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망진창 메주콩(노란 콩) 농사기-2
그렇게 코로나에 걸려 버렸다.
내가 걸리고 났더니, 남편도 당연스럽게 코로나에 걸렸다. 둘이 집에만 있으려니 할 게 없었다. 그래 이참에 콩밭에 가서 폴이나 베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증상이 좀 나아지고 나서 새벽같이 채비를 하고 나섰다.
4시 반. 아직 깜깜한 여름 새벽.
옷을 입고, 낫과 호미, 장화를 신고 장갑을 챙겼다. 냉장고에 있던 시원한 보리차를 보냉 주전자에 담고, 컵이랑 간단한 먹을거리를 챙겨서 트럭을 타고 콩밭으로 갔다. 콩밭에 도착했더니 너무 깜깜해서 조금 으스스했다. 차에서 잠깐 기다리다가 푸르스름한 '파란 시간'이 되어 남편과 함께 낫과 호미를 들고 비장하게 콩밭으로 나섰다.
콩밭은 생각보다 더 가관이었다. 콩 고랑 사이마다 풀이 콩 줄기와 엇 비슷하게 혹은 더 크게 자라 있었고, 콩은 그런 풀들과 경쟁을 하며 자라서 키만 휘청휘청 멀대 같이 자라 있었다. 심지어 풀에 기대어 자란 탓에 풀을 베어 냈더니 콩 줄기가 힘없이 눕기도 했다. 남편과 한 줄씩 자리를 잡고 쪼그려 앉아 손으로 풀을 베어나갔다. 콩을 심을지 몰라 좁게 심은 탓에 예초기 같은 걸 사용할 수 없어서 손으로 하는 게 최선이었다.
안 그래도 코로나에 걸려 체력이 떨어져 있었는데, 정말 땀이 줄줄 비 오듯이 흘러내렸다. 옷을 쥐어서 짜내면 소금기 가득한 땀이 주르륵 나왔다. 한참 풀을 베다 보니 여명이 밝아 오고 있었다. 제법 상쾌하고 시원한 바람이 개운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해가 뜨기 시작했더니 뜨거운 여름 햇빛에 벌레들 까지 도저히 풀을 벨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 이름을 모르는 날 벌레에게 눈두덩이 와 얼굴을 쏘여 얼굴이 아주 볼만했다. 최대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은 열 시 정도 까지였다.
그렇게 삼일을 더 새벽같이 나가 콩밭에 풀을 손으로 다 뽑았고, 결국 너무 지쳐 마지막 두어 줄은 포기했다. 그 구역에 심긴 콩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 체력으로는 더 이상 무리였다. 콩 반 풀 반 이런 꼴로 농사를 짓고 있는 게 우스워 둘이 한참을 웃었다.
그러고 나서는 또 콩밭을 가끔씩 찾아갔다.
주변에서 콩밭에 벌레가 많아 약을 친다기에 가서 보고, 우리 밭엔 벌레가 없어서 괜찮구나 하고 넘어가고, 또 바이러스가 유행한다길래 또 콩밭에 한 번 가서 몇 개 깍지를 까 보니 또 깨끗한 콩이 들어있었다. 또 우리 밭은 괜찮구나 싶어 그렇게 약을 쳐야 하는 시기를 놓쳐버렸다.
슬슬 열매가 여물어 갈 즈음에 콩밭에 갔더니 벌레가 콩잎을 파 먹어 망사처럼 되어있었다. 벌레가 없던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랑 시기가 달랐던 거라 계속 관찰했어야 하는데 경험이 없으니 괜찮을 거라 생각했던 게 문제였다. 다행히 콩알까지 병이 생긴다고 했던 바이러스는 걸리지 않은 것 같았다.
중구난방으로 자란 콩 줄기들과, 그 사이사이 자란 들풀들이 펼쳐져 있는 광경이 참 우습기도 하고, 그렇게 대충 키웠는데도 스스로 자라나 열매를 맺은 콩들이 대견해 보이기도 했다. 어쩌다 보니 의도치 않게 무농약 콩이 되어있었다. 깍지를 까 보면 동그스름한 노란 콩알이 두 개, 세 개 나왔다. 내가 키웠다고 하기보다 스스로 혹은 자연이 키워서 자라났다는 게 더 맞는 거 같았다. 농작물은 농부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는데 우리 집 콩은 내 발자국 소리가 아니라 고라니나 멧돼지 발자국 소리를 더 많이 듣고 자랐을 것 같아서 조금 미안했다.
이제 열매가 달렸으니 다음은 콩을 수확해야 했다. 늦가을까지 콩 줄기채로 바짝 말린 다음에 콩을 자르고 기계로 털면 되는 일이었다. 뭐든 시작이 중요하다는 말은 농사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처음에 콩을 심을 때 마음대로 대충 심은 탓에 수확도 손으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밭 한쪽에 천막 같은 비닐을 깔아 두고, 남편과 함께 손으로 콩 줄기를 잘라 모아서 쌓아놨다. 바짝 마른 건지 덜 마른 건지 가늠이 되지 않아 잘라서 좀 더 말리면 되지 않을까 싶어 자른 콩을 모아서 펼쳐놨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수확을 한다고 생각하니 풀을 뽑아낼 때 보다 훨씬 즐거웠다. 중간중간 잘 자란 콩들이 신기했다. 그렇게 손으로 콩을 손으로 다 잘라서 쌓아두었고, 며칠 지나서 한번 뒤집어 줬다.
그렇게 좀 더 말려야지 싶은 찰나 비 소식이 들려왔다. 잘라 놓은 상태에서 비를 맞으면 다시 또 말려야 해서 비가 오기 전에 털어야 했다. 부랴부랴 농기계임대 사업소에 가서 콩 탈곡기를 빌려 밭으로 갔다. 임대사업소에서 설명해 주시기도 했고, 유튜브에서 찾아서 보기도 했다. 수레로 잘라 놓은 콩들을 탈곡기 앞으로 모으고, 콩 줄기를 탈곡기에 넣었더니 신기하게 콩이 아래로 떨어져 모였다.
그런데 아직 콩이 덜 말라서인지 기계 안으로 들어가야 할 콩들이 껍데기가 나오는 쪽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기계를 멈추고 속도를 조절했지만 별반 다르지 않았다. 껍질 속에 콩이 너무 많이 섞여 나오고 있었다. 급한 대로 여기저기 물어보니 다시 껍데기를 여러 번 넣어야 된다고 했다. 그제야 안심이 되긴 했는데 문제는 큰 콩알들이 껍질과 함께 바닥으로 떨어지는 게 아니라 총알처럼 아주 멀리 날아갔다. 야속하게도 알이 꽉 찬 콩들이 더 멀리 날아갔다. 멀쩡한 콩들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게 아까워 파란 천막을 있는 대로 길게 늘어트려 펼쳐놨다. 하나라도 더 모으고 싶었다.
그렇게 세 시간 정도를 하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콩을 터는 일도 아주 절묘하게 딱 맞게 끝났다. 바닥에 떨어진 콩알을 다 줍고 싶었지만 비가 자꾸 오는 탓에 얼른 기계를 반납해야 했기에 그럴 시간이 없었다. 기계를 반납하고 집으로 와 트럭 뒤에 실어 놓은 콩자루 5개를 현관으로 옮겼다. 정신없이 움직이고 나서야 서로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였다. 콩을 털면서 나온 먼지 덕분에 둘 다 얼굴이 볼만했다.
그렇게 콩자루 5개는 현관에서 겨울을 났다. 콩을 심은 땅도 천평이 안되긴 했지만 참 하찮은 수확량이었다.
어떻게 도매로 파는지도 몰라 인터넷 사이트에 올려두고는 그냥 그렇게 겨울이 지났다. 그리고는 시간이 될 때마다 아주 조금씩 남편과 둘이 식탁에 앉아 쟁반에 콩을 한주먹씩 올려 돌, 쭉정이, 상처가 난 콩들을 골라냈다.
다행히 아랫집 할머님이 우리가 콩 농사를 지은 걸 아시고는 어떻게 했냐 물어보시길래 아직 집에 가지고 있다는 걸 말씀드렸더니 읍내에 두부공장에서 받아주신다고 알려주셨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콩을 마저 골라내어 두부공장에 가져가면 첫 콩 농사는 모두 끝이 난다.
농사를 잘 못 지어 귀가 자꾸 얇아지는 탓에 누가 뭐가 잘 된다 이야기하면 자꾸 마음이 흔들린다. 올해도 노란 콩을 심을지 까만 콩을 심을지 아직 고민 중이지만 어쨌든 콩은 심어야겠다. 한번 해 봤으니까 올해는 조금 더 나아질 테고, 첫 콩농사의 하찮은 수확량보다는 좀 더 많이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엉망진창 콩 농사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