 아닐 것이다. 성인 두 사람이 가정을 책임진다면 적어도 집안일에 대한 기울기를 인정하고 최대한 내 일을 더 가져오려고 계속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하면 칭찬 받겠지'라는 생각은 주체적인 성인의 것이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가사분담의 전제는, 부부 두 사람 모두 이렇게 기억하는 것이다.
식사 준비와 설거지는 내 일이다. 내가 먹기 때문이다.
빨래는 내 일이다. 내가 입었기 때문이다.
청소는 내 일이다. 내가 사는 곳이기 때문이다.
육아는 내 일이다. 내 자녀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과의 결혼은 다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모든 게 귀찮고 미루고 싶을 때,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했다는 걸 상기하면 도움이 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 귀찮은 일을 떠넘길 수는 없다. 상황상 어쩔 수 없다고 해도 그걸 당연히 여겨서야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