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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보영 Sep 25. 2015

아버지의 시

얼마 전 아버지가 두툼한 종이 묶음을 내미셨다. 그동안 떠올랐던 시 몇 편인데 한번 보라는 것이다. 봄이 되니 시가 저절로 떠오르신단다. 나는 시를 하나씩 넘겨 보았고, 그 자리에서 간단한 감상과 비평을 말했다. 비유가 어쩌네, 깊이가 어쩌네 하며 소견을 늘어놓으니 아버지의 얼굴이 어둡다. 금세 후회했다. 아무튼 이놈의 세 치 혀는 불효의 일등공신이다. 


아버지는 오래 전부터 시를 써 오셨다. 문학회에서 활동하시면서 작품도 자주 발표하셨다. 이름만 대면 알 법한 유명 시인과 함자가 석 자 모두 똑같은 것도 우연치곤 재미있는 일이다. 아버지는 지금 내가 문학의 길을 가는 것도 당신의 영향이라며 자랑스러워 하신다. 사실 음악을 전공한 둘째 언니에게도 아버지의 음악성을 물려받았다고 주장하셨지만, 어쨌든 아버지에겐 동년배의 다른 어른들에게는 드문, 예술에의 독특한 열망이 있는 건 사실이다.


오로지 감수성으로만 완성된 작품보다는 현실에 충실히 뿌리박고 진실하게 표현한 예술이 가슴에 더 와 닿는 법이다. 그러니 진심을 가진 자는 이미 예술가의 자질을 소유한 것이다. 떠오르는 생각을 크로키 하듯 옮긴 아버지의 노래는 종이에 갇혔고, 일주일에 한 번 찾아오는 딸을 위해 손수 끓여주신 된장찌개가 도리어 내게 한 솥의 시로 보였다. 맛있는 음식이나 좋은 물건이 생기면 감춰뒀다가 내게 내어주시고, 늘 나의 필요를 살펴 채워주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시는 모습. 그 마음의 장면이 진심이 깃든 시구(詩句) 같다. 이런 근거로 아버지를 시인이라 자랑스레 말하고 싶다.



마음은 이팔청춘인 아버지가 이 달에 환갑을 맞으셨다.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오래 사시길 소망한다.










2008년 4월 13일 

조선일보 <일사일언>에 게재한 것을 다듬었다. 



그후 7년이 지났다. 이제 나는 결혼을 했고, 아빠는 칠순을 목전에 두고 계신다. 이때는 일주일에 한 번 본가에 갔지만, 지금은 한 두 달에 한 번 찾아뵙는 정도이다. 예전에는 '부모님 집' '엄마아빠 집' '인천집' 정도로 일컫던 곳을 이제는 '친정'이라고 간단히 지칭할 수 있다. 


추석을 앞두고 미리 연락을 드렸다. 다음 주에 시부모님과 여행을 가게 됐으니 이번 주말에 찾아뵙겠다고. 

세 딸이 모두 출가하고, 각각의 시가도 먼 편이라 명절날 친정에서 모이기는 쉽지 않게 되었다. 두 분만 덩그러니 보내는 명절이 영 허전하실 것 같아 자꾸 마음이 쓰였다. 

그런데 아빠는 아닌가 보다. 난 되도록 오래 머물고 싶어 일찍 가겠다고 했더니 성묘 다녀와야 한다며 늦게 오라고 정 없게 대답하신다. 그런 말씀이 못내 서운하여 뾰족한 말들을 내뱉었다.


7년 전, 위의 글을 신문에 싣고 아빠에게 환갑 선물이라며 보여드렸다. 아빠는 신통찮은 표정을 보이셨지만 나중에 따로 신문을 사서 내 글을 오려 지갑에 넣고 다니셨다. 

그런 거지. 사랑이 다 한 가지 모양일리가 없다. 난 이걸 자꾸 잊어서 후회할 일을 만든다. 


토요일에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배를 한 상자 사들고 가야겠다. 함께 전을 부쳐 먹으며 수다를 떨 것이다. 가벼운 마음에 둥그렇고 따뜻한 말들도 가득 챙겨서 달려가야지.








따뜻하고 풍성한 한가위 보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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