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5년 차의 변
학창 시절 나의 이상형은 '슬램덩크'의 김수겸이었다. 염색하지 않은 단정한 머리, 모범생 같은 이미지, 똑똑하면서 농구까지 잘하는 상양의 감독 겸 선수. 나는 김수겸 같은 똘똘한 모범생 스타일이 좋았다. 멋 부리지 않아도 단정하고 깔끔한 인상, 거기에 욕설과 비속어 없이 침착한 말투까지 갖춘다면 마음이 활짝 열린다. 그런 사람이 몇 없다는 점이 문제지만. 다만 김수겸의 이미지는 궁극의 이상형에 조금 못 미치는 느낌이 들었다. 결정적인 매력 포인트가 없달까.
그러다 '소년 탐정 김전일'의 아케치 경감(원작에서는 '경시'라고 함)을 보고 알았다. 모범생룩, 똘똘이룩의 완성은 바로 안경이었다. 김수겸이 안경을 썼다면 완벽했을 텐데. 안경을 썼다고 다 지성을 갖춘 것은 아니지만, 일단 안경이 잘 어울리면 지적으로 보여서 마음이 쉽게 열렸다. 내 취향은 안경이 잘 어울리는 날렵한 인상이었던 것이다. 다시 강조하자면 안경이 잘 어울리는 것이 중요하다. 더 솔직히 말하면 안경을 벗어도 호감형의 외모여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겠지만.
작년부터 새로 온 우리 교회 피아노 반주자분이 딱 이런 인상이라 자꾸 눈에 밟힌다. 김수겸과 아케치를 섞어놓은 듯한 젊은 남성. 표정과 눈빛은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보이지만 그의 피아노 연주는 푹 가라앉았던 감정도 일으킨다. 나는 언젠가부터 예배 중에 그 남자를 흘깃흘깃 훔쳐보기 시작했다. 큰일이다. 동그란 안경테 속에서 빛나는 집중력 있는 눈, 길고 가는 손가락, 날렵한 턱선... 요리조리 살펴봐도 역시 내 오랜 이상형의 현현.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를 훔쳐보며 상상을 뻗어간다.
저 남자와 연애를 한다면? 살금살금 손이 스친다면, 그러다 확 잡아버린다면?
혼자 응큼하게 웃기도 한다.
5년 차 유부녀가 이런 생각을 해도 될까?
저 남자라면 그래도 괜찮을 것이다.
피아노 앞에 앉은 저 남자는 이미 나와 결혼했기 때문이다. 남편은 작년부터 교회 반주를 맡았다. 나는 예배 때마다 먼발치에서 그를 보며 생각한다.
'우리가 여기서 처음 만났다 해도 저 사람을 좋아했을 거야.'
결혼한 지 만 5년을 채웠는데도 여전히 그를 보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서로 빙긋 웃어주는데 그때마다 가슴속에 비눗방울이 몽글몽글 채워지는 기분이 든다. 아, 나는 '성덕'이구나.
요즘 자다 깨는 일이 잦아서 문득 자고 있는 남편의 얼굴을 볼 때가 있다. 그 무장해제된 표정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어떻게 이런 남자와 결혼했지? 생각하면서 새삼스럽게 혼자 감격하기도 한다. 취향에 맞는 외모 때문만은 아니다. 남편을 깊게 알아갈수록 그의 매력과 진가를 계속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서로의 빅-팬이다. 우리는 서로를 보며 배우고 더 나은 사람이 되려 노력한다. 남편은 내가 빌려오거나 사온 책이 자기가 고른 것보다 재미있다며 관심 있게 들춰보는데, 그러다 보니 남편과 자연스럽게 페미니즘과 비거니즘에 대해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누게 됐다. 그는 자신이 남자라서 몰랐던 세계가 있음을 인정하고 차근히 알아가며 페미니즘 관련 책을 찾아 읽기도 한다. 이럴 때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내게 조심스럽게 질문하고 때로는 다른 남성들 앞에서 ‘이러면 안 된다’며 소신 있게 발언하기도 한다. 또 그는 내가 채식을 선언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도 채식을 결정했는데 아마 우리가 같은 책에서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는 나의 임신으로 둘 다 '채식 지향인'이 되기로 했다.)
그에게 무엇도 강요한 적 없다. 다만 남편은 항상 나의 생각과 신념을 궁금해하고 존중해주었다. 혹시 나와 다른 생각을 가졌다면 자신의 것을 깎아 나와 닮아가려 한다. 현재에 머무르지 않고 ‘옳은 방향’을 연구하고 찾아서 끊임없이 자신을 변화시키는 남편의 태도를 나도 배우고 싶다.
그가 동의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에게 좀처럼 잔소리를 하지 않는 편이다. 왜냐하면 남편은 내가 잔소리할 일을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중요!) 그는 일을 알아서 찾는 사람이고 기본적으로 깔끔하고 부지런하다. 가사의 많은 부분이 그에게 기울어져 있지만 그는 당연하게 자기 일로 받아들이고 알아서 해낸다.
넉 달 전 식기세척기가 들어오기 전까지 그는 성실하게 설거지 담당자로 살아왔다. 덕분에 나는 결혼 이후 한 번도 가스레인지와 냉장고 청소를 해본 적이 없다. 음식물 쓰레기에 손을 대 본 적도 없다. 온 휴지통이 때가 되면 비워지고 분리수거 쓰레기가 싹 정리된다. 냉장고 속에서 상한 음식물들도 어느 순간 치워져 있다. 화장실 청소도 마찬가지. 부엌에 뭐가 어디 있는지 못 찾겠으면 남편에게 묻는다. 같이 장을 볼 때 그는 다 쓴 식재료를 옆에서 읊어준다. 생활을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모든 행정 처리와 재정 관리도 믿음직하게 도맡는 사람도, 청소기 먼지통을 비우고 공기청정기 필터를 청소하고 집 구석구석의 수채 구멍을 청소하는 사람도 남편이다.
얼마 전 식사 후에 정리하면서 조리대를 행주로 닦았더니 남편이 신기하다며 박수를 쳤다. 내가 부엌을 좀 지저분하게 쓰긴 하지만 싱크대를 닦는 게 당연히 처음은 아니다. 새삼스럽게 왜 이러나 싶다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요리를 하면서 중간중간 정리하며 닦은 적은 있지만 식사 후에 부엌 뒷정리를 하면서 싱크대를 청소해본 적은 별로 없는 것 같았다. 뒷정리는 남편의 일이었으니까. 그동안 부엌에 뒹구는 국자와 주걱을 치우고 조리대와 가스레인지에 묻은 양념을 수도 없이 닦아냈을 그의 모습이 그제야 그려졌다.
남편이 업무차 하루 동안 집을 비웠을 때, 나는 식기세척기 사용법을 몰라 설명서를 뒤적이고 커피 머신을 처음 작동시키려다 다 흘려버렸다. 나는 아직도 샤워 후에 머리카락 치우는 걸 자꾸 잊는다. 그래도 샤워실은 더러워지지 않는다. 내가 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이뤄졌던 일들은 사실 다 남편이 하는 것이었다.
또 그는 완벽한 주양육자이다.
누군가 그랬다. 제대로 된 가사 육아 분담이라는 건, 한쪽이 부재해도 문제없이 집이 돌아가는지를 보면 안다고. 내가 일을 하러 나가도 아이는 조금도 불안해하지 않는다. 엄마가 안고 있다가 아빠에게 넘겨도 아이는 주저하지 않고 바로 안긴다. 엄마와 함께 있을 때만큼 아빠와의 시간도 편안하게 누린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는 혼자 있을 때도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재운다. 집에 있을 때면 등 하원도 아빠 몫이고, 책을 읽어주기나 과격하게 놀아주기도 잊지 않는다. 내가 같이 있어도 별일이 없는 이상 그가 아이 씻기기와 재우기를 담당한다. 그 때문인지 아이는 자다 깨면 아빠를 부른다.
공동의 주양육자로서 우리는 아이에게 필요한 것을 함께 고민하고 검색하며, 더 나은 양육 태도를 위해 자주 의견을 나눈다. 육아로 지치면 서로에게 쉴 틈을 준다. 가족과 동떨어져 지방에 살고 있어 도움을 요청할 곳도 없으니 서로를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는 나의 일을 지지하고, 내가 일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준다.
프리랜서인 우리는 외주 작업과 더불어 기관 강의를 주로 하는데 아이가 언제 아플지도 모르니 각자의 일이 겹치지 않게 주 3일씩 일정을 잡는다. 남편이 일하는 날에는 혼자 차를 타고 휙 다녀오지만 나는 면허가 없어 남편이 직접 데려다주고 데리러 와야 한다. 둘째 임신 전에는 버스를 타고 다니기도 했으나 이젠 그러기 쉽지 않아 전부 남편에게 신세를 진다. 이곳 버스는 좀 거친 편이라 조심하는 게 낫다는 판단이었다.
일이 없는 날이면 나는 남편 보내고 집에 있지만 그는 쉬는 날에도 먼 길을 운전하고 나를 기다리면서 하루를 보낸다. 내가 미안해하면 그는 둘째 임신으로 자신이 감당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한다. 덕분에 나도 떵떵거릴 수 있다.
“내가! 임신을 했는데도! 하루 세 탕을 뛰었어!”
지금은 거의 반반에 가깝게 경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어차피 출산 후에 보릿고개가 올 것이니 할 수 있을 때 부지런히 일하기로 했다. 우리는 한 팀이니까.
그가 가진 최고의 미덕은 단 한 번도 공치사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결혼 후 한 번도 “나 정도면 괜찮은 남편이지”라던가 “이 정도면 좋은 아빠 아니야?” 라던가 “나도 할 만큼 하고 있어” 같은 종류의 말을 (속으로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앞에서 한 적은 없다. 그러고 보면 내가 아는 주위의 ‘좋은 남편’들은 공치사를 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 사람은 남과 비교하면서 자신의 위치를 가늠하지 않는 것 같다. 그저 묵묵히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다. 그는 자기 혼자 집안일을 하는데 내가 쉬고 있는 걸 보아도 잔소리 한 적이 없다. 굳이 뭐라 하지 않아도 나 역시 알아서 일을 해나간다는 걸 알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듯 그는 자신이 한 일은 당연하게 여기는 데 반해 나의 공로는 잘 인정해준다. 내가 현명한 판단을 할 때면 “여보 대단하다. 세종대왕 같아.” “그런 생각은 에디슨도 못했을 거야.”라고 말해 피식 웃게 해 준다. 나의 자잘한 실수는 적당히 놀리고 그만둘 줄 안다. 치고 빠지는 일에 영리한 남자다.
둘만 함께 있으면 여전히 처음처럼 설렌다. 자다가 잠결에 손이 스치면 무의식 중이라도 한 번씩 꽈악 잡아주는 것도 좋다. 그 손을 놓지 않고 잠드는 게 좋다.
사랑한다는 말은 귀하면서 흔하다. 그래서 그 말을 아끼는 대신 이따금 “좋아해”라고 말해준다. 때로는 사랑한다는 말보다 울림이 있다.
낮이면 온갖 혼잡스러운 일로 스트레스를 받다가 잠들기 전이면 마음속이 사랑으로 충만해진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나를 가장 사랑해줄 때의 안정감. 나이 들수록 세상만사에서 불편과 불쾌를 예민하게 감각하지만 신기하게도 남편은 점점 더 편안해진다. 나는 그에게 아무런 불만이 없다.
우리는 여전히 “내가 더 많이 좋아해”라며 애정을 대결하고, “난 얼굴 보고 결혼했다”며 서로의 외모를 치켜세운다. (실제로는 둘 다 매우 평범한 인상이다) 차를 타고 가다가도 이따금 손을 맞잡고 별 맥락 없이 “난 여보가 너무 좋아” 선언하기도 한다.
지난여름, 유명인 커플들의 끝을 보면서 그는 혼자 자신의 사랑을 돌아봤다고 진지하게 말을 꺼냈다. 스스로에게 질문하면서 냉정하게 살펴봤다고 했다. 그 결과, 그는 나의 행복을 위해 기꺼이 복무할 수 있고, 내가 인정받고 성공하면 너무 기쁠 것 같다며 이를 위해서 자신의 꿈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괜찮겠다는 마음까지 들었다고 한다. 그가 하나씩 숙고하며 내린 결론은 역시 사랑이었다. 그 나름의 계산과 자기 검열을 거친 확증적인 사랑이 나는 고마웠다. 그리고 나 역시 부끄럽지 않게 사랑하고 있나 돌아보게 되었다.
그는 나 외에는 어디서도 자기 애정을 과시하거나 드러내지 않는다. 밖에서 점잖고 내 앞에서 천진한 그가 좋다. 내가 뭘 잘하지 않아도 그대로 용납하는 그에게 감사하다. 자주 우울을 느끼고 별 것 아닌 일에 날이 서는 내가 세상과 자아를 긍정할 수 있다면 그건 남편 덕분일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서로의 사랑을 먹고 자라는 중이다.
그는 요즘 '탈-가부장'에 집중하는 것 같다. 보통 아침 식사는 그냥 시간 되는 사람이 준비하는 편이다. 하루는 내가 일찍 눈을 뜬 김에 따끈한 식사를 미리 준비해놓은 적이 있는데, 남편은 자고 일어나 식탁에 뭔가 차려져 있는 걸 본 순간 가부장의 달콤한 맛을 감각했다고 나중에 조심스럽게 고백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정신 차리라고 욕을 하며 그 기분에서 빠져나왔다고 한다.
아내가 엄마처럼 챙겨주길 바라는 마음, 엄마에게 그랬듯 아내의 희생도 당연히 여기려 하는 익숙한 흐름과 분위기를 알지만 그렇게 흘러가지 않도록 결정하고 가부장제의 물결에서 자신을 건져내는 일. 그 자각과 실천에 마음을 많이 쓰는 게 느껴진다.
남편의 말을 듣고 가부장제가 나에게는 '내가 더 희생해야 한다'는 부담을, 남편에게는 '더 대접받고 싶다'는 욕심을 느끼게 한다는 걸 알았다. 부디 가부장제의 끈덕진 망령에서 벗어나 누구 한 편 억울한 사람 없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사랑하는 부부로 늙어간다면 좋겠다. 반성과 개선에 능한 남편을 만났으니 희망이 보인다.
첫 번째 결혼기념일을 앞두고 브런치에 남편 자랑 글을 올렸었다. 그래 봐야 팔불출의 자기 고백일 뿐이지만 생각보다 반응이 남달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에도 나는 시간에 따라 처음 마음이 변할지 궁금했었다.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 이 글을 정리하며 돌아보니 역시 사랑은 시간에 따라 변하는 게 맞다.
더 깊어졌으니까.
그 시간 동안 함께 물을 지나고 바람에 맞서며 손을 더 꽉 잡았으니까. 힘을 합쳐 소중한 것을 지켜냈던 역사가 쌓이고 세워지며 우리 관계를 더 튼튼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동반자로서, 또 부모로서 배우고 성장하고 있다.
5년 차의 소회가 이러하다면 10년 차는 또 어떨까? 내년 봄이면 두 아이를 양육해야 하는데 그때는 달라질까?
늘 그랬듯 서로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면서 사이좋게 나이 들기를. 얼었다 녹았다 반복하며 질긴 사랑을 이어가기를. 별 것 아닌 일에 서로를 치켜세우고 웃으며 서로의 성취에 손뼉 쳐주는 삶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 집 남매가 이 사랑을 먹고 건강하게 커주면 더 좋겠다. 아이들이 부모의 영향을 받고 자랄 수 밖에 없다면, 이왕이면 아빠를 더 닮아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