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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보리 Aug 06. 2022

초보 농사꾼의 옹졸한 마음

만신창이 텃밭 농사일기

길을 다닐 때마다 다른 밭에 심겨 있는 옥수수만 눈에 들어온다.


'아니 저 집은 뭘 했길래 옥수수가 저렇게 자랐지?'


우리 집 애들(옥수수)은 심은지 벌써 한 달이 넘었는데 모종에서 그 상태 그대로 키만 자라서 꼭 나무젓가락 같이 생겼다. 그런데 길가에 있는 옥수수들은 거짓말 조금 보태서 팔뚝만 한 줄기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런가 자꾸 길가에 옥수수만 눈에 들어온다. 다른 집들은 옥수수가 얼마나 자랐는지, 대가 얼마나 굵은지 벌써 옥수수가 달린 곳도, 아직 작지만 튼실하게 자라는 곳도, 다 제 각각이다.


그렇지만 분명한 건 우리 집 옥수수는 비실비실 하다는 것이다.


사실 난 '식물 파괴자'라고 스스로를 칭했었다.

식물을 기르는 데 에는 취미 같은 게 없었다. 분명 엄마도, 아빠도 집에 분재며 꽃나무며 참 열심히도 잘 기르셨는데, 나는 어째서 인지 식물은 좀 어려웠다. 물을 너무 많이 줘도, 너무 적게 줘도 안됐다. 기르기 쉽다던 다육이나 선인장 같은 애들도 나한테서는 못 버텨냈다. 아마도 식물들도 살아있는 생명이라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정성과 노력, 관심을 들여야 잘 살 수 있을 텐데, 도시에서 살 때에는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어서 그랬는지 그걸 잘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런 내가 농사를 짓겠다고 시골로 내려왔으니 내가 생각해도 조금 어이가 없긴 했다. 다만 땅과, 바람과 물, 햇빛이 있으니 화분에서 자라는 애들보다는 좀 더 자연의 힘에 맡길 수 있겠구나 하는 약간은 비겁한 생각이 조금 있었다.


텃밭 3년 차, 농사 1년 차.

사과는 아직 무지렁이라 아버님이 하라는 대로, 아주버님이 하라는 대로, 하면 되니까 내 실력이라고 할 법한 게 아무것도 없다. 남편은 나보다는 좀 더 낫긴 했지만, 시키는 것만 해봐서 남편도 많이 알지는 못했다.


텃밭은 자연의 힘으로 자라긴 하는데 그게 또 맘대로 잘 안됐다. 토마토는 순도 잘 못 치는 데다가 재크와 콩나무 같이 계속 자라서 괴물같이 무섭게 자라났고, 고추에는 온 동네 벌레들이 다 모여든 것 같았다. 또 풀은 어찌나 빨리 자라는지 돌아서면 자라 있는 것 같았다. 약을 치지 않겠노라고 계속 우기는 탓에 손으로 뽑거나 낫으로 쳐냈는데, 그것도 쉽지 않았다.


텃밭은 온전히 나와 남편이 기르긴 한 거니, 마치 우리의 실력을 보여주는 것만 같아서 자꾸 마음이 옹졸해졌다.


처음엔 땅을 탓했다. "우리가 비료를 너무 안 줬나 봐", "땅에 양분이 하나도 없나 봐"라고 이야기하며 잘 자라지 않는 채소들의 핑곗거리를 찾았다. 그런데 거름이 많이 필요하다던 호박이 아무것도 없이 마당 반을 점령할 만큼 자라나는 걸 보니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그다음엔 우리가 혹시 종류를 잘못 심었는지, 모종을 잘못 산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하지만 사실 둘 다 알고 있었다. 우리의 관심과 실력이 부족하다는 걸.


애써 변명과 핑곗거리를 대 가며 우리의 부족함이 원인이 아니길 얘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올해 텃밭도 바쁘다는 핑계로 잘 돌보지 않아서 또 토마토는 사방팔방 괴물같이 뻗어나갔고, 큰 토마토는 병이 와서 열매가 달리자마자 모두 뽑아버렸으며, 약을 안 친 탓에 상추는 뒷면에 벌레가 빼곡히 있는 걸 목격하고는 먹지 못했다. 그 와중에 잘못 산 모종도 있었다. 상추라고 사온 모종은 배추였고, 벌레들의 좋은 밥이었다. 덕분에 채소 배틀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버린 게 절반은 됐다. 텃밭이 만신창이다.


그 와중에도 옹졸한 초보 농부는 제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여기저기 남의 텃밭을 기웃거리며 어떻게 저렇게 잘 기르는지, 우리 밭에 있는 만신창이 작물들과 자꾸 비교를 하게 된다.



그래도 호기심과 도전정신은 뛰어나서, 자꾸 길에서 뭘 캐다 텃밭에 심기도 하고, 텃밭에 심으려고 씨앗을 모아 오기도 한다. 또 누가 나눠 준다고 하면 신이 나서 받아다가 마당에 옮겨 심는다. 올해는 허리 정도밖에 자라지 않았지만 해바라기도 심었었고, 남편 친구가 '방아'라는 풀도 줘서 심고, 길에 나 있던 꽃도 마당에 옮겨 심었다.  물론 모두 조금 이상하게 자랐지만 말이다.



만신창이가 된 텃밭을 보고 그래도 내년에는 이렇게 저렇게 심어봐야겠다며, 남편과 함께 벌써 내년을 기약해 본다. 큰 토마토는 심지 말고, 옥수수는 집 뒤쪽으로 심기로 하고, 감자는 다시 씨를 사다가 심고, (작년에 수확한 감자를 심었더니 씨감자 만한 게 나왔다.) 오이는 좀 늦게 심기로 했다.


그래도 텃밭에서 막 딴 싱싱한 채소들을 먹을 때면 옹졸한 마음이 조금 풀어진다.


"이렇게 저렇게 하다 보면 나아지겠지" 둘이 텃밭을 보며 허허 웃고 말았다.



가느다란 줄기에서 아주 조그만 열매가 달렸다. 알알이 찬게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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