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보영 Aug 18. 2015

밤의 예찬

- 그래도 나는 밤이 좋다



새벽 두 시가 훌쩍 넘었다. 잔잔하고 달콤한 음악을 들으며 글을 쓰는 나는 행복하다. '행복'은 자주 남용되는 말이지만, 지금 내 기분이라면 '행복'을 열 개라도 쓸 수 있을 것 같다. 



어린 시절, 잠이란 리모컨 버튼을 누르듯 '톡'하고 빠져드는 것으로 생각했다. 정신이 꿈속에 입장하는 바로 그 순간을 느껴보고 싶어서 불을 끄고 누워 내내 기다린 적이 몇 번 있다. 결국 동이 튼 걸 보고나서야 꿈이고 뭐고 알아챌 새 없이 스르르 잠들었다. 시험공부를 하다 처음으로 꼬박 밤을 새운 그 새벽도 생각난다. 비록 이튿날 몽롱한 상태로 시험을 망치고 돌아와 곧바로 곯아떨어졌지만. 



이제는 수면에의 돌입을 포착하겠다는 호기심도 없고 벼락치기 공부가 필요하지도 않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밤에 이끌린다. 평소에는 커피를 잘 마시지 않지만, 지인들을 만나며 무심코 커피를 들이켜면 그날은 여지없이 잠이 오지 않는다. 혹시 졸음이 오지 않을까 해서 책이라도 집어들면 밤이 다하도록 끝까지 읽고 마는 것이다. 책과 밤은 시너지를 만든다. 매혹적인 작품이라도 읽은 날이면 질투심이며 열정이 활활 타올라 새벽부터 노트북 키보드를 맹렬하게 두들기기도 했다. 



조용한 밤에는 내 마음을 투명하게 들여다 볼 수 있다. 웃는 척, 괜찮은 척은 하지 않아도 된다. 탁월한 경영자나 손꼽히는 지성인들이 이른 아침에 깨어나 미래적이고 발전적인 생각들로 머리를 채우며 에너지를 얻었다면, 나는 깊은 밤 홀로 '미래' 같은 것과는 등을 돌리고 앉아서 스스로 돌아보고 그리워하고 후회하며 힘을 얻는다. 다른 사람들이 그러는 것처럼 성장을 위해 부러 나를 깎으려 하진 않았다. 그저 밤마다 비죽비죽 모난 자신을 직면했고, 그걸 아프게 쳐내면서 아주 조금씩 성장했을 것이다. 한계의 벽에 부딪히거나 고통이 나를 조일 때, 대낮도 컴컴하게 느껴지는 우울한 날을 보내다가도 결국 내가 소생하는 시간은 또 다시 밤이다. 나이테가 둘리듯 정신과 영혼도 더 굵직해지는, 내게는 참 소중한 시간이다. 



어떤 소설가 선생님은 글을 쓰기 전에 소주를 한 잔 마신다고 했다. 내겐 이 밤의 낭만이 바로 그 소주와 같아서 어둠이 깊어질수록 취기가 오르나 숙취 걱정은 없으니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냉철한 이성과 날카로운 직관이 잠잠해지고, 영민한 감각과 감성이 오롯이 살아나는 밤. 사랑을 하고 있다면 유치한 메시지를 보낼 용기를 주는 시간. 홈쇼핑을 본다면 눈앞의 제품이 내게 꼭 필요한 것이라 확신하는 시간. 지난 일기라도 열어본다면 읽으면서 저도 모르게 웃기도 하고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할, 그런 밤이다. 

결국 게으름에 대한 변명이 아니냐, 오글거리는 감정 나부랭이만 남는 것 아니냐 질타를 받아도, 나는 분주한 낮보다 홀로 있어 투명한 이 밤이 더 좋다. 
  












밤까지 눈을 밝히다 문득 생각나서

월간 <행복한 동행> 2008년 5월호에 게재한 글을 다듬음.






토끼도 새들도 꽃들도 남편도 모두 잠든 고요한 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