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커피점의 나비효과
원래 책방이 있던 가게에서 1킬로 정도 떨어진 곳에 프랜차이즈 커피점이 생겼고, 그 커피전문점의 나비효과로 개업한 지 3개월 만에 나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청년 사업이 시작한 건 8월. 우연히 지원했는데 덜컥 되었고, 갑자기 서점을 준비하게 되었다. 마을의 빈 공간들을 임대해 놓은 상태였는데, 원래는 숙소로 예정되어있었으나 모두가 숙소로 사용하길 거부한 작은 옛 상가 건물이 있었다. 세 집이 나란히 붙은 형태의 단층 건물이었다. 임대되어 있는 곳은 두 집이었고, 맨 끝에는 할아버님이 살고 계셨다. 작고 아담해서 잘 고쳐서 이 자리에서 서점을 하는 게 괜찮을 것 같았다. 다른 서점 파트에 지원한 분들에게 옆에서 같이 하자고 열심히 설득해 보았지만, 워낙 낡고 작은 건물이라 그런지 다들 썩 내켜하지 않았고, 그래서 혼자 슬슬 가게를 청소하고 고쳐서 오픈 준비를 했다.
얼마나 비어 있었던 곳 일까?. 낡고 오래된 물건이 집 안에 가득했다. 지나다니시는 동네 어르신들이 예전에 이곳이 장사가 제법 잘 되었던 쌀집이었다고 알려주셨다. 그 후엔 연탄 집도했었다고 한다.
장사가 잘 되었던 집이라고 하니 혹시 나도 그 기운을 받아 서점이 잘 되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혹은 바람이기도 했다. 잘 되길 기대하는 마음으로 낡은 것들을 뜯어내고, 열심히 고쳤다.
그래도 간판도 달고, 새로 칠하니 그럴듯했다. 내부가 좁았지만 책도 적으니 그게 또 나름의 매력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가 오픈을 한 게 10월 말이었고, 12월 말에 사업자등록을 했다. 처음 맞이한 문경의 겨울은 너무 추웠지만, 방음이 전혀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처음 내 가게를 얻었다는 마음에 장사가 되든 안되든 재미있었다.
해가 넘어가고 3월이 막 되던 찰나 옆집 할아버지가 가게를 찾아오셨다. 거의 들르는 일이 없으셨는데 무슨 일인가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드렸다.
"여기 건물 주인이 자기가 쓴다고 나가라고 했어, 나는 집도 벌써 구해서 곧 이사 갈 거야. 주인이 얘기한다고는 했는데 먼저 귀띔해 주는 거야. 알고 있으라고"
이제 개업한 지 3개월도 채 되지 않았는데 이사라니!
아마도 계약은 8월까지 일 테고, 그럼 그때까지 폐업을 하거나, 새로운 곳을 찾아 이사를 가야 했다. 처음 참여한 청년사업은 전년도 연말까지 지원이 끝난 상태였다. 그래도 알려야 할 것 같아 운영을 하고 있는 팀에게 연락을 했다. 건물 주인이 나가라는 통보를 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했다. 확인해 보고 연락을 준다고 했고, 조금 시간이 지난 뒤 걸려온 전화 너머로 들려온 대답은 "맞다고 하시네요. 8월까지 비워달래요"가 전부였다.
새 가게를 임대해 주겠다거나, 다른 공간을 준다는 대답을 원한 게 아니었다. 적어도 나는 갑작스럽고 난감한 지금 상황을 같이 고민해 주길 바랐다. 그런데 그건 동료였길 바란 내 착각이었다. 주최 측과 참가자 관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그들의 반응에 상처를 받았다.
그들은 다음 사업 때문에 내 가게 문제를 같이 고민할 겨를도 없이 너무 바빴다. 다른 지역에서 손님이 오실 때나, 높은 으르신들이 오실 때 사업의 결과물로 서점을 소개하기 위해 그분들을 모시고 잠깐씩 들렀다. 그럴 때에나 얼굴을 비추며 하는 짧은 인사가 전부였다. 바빠서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고민의 날들이 이어졌다. 가게를 더 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8월까지 하고 마무리를 하는 건지 하는 마음이 엎치락뒤치락 계속 뒤집어졌다.
그 무렵 가게 주인아주머니가 찾아오셨다.
“나도 그 가게 인테리어 다 하고 들어가서 돈 많이 들였어”
집주인 아주머니는 그 프랜차이즈 커피점이 들어오는 곳에서 음식장사를 하고 계셨다. 건물 주인이 거기서 새 가게를 하겠다고 계약이 끝나는 대로 비워달라 했다고 했고, 그렇게 그 아주머니는 본인의 건물로 오시면서 내가 떠밀려 나가게 된 거였다.
아주머니는 이제 막 가게를 차렸는데 내 쫓기듯 나가게 된 나보다 자신의 처지가 더 중요했다. 가게 안으로 들어와서 여기를 이렇게 저렇게 고치면 되겠다고 하면서 자신의 계획과 푸념을 잔뜩 쏟아 놓고는 미안하게 됐다는 말 한마디 없이 사라지셨다.
이게 무슨 일 인가 싶었다.
이 상황에서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정신이 없었다. 사실 도시였다면 그냥 막무가내로 버틸 수도 있었을 테지만, 시골에서 동네 시끄럽게 할 수는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책방에서 100미터 즘 떨어진 곳에 원래 있던 가게가 나가면서 '임대'현수막이 붙은 걸 봤다. 부동산에 연락해 8월까지 기다려 달라 부탁을 드리고 이사 준비를 시작했다.
얼떨결에 계획에도 없던 서점을 시작했지만, 이렇게 된 거 몇 년은 더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님이 별로 없어도, 책도 많지 않아도 내 공간이 있다는 게 좋았다. 내가 고른 책을 좋아하는 손님들도, 멀리서 종종 찾아주기 시작한 단골이 막 되려는 손님들도 생각이 났다.
이사 결정을 하고 났더니 한결 머리가 가벼워졌다. 이젠 또 한 번 밀고 나가면 됐다.
그들은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요”라고 얘기를 하긴 했지만, 이미 내 마음은 닫힌 상태였다. 혼자 새 책방과, 기존 책방을 왔다 갔다 하며 천천히 내 속도대로 또 새로운 공간을 고치고, 칠하고, 움직였다.
그렇게 개업한 지 채 일 년도 안돼서 9월 말 새로운 장소에서 두 번째 오픈을 했다. 또 한 번 오픈했다고 축하를 받았고, 새로 옮긴 책방이 더 환하고 좋아 보인다고 많이 이야기를 해 줘서 참 다행이다 싶었다.
그리고 조금은 복수의 마음으로 커피를 먹을 일이 있어도 그 프랜차이즈 커피점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
여전히 문경은 조용하고, 서점 역시 조용하다. 간간히 오시는 손님들과, 이제 ‘단골’이라 부를 만한 얼굴을 아는 체할 수 있는 손님들도 생겼다. 그렇게 조용한 날들을 이어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