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의 개미와 전면전을 하기까지
어릴 때부터 개미를 좋아했다. 자기 몸 만한 모래알을 하나씩 들고 나르며 집을 만드는 모습은 종일 봐도 재미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개미를 키우고 싶기도 했다. 이미 올챙이 몇 마리를 데리고 들어와 키웠던 바 있고, 그것들은 다리가 생기는 즉시 다 도망갔다. 비오는 날 달팽이를 주워와 집에 놓았더니 저 혼자 기어다니다 다 말라 죽었다. 개미를 집에 들였다가는 온 집 안이 개미 소굴이 되겠지. 그럼 엄마한테 또 혼날 것 같아서 포기. 그냥 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중학교 때 독서반에 들어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를 다 읽었다. 처음에는 인간과 개미의 이야기가 따로 전개되지만 나중에 그들이 한 데서 만나고 의사소통을 하는 장면이 흥미로웠다. 개미의 삶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다.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는 개미. 작은 몸집의 한계를 협동과 인내로 극복하는 지혜로운 개미들.
대학생이 되어서도 개미를 좋아했다. 특히 개미떼가 모여 있는 광경은 쉽게 지나치지 못했다. 한 번은 학교 올라가는 길에 '왕개미'라고 불리는 크고 까만 개미떼가 몇 줄로 길게 척척 움직이는 걸 보았다. 그걸 놓칠 수는 없어서 따라가 보니 세상에! 다른 개미 군단과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서로를 물고 뜯는 혈투. 여기 저기 개미 시체가 널리고 전쟁터에는 또다른 수많은 개미 군사들이 밀려들고 있었다. 쪼그리고 앉아 삼십 분 넘게 그 광경을 지켜 보았다. 한 편의 전쟁 영화를 보는 기분이었달까.
스물 한 살,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의 일이다. 한가한 오전 근무 담당이라 그냥 시간만 때우다 오곤 했다. 이 안에서 작은 취미라도 즐기고 싶었다. 그러다 어린 시절 이루지 못한 욕망이 떠올랐다. 그래, 개미를 키우자! 나는 무모하게도 1.5리터 페트병에 흙을 담고 한 개미집을 털어 일가족을 납치 및 감금하여 새로운 왕국을 세웠다. 입구는 잘 막았다. 개미는 페트병 주둥이까지 기어올라오진 못했다. 설령 오더라도 자기 몸보다 훨씬 작은 망사 구멍을 통과할 순 없었다. '왕개미'였으니까.
그냥 개미를 지켜보고만 있어도 재미있었다. 이따금 축복처럼 설탕을 뿌려주기도 했다. 그럼 개미들이 신나게 뛰어나와 하얀 설탕을 안고 집에 돌아갔다.
당시 편의점 안에 자꾸 파리가 들어와서 나는 매일 파리채를 휘두르며 근무를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이 파리를 개미들 먹이로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은 파리를 넣어주니 개미들이 어딘가로 끌고가더니 그 위를 흙으로 덮어 두었다. 신기했다. 다음 날도 파리를 잡아 넣어주었다. 개미들은 힘을 모아 파리를 옮겨 묻었다.
하루는 죽은 파리를 넣었는데 알고 보니 기절한 거였다. 깨어난 파리는 페트병 안을 윙윙 날아다녔다. 어떡하지? 잠시 고민하는데 갑자기 손님이 몰려 신경을 쓰지 못했다. 잠시 후 다시 보니 파리가 없어졌다. 입구를 뚫고 나간 것도 아니었다. 개미들이 날아다니는 파리를 잡을 수 있나? 의아했다. 그래서 한 번 더 실험해 보기로 했다. 일부러 파리를 기절시켜 병에 넣어 본 것. 잠시 후 파리가 깨어나 병 속을 미친듯이 왱왱 날아다녔다. 그러다 잠시 흙바닥에 앉았다가 다시 날기를 반복했다. 개미들은 파리를 따라 다니느라 정신 없었다. 그때였다. 파리가 아주 잠깐 내려앉았을 때 마침 거기 있던 개미 하나가 파리의 다리를 물었다. 놀란 파리는 다시 날기 시작했는데 놀랍게도 개미는 다리를 물고 절대로 놓지 않았다. 개미의 무게 때문인지 파리가 다시 내려 앉았다. 그러자 다른 다리에 또 한 마리가 붙었다. 이번엔 두 마리의 개미를 달고 파리가 날았다. 이번 비행은 짧았다. 파리가 내려오자 더 많은 개미들이 달려들었다. 날개, 몸통에도 붙었다. 파리는 잠시 날아보았지만 억세게 콱 물고 있는 개미들을 떼어낼 수 없었다. 다시 하강. 살기 어린 몸짓으로 개미들이 들러붙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파리는 시체가 되어 땅에 묻혔다. 굉장했다.
베르베르의 <개미>를 보면 개미들이 다친 앵무새를 사냥하는 장면이 나온다. 날지 못할 뿐 멀쩡히 움직이는 앵무새를 맹렬히 뒤쫓아 다리에 기어올라 몸을 파고드는 것이다. 그중 몇 마리는 본능처럼 앵무새의 항문을 찾아 몸 속에 침투한다. 그리고 새의 내장 기관을 거슬러 오르며 쉴새 없이 개미산을 뿜는다. 선두에 선 개미는 뇌를 찾는다. 뇌를 공격하는 개미는 앵무새가 죽을 때 함께 죽는다. 그걸 알아도 개미는 뚫고 들어가는 것이다. 소설이니 과장될 수 있지만, 어쨌든 개미는 이토록 무시무시한 생물이었다. 살아있는 파리를 사냥하는 모습을 내 눈으로 보고 나니 더욱 실감이 났다. 이렇게 똑똑하고 용맹스럽다니!
세월이 흘러 나는 쪼그리고 앉아 개미집을 구경할 새도 없이 살아왔다. 그러다 최근 다시 개미를 만났다. 이번에는 나의 신혼집이었다. 20년 넘은 건물에 객식구가 깃드는 건 이상한 게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하아...
개미들은 처음에는 부엌에만 있더니 얼마 있다 각 방과 화장실까지 개척하여 세를 확장했다. 좁쌀보다 작은 크기라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개미가 있으면 바퀴가 생기지 않을 거란 얘기도 들었다. 그런데 개미들은 역시 만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잠시라도 탁자 위에 음식물을 올려두면 개미는 귀신 같이 냄새 맡고 떼지어 몰려온다. 부엌 뿐 아니라 서재 책상이며 서랍장 위도 마찬가지였다. 선물 받은 곶감 상자도 당했고, 먹다 만 과자 봉지도 털렸다. 그 중 가장 충격적인 비주얼은 화이트 데이에 남편에게 받은 마카롱이었는데, 비싸기도 했지만 정말 맛있어서 아껴먹으려고 개미가 없을 법한 곳에 올려두었다. 그런데 한 시간 남짓 한눈 판 사이에 정말이지 엄청난 개미들이 박스 안에 들어가 내 마카롱에 파고 든 것이다. 무심결에 봤다가 깜짝 놀란 나는 속상해서 눈물을 찔끔 흘리기까지 했다. 남편이 능숙하게 개미를 쫓아내고 털어도 그 충격과 데미지는 가시지 않더라. (언젠가부터 남편은 음식물에 붙은 개미를 탈탈 터는 일을 담당했다) 쥬스를 마시다 말고 책상 위에 올려두면 여지없이 개미들이 냄새 맡고 컵에 몰렸다. 달콤한 소스를 만들었더니 가스렌지를 넘어 냄비까지 기어들어왔다. 찬장, 선반 어디를 열어도 개미들이 보였다. 솔직히 처음에는 개미들을 좀 귀여워하는 맘도 있었다. 애완용이랄까. 하지만 이런 고된 삶을 몇 달 간 지속하다가 정말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개미와의 전면전을 선포했다. 명색이 싱잉앤츠(SingingAnts = 노래하는 개미들) 멤버이기도 하니 좀 봐주고 싶었는데 이제 더는 참을 수 없었다.
개미 퇴치법을 검색하면 가장 자주 보이는 게 '붕산'이다. 붕산을 먹은 곤충은 몸 안의 수분이 다 말라버려 죽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어린 아이나 반려 동물을 키우는 집에서는 반드시 주의하여 사용해야 한단다. 아이도, 반려 동물도 없는 나는 더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마침 가족 여행을 앞두고 있었던 터라 붕산으로 덫을 놓고 다녀오기로 했다. 약국에서 붕산을 사서 안 쓰는 플라스틱 용기에 물, 설탕과 1:1:1로 들이 부어 달달 섞었다. 그리고 페트병 뚜껑을 모아서 이 붕산 시럽을 덜어내어 개미들이 자주 출몰하는 거점마다 놓아두었다. 이미 개미집 입구로 추정되는 위치를 방마다 몇 군데 봐 두었기에 어렵지 않았다.
역시 개미가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하더니 이내 너도나도 몰려와서 달콤한 죽음의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뚜껑마다 동그랗게 모여서 붕산 시럽을 꿀꺽꿀꺽 배에 담아 집으로 줄줄이 가져가더라.
여행에서 돌아와 제일 먼저 덫 주변을 살폈다. 놀랍게도 개미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일부러 과자 부스러기를 떨어뜨려 보았지만 말 그대로 개미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다. 지긋지긋했던 개미떼를 소탕한 것이다! 이렇게 간단한 방법을 이제야 써먹다니.
자연 속의 개미를 보는 건 재밌지만 한 집에서 공존하는 건 아무래도 어려운 일이다. 애증의 개미들과 이젠 정말로 작별하게 되었다. 쉽고 간단한 방법으로.
그러다 최근에 다시 개미가 한 두 마리 씩 보이기 시작했다. 척 보니 알에서 깨어난지 얼마 안 된 어린 병정개미 같았다. 그 전에 여왕으로 추정되는, 배가 크고 날개 달린 개미를 목격한 바 있었다. 여왕 개미도 알에서 깬 지 얼마 안 된 듯 파릇파릇 했지만 사정 봐 줄 거 없이 눌러버렸다. 이제 끝이라 생각했는데 아직도 개미가 있다니! 미처 못 버린 붕산 시럽을 하나 찾았다. 물기가 바짝 말라 딱딱해졌다. 나는 여기에 물을 살짝 넣고 박박 긁어냈다. 설탕과 붕산이 결합된 퍽퍽한 흰 가루. 새로운 이 덫의 이름은 '붕산 쿠키'로 정했다.
가만히 보니 개미들의 주 출입구가 있었다. 나는 그 주변에 붕산 쿠키를 아낌 없이 뿌렸다. 그 언젠가 페트병 안에 축복의 설탕을 뿌려준 것처럼. 미안하지만 더 이상 개미와 함께 살고 싶지 않았다. 개미들은 설탕보다 환한 백색의 그것을 안고 즐겁게 집으로 들어갔다. 안녕...
다음 날. 남은 개미들은 종적을 감췄고, 붕산 쿠키 주변에 몸이 바짝 말라 죽은 몇 놈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한 번에 수 백의 생명을 처치했다는 게 내심 걸린다. 베르베르의 <개미>를 생각하면 더욱 그랬다. 그래도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곤충이었는데. 그저 살아갈 뿐이었던 생명들을 '해충'이라 정의 내리면 이렇게 아무렇게나 죽여도 되는 걸까? 파리, 모기 잡을 때는 별 고민이 없었으나 개미떼 소탕은 이렇게 찝찝한 맘으로 마무리 되었다.
우리, 이제 자연에서 만나자.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