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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보영 Oct 28. 2015

죄송하지만 남편 자랑 좀 하겠습니다

결혼 1주년이거든요

올해로 그를 안 지 딱 10년이 되었다. 우리는 8년 동안 가까운 친구였고, 그 다음 1년은 연인으로, 다음은 부부로 보냈다. 부부로서 이제 갓 일 년을 살았다.  


우리는 둘 다 프리랜서라서 거의 매일, 종일 같이 지낸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그래도 정말 괜찮냐고 묻는다. 그래서 나도 한 번 생각해 보았다. 정말 괜찮은지.


그는 편안한 사람이다. 10년 전부터 그랬다. 타고난 성정이 딱히 모난 데 없이 둥글둥글한 편이다. 그래서 그런지 꼬박 하루를 같이 있어도 꼭 종일 나 혼자 있던 것만 같다. 둘이 있는데 혼자인 듯 편안하다는 게 어떤 건지 잘 그려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하여간 문득 돌아보니 그랬다. 타인과 공존한다는 긴장이나 스트레스가 전혀 없더라. 그래서 그 이유도 생각해 보았다. 왜 그런지.


나는 그에게 부끄럽거나 감출 게 없다. 그는 비난의 어조를 사용하지 않으며 수치감을 주는 말도 하지 않는다. 내게 개선할 점이나 제안 할 게 있다면 고운 말로 풀어 건넨다. 그는 나의 실수와 잘못을 혼동하지 않고, 실수는 웃어 넘기고 잘못에 대해서는 정중히 사과를 요구한다. 나는 내 문제점에 대해 심각하고 과장 되게 비춰보는 경향이 있는데, 그는 그걸 큰 문제로 삼지 않아 주어서 고맙다. 자존심을 지키려는 나의 알량한 시도들을 알면서도 모른 척 해 준다. 그런 태도가 나를 더욱 자유롭고 안정감 있게 만들어 준다. 어릴 때 칭찬보다는 지적을 더 많이 받았던 내가 이제는 용납과 이해를 받고 있다. 내 안의 어린 아이가 울음을 그쳤다.




우리 모두는 조금씩 치우친 사람들이다. 각기 다른 방향으로, 다른 모양과 기울기로 어느 정도씩은 치우쳐 있다. (누구라도 인정하는 균형적인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균형'에 치우친 거라 고집부려 보겠다.)

내가 과연 성실하고 꾸준해질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문득 내 주변에서 가장 꾸준한 사람과 내가 결혼을 했다는 걸 알았다. 나는 남편의 삶을 보면서 영향을 받고, 나 또한 그가 가지지 못한 걸 가졌다 . 이렇게 남편과 나는 반대의 모습으로 치우쳐서 서로에게 스며든다. 그에게는 내가, 내게는 그가 지팡이가 되어 피차 절름거리지 않게 할 것이다. 공감대가 있고 비슷한 상식선을 가졌지만 우리는 분명 다른 종류의 사람이다. 그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어느 정도씩은, 서로에 의해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갈 것이다.


결혼 후 일 년 동안 그는 좋은 남편이나 친구를 넘어 나의 스승이 되기도 했고 내게 배우기도 했으며, 나를 읽는 성실한 독자이자 하나의 매혹적인 이야기가 되었다. 천문학을 공부하듯 그를 관측하면서 그에 대해 알아가고 있다. 사실 여기까지는 예상했던 일이었으나 이제 새롭게 느낀 바, 그는 곧 나다. 내 분신이나 몸의 일부 같은 말로는 부족하다. 그의 몸은 곧 내 몸이고, 내 정신과 사랑은 곧 남편과 동일하다. 그를 마주 대하면 꼭 나를 보고 있는 것 같다. 그 뿐 아니라 이제 우리는 비슷한 말투를 쓰고 유사한 범위 내에서 웃음을 터뜨린다. 우리 만의 문화와 놀이, 습관을 공유해 간다. 궁극의 사랑은 합일이라는 걸 가정을 통해 배웠다.




나의 남편은 성품이 곧고 깊다. 마음 씀씀이가 어른스럽고, 이해를 쉽게 하는 편이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 알아가려 노력하고, 정의를 추구하며, 진리를 따라간다. 자발적인 의지로 정직하게 삶을 꾸리는 주도성이 있다. 자존심이 분명 존재하지만 쉽게 영향 받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을 겸손히 대하고 낮은 문턱을 내어준다. 피드백에 유연히 대처하며 자가 업그레이드 능력이 뛰어나다. 그를 아는 사람은 모두 그를 신뢰한다고, 나는 당당히 말할 수 있다. 또한 그는 굉장히 사려 깊은 개인주의자이다. 자기가 더 손해볼지언정 본인이 남에게 마음의 빚을 남기는 건 되도록 지양한다. 남의 칭찬과 평가에 치우치지 않고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한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자기주도적 학습이 생활화 되어서 필요한 일에 대해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이 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도!

하나같이 나에겐 부족한 부분이다. 그래서 더 대단해 보이는 것 같다.

어쨌든 이런 부분에서 나는 남편을 존경한다.


그런 그가 나를 사랑한다.

내 표정을 읽고, 내 말을 경청하고, 원하는 일을 하도록 도와준다.

남편이 먼저 잠들고 한참 뒤에 내가 침대로 기어들어갈 때, 쿨쿨 자던 그가 인기척을 느끼고는 팔을 뻗어 나를 안아준 적이 있었다. 그 순간 왈칵 눈물이 났다. 또 늦게 자냐고 잔소리 들을 각오를 했는데 되려 무의식의 환영을 받은 기분이었다. 사랑과 따뜻함이 이렇게도 전해지다니.

'내가 이런 사랑을 다 받는구나' 생각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느낀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우위를 점하겠다는 얄팍한 계산 따윈 접어두고, 더 존중하고 사랑해야겠다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항상 꾸준하며 도리어 더 깊어지는 그의 진실한 마음을 가장 영예롭게 할 수 있는 길은 나 역시 같은 마음으로 그를 사랑하는 것일 터. 사랑으로 인한 남편의 헌신과 양보, 희생을 값지게 여겨주고, 나 역시 베풀 수 있을만큼 나를 내어주는 것이다. 남자 위에 군림하고 싶고, 쩔쩔매도록 만들고 싶은 유혹은 얼마나 달콤한지. 때론 그에게 온통 기대고 의존하고 싶은 마음도 본능처럼 찾아온다. 하지만 그를 사랑한다는 건 그런 유혹을 물리치고 동등하게 존중하고 내 역할과 책임에 충실한 것이라 믿는다.  




20대를 보내며 나는 어떤 사람과 결혼할지 늘 기대하고 또 기도했다. 하지만 이제 와 돌아보니 내가 꿈꾸던 남편보다 지금의 남편이 더 좋다. 내가 오랫동안 그려온 결혼 생활보다 지금이 더 행복하다. 당연히 부딪치기도 하고, 간간히 싸우기도 한다. 우리는 앞으로도 핀볼처럼 온통 부딪칠 지 모른다. 하지만 갈등조차 값지게 바뀌는 1년을 보내며 알았다. 우리는 앞으로도 힘써서 사랑하며 부딪치고 이해할 것이다.

내 모든 걸 드러내도 용납 받을 수 있을 거란 안정감.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이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사랑. 문제적 모습을 작게 여겨 주는 마음. 나는 참 결혼을 잘 했다.



먼 훗날, 다시 이 글을 볼 때 지금의 나에게 동의할 수 있을까?

어쨌든 이 글은 앞으로 나의 초심을 지켜줄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써 보았다.

다만 나 역시 계속 노력하며 남편에게 사랑과 존경을 전하는 아내가 되면 좋겠다. 언제나 중요한 건 내 마음과 내 태도니까. 나부터 사랑해야겠다.












남편 자랑을 하면 꼭 이렇게 걱정(!)하는 분들이 있다. 나도 몇 번을 들었는지 모른다.

-더 살아봐라.

-애 낳고 키워봐라.


걱정도 감사하지만,
부디 저희 부부가 앞으로 닥칠 큰 산들을 잘 넘을 수 있도록 축복을 빌어주시면
더욱 깊이깊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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