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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보영 Aug 24. 2015

처음 찍은 가족 사진을 발견했다





나는 무남 삼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독자였던 아버지는 마지막까지 아들을 기다리셨을 것이다. 때문에 나는 환영보다는 실망을 받으며 태어났을 거라 생각했다. 실제로도 그랬다. 엄마는 셋째 역시 딸일 거란 직감이 들어 모진 마음을 먹고 산부인과 문턱까지 갔다 오셨다고 들었다. 할머니의 구박과 원성이 얼마나 괴로웠으면 그랬을까. 엄마의 마음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얼마 전 부모님의 이사 중 발견한 한 장의 사진. 오래 전 몇 번 본 적은 있지만 마치 처음 본 것처럼 생경하다. 자꾸 눈에 넣고 싶어서 휴대 전화에 남겨두었다.


겉으로는 특별할 것 없는 사진이지만 볼수록 먹먹하다. 이 사진을 찍던 날을 추측해 본다. 내가 갓 태어나 아직 목도 가누지 못했을 때 아빠는 가족 사진을 다시 찍어야겠다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그래서 삼각대에 카메라를 고정하고 방 한쪽 벽에 옹기종기 모여 앉으라고 말씀하셨겠지. 셔터를 누르고 재빨리 달려가 자리를 잡는 장면까지 상상해 본다.

가족 사진은 찍는 일은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가족의 역사를 남기는 일종의 의식이나 관례 같달까. 이 날은 새로운 가족을 맞이하는 따뜻한 환영식이기도 했다. 지금의 내가 보기엔 그렇다.

나는 환영을 받으며 가족이 되었구나. 뒤늦게 실감하게 되었다.


엄마는 중절 수술을 마음 먹고 집을 나섰지만 끝내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돌아오셨다고 한다. 엄마에게 전해 듣기로는 아빠가 "정말 잘했다"고 하셨단다. 상의 하에 결정은 내렸으나 두 분 다 마음이 편치 않으셨던 거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나는 빛을 보았고, 내 어린 시절은 나름대로 화창했다.

자라면서 엄마에게 체벌을 받을 때도 종종 있었는데, 종아리를 맞아 잉잉 우는 나를 엄마는 늘 다시 안아주셨다. 그리고 내가 어떻게 태어나게 됐는지 얘기해 주셨다. 너는 이 세상에 꼭 태어났어야 할 아이였다고, 엄마는 몇 번이고 속삭이셨다.



저 사진 속에 멈춰진 사람들은 이후 자신이 어떤 굴곡을 살게 될지 모를 것이다. 거친 세상으로부터, 또 서로에게 수도 없이 베이면서도 기어이 서로를 부둥켜 안은 채 삼십 년을 보내게 될 것도. 그 세월 안에서 나는 전지하다. 사진 속 눈빛이 또렷한 젊은 아비에게 그 실수는 하지 말아 달라고 권해 본다. 맑은 미소의 둘째 언니에게는 앞으로 너무 많은 걱정을 이고 살지는 말자고 손 내밀기도 한다. 큰언니는 자기 몸보다 남을 더 돌보는 사람이니 나로선 평생이 고맙고 안쓰럽다. 지금의 나와 비슷한 연배일 어미는 말 없이 그냥 안아주고 싶다. 엄마를 보니 마음이 저리다.

돌이키면 괴로움이 더 크게 보였다. 그럼에도 이제까지 살아왔다는 건 그만큼 많이 넘고 이겼다는 거겠지. 칠순을 바라보는 아빠도, 할머니가 된 엄마도 다 이긴 사람들이구나. 사진 속 저 갓난아기도 제 아빠 엄마처럼 끝까지 이길 수 있을까. 앞으로의 삼십 년도 무사히 넘을 수 있을까. 저 젊은 부모도 지금의 나처럼 자신이 없었을까.




사진을 보며 굽이굽은 세월을 거슬러 오르다 보니 가족은 본래 따뜻한 선물이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사랑의 빚을 가장 많이 진 내 인생이 그걸 증명하고 있다. 옛 사진 속의 가족이 어린 나무와 같다면, 지금 우리는 한껏 울창하고 푸르러졌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나는 그 그늘의 은덕을 입은 자이다. 이것도 모른 채 무심했던 서른 해가 부끄럽다. 이제는 내가 그늘이 되어 줄 차례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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