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냄새를 마음껏 맡을 수 있는 곳
책방에 앉아 가만히 창 밖을 보고 있었다. 분명 조금 전까지 뭉게구름이 가득했는데, 어두워지는 듯싶더니 소나기가 내린다. 후덥 한 기운이 올라오면서 함께 흙냄새가 난다. 곧 비릿한 비 내음도 함께 난다. 땅이 흠뻑 젖을 만큼 비가 내리고 났더니 시원한 여름 냄새가 진동을 한다. 코로 숨을 한껏 들이마셔 몸속으로 여름 냄새를 넣었다.
계절의 냄새
’계절의 냄새’라는 말을 공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런 게 어디 있냐고 되묻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있고말고, 계절이 바뀌면서 공기에서 나는 계절 특유의 냄새들이 있다. 여름밤, 겨울밤, 눈 오기 전에, 비 오기 전에 나는 냄새, 가을 저녁에, 계절에 따라 바뀌는 미묘한 공기의 냄새가 모두 다르다는 걸 잘 모르나 보다.
비염도 있는 내가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냄새에 예민하다. 좀 유난스러울 만큼. 내 의지와 상관없이 코 속으로 냄새들이 들어왔다. 어릴 적부터 그랬다. 엄마가 음식에 평소와 다른 재료를 넣으면 귀신같이 알아냈다. 맛을 잘 본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냄새에 아주 예민하게 반응하는 거였다. 그리고 곳곳에서 나는 냄새를 구분한다는 걸 알게 되면서 좋아하는 냄새와 싫어하는 냄새를 구분해 내고,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더 열심히 냄새를 맡았다.
어릴 때에는 시원한 락스 냄새를 좋아하기도 했고, 과학실이나 음악실에서 나는 쿰쿰하고 시큼한 향을 좋아하기도 했다. 모든 시궁창 냄새가 아니라, 내가 딱 좋아하는 하수구 냄새가 있었다. 또, 시골에서 맡을 수 있는 여러 가지 냄새들을 좋아했다. 가을에 해가 질 즈음에 벼를 다 베어낸 들판에서 나는 차갑고도 구수한 듯한 냄새나, 할아버지 밭으로 가던 아주 좁고 캄캄한 수풀이 우거진 길에서 났던 물기가 있는 초록의 냄새들을 좋아했다. 엄마의 살 냄새와 섞인 화장품 냄새, 할머니 냄새도 좋아했다.
냄새에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같은 음식도 계절에 따라 냄새가 달라서 싱그러운 제철 청양 고추와 애호박, 감자를 넣은 ‘여름 된장찌개의 냄새’라던가, ‘새벽 눈 냄새’, ‘노을 냄새’, 습한 초봄 새벽이나 밤에 나는 ‘습습한 냄새’ 같은 나만의 냄새 이름들이 있었다.
어른이 되고 보니, 인공적인 향들을 어찌나 잘 만들어 내는지 들꽃의 냄새나 바삭하게 마른빨래에서 나는 햇빛의 냄새들도 살 수 있었다. 처음에는 그런 향 들이 너무 좋았다. 향수를 찾아보고, 샴푸, 세제, 섬유유연제 같은 것 들을 몸과 방에 듬뿍 뿌리면서 남들에게 향을 내뿜고 그 향에 나도 취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그것들이 코와 머리를 아프게 하고 질리게 했다. 좋아서 한 것들이 스스로를 힘들게 했다.
그래서 요즘은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용하는 물건에서 향을 다 없애버렸다.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들에서 느껴지는 향을 은은하게 느끼고 싶었다. 계절이 바뀌면서 나는 냄새나, 도서관에서 나는 책 냄새처럼 일부러 만들어진 게 아닌 시간과 공간이 만들어 내는 향이라면 언제나 환영이었다. 알고 보니 난 그런 냄새들을 사랑하는 거였다.
냄새를 사랑한다니,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좋은 냄새를 맡으면 마음이 울렁거리면서 기분이 좋아 절로 미소가 나온다. 아주 순간에 냄새가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행여나 놓칠세라 콧구멍을 벌름거리면서 빨리 많이 맡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나면 아주 흡족한 기분이 든다. 마음이 가득 찬다.
시골에 왔더니 그런 냄새를 가득 맡을 수 있어서 좋다. (종종 농약 냄새를 맡을 때가 있어 당황스럽다.) 저녁을 먹고 종종 남편과 산책을 한다. 그럼 그때마다 공기 중에서 미묘하게 느껴지는 계절의 냄새를 가득 맡을 수 있다. 바람 사이에 가끔 이름 모를 향기가 섞여 오기도 한다. 그 향기가 너무 향기롭고 달콤해서 또 웃음이 난다.
오늘도 마음껏 초여름 밤 냄새를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