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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현 Mar 16. 2023

우동에서 산나물로

뜻밖의 전개 3

우동에서 산나물로

 

 

 

 

 

백수가 되어 우동을 배우러 다닌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신우회 한 친구가 나를 불렀다. 본인 교회에서 같이 식당 자원봉사를 하시는 분식집 사장님을 소개해 주기 위함이었다. 하나님께서 그 친구에게 날 도와 주라는 마음을 강하게 주셨나 보다. 그렇지 않았다면 왜 연락까지 했겠는가? 서로 친하지도 않은 사이였는데. 주님 없이는 설명이 안되었다. 그는 기쁘게 나를 도와주었고, 나는 끝까지 감사했다. 분식집주인은 장사가 잘 안 되어서 낮에는 분식집 일을 하고, 밤에는 차 뒤에 설치한 포장마차에서 우동과 자장을 파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낮에 일하면 밤에 일하기가 피곤했고 밤에 일을 하면 낮 동안 피곤해서 일을 할 수가 없어서, 낮과 밤, 둘 다 일 할 수는 없음을 깨닫고 있던 차였고, 때마침 나를 소개받았으니 포장마차를 나보고 하라 했다. 트럭 인수자금은 삼백만 원. 그 돈이 없다고 했더니 동업을 하자고 한다. 내가 그토록 하고 싶었던 우동집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친구 덕분에 주어진 것이다. ‘생각해 보고 올게요’라고 말은 했지만 내일부터 당장 나가고 싶었다. 하나 인생이란 것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다음 날, 아내를 따라 교대역에 있는 한 음식점을 갔는데, 그곳 사장은 우리와 인연이 있는 분이었다. 양재동에서 설렁탕집을 시작할 때, 이곳 사장에게 배워서 시작한 것이었는데, 그 후 이 집은 광우병파동을 겪으며 설렁탕집을 산나물집으로 전격 교체한 후였고, 인테리어도 새롭게 한 때였다. 아내는 교대 역 부근에서 볼 일이 있어서 나에게 같이 가자고 했던 것이고, 볼 일을 다 보고 점심때가 되어 근처에 인연이 있는 그 음식점에 들어간 것이었다. 메뉴도 바꿨다고 하니 인사차 들린 것이다. 비록 우리는 망했지만 이곳은 변신을 한 후에도 장사가 잘 되고 있었다. 신발이 어수선하게 세 줄이나 즐비하게 어지럽게 놓여 있었고, 밥 먹을 자리는 겨우 하나, 6번 테이블이 남아있었는데, 제일 인기 없는 자리였겠지만 그런 것쯤은 분별이 안 될 정도로 장사가 잘 되고 있었다.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사장이 인사하러 와주었다.

 

“장사가 잘 되네요.”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이거 하세요. 저는 미국 갈 일이 생겼어요.”라고 하는데, 방금 전까지 아내와 ‘이거 되는 장사 내. 하려면 이런 걸 하면 좋겠다’ 하며 맞장구를 치고 있었기에 관심이 있었다. ‘난 백수인데…’ 생각해 보겠다고 하고 돌아섰다. 그날 기도모임에 가서 아내는 오늘의 일을 나눴고 함께 기도했다. 대체적인 추세는 인수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아내는 아는 목사님께 한번 더 물어보고 거기서도 인수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면 해 보자고 했다. 현재의 상황은 무일푼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래서 기도를 받으러 가기로 했다. 한편 우리가 무일푼인 것을 알아챈 산나물 집주인은 크게 실망하고는 침착하게 말했다. “사흘 시간을 드릴 테니 그때까지 답을 주세요.” 그러자 아내가 나흘을 달라고 요청했다. “그렇게 하세요.” 사장을 만나고 나와서 나는 아내에게 물었다. ‘왜 나흘인가?’ 아내는, 사흘째 되는 날 기도받기로 했으니까 목사님 이야기를 들어보고 결정하자는 의견이었다. 나는, 그러지 말고 일단 사장에게는 못한다고 말하고 기도는 받지 말던가, 아니면 약속은 한 것이니 그냥 가서 기도만 받아보자고 했다. 그러나 아내는 일을 정할 때 기도가 먼저였다. 나는 그러다 안되면 아내가 더 크게 아쉬워할 것 같아서 했던 말인데 걱정이었다.

 

기도를 받으러 갔다. 목사님은 우리를 보며 웃으셨다. 나는 목사님께 따로 말씀드릴 것이 없었다. 이미 끝난 일을 묻자니 어색한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목사님이 느닷없이 말씀하셨다. ‘어제 두 분을 놓고 기도하는데 콩나물이 보였어요.’ 하시는데 깜짝 놀랐다.

 

‘엇! 산나물 집인데, 나물은 나물인데…’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렇지 않아도’하며 쫙 설명을 드렸더니 기도를 해보자고 하신다. ‘다 차려진 곳에 걸어 들어갈 것이다. 불경기가 없을 것이며, 돈을 많이 모을 것이다.’ 하고 기도하시더니, 목사님께서 “해도 될 듯하네요”라고 하셨다. 아내는 하기로 결심했다. 돈은 한 푼도 없었으나 주님께서 마음을 주셨고, 기도하고 확인했으니 다음 날 계약을 했다. 집 보증금을 빼서 주기로 하고 먼저는 꿔서 계약을 했고, 그다음은 기도에 들어갔다. 같이 기도하던 부부가 도우라는 마음을 주신다며 한 기둥을 받쳐 주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 바쁜 친구가 찾아와서 돈은 어떻게 구하고 있냐고 물었다. 대충 두리뭉실하게 이야기했더니, 큰맘 먹고 최선을 다할 각오로 임해도 쉽지 않은 일이라며 나의 태평한 자세를 탓했다. 나는 돈 꿀 사람으로 그 친구가 생각났었지만 저렇게 말하는 걸 보니 못 꾸겠다고 마음을 접었는데, 거기서 또 한 기둥을 받쳐주었다. 그는 꿔주려 작정하고 와서 나의 자세가 어떤가 보려 한 것이었는데 결국 나의 자세 보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나 보다. 이제 천만 원만 있으면 된다. 그러나 나는 구름 한 조각을 보고 비가 올 것을 알아차린 엘리야의 심정은 아니었고, 구름 99 조각을 주었다 할지라도 남은 한 조각이 더 크게 보이는 심정이었다. 그러고 있는데 오랜만에 한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대화 중에 그 친구가 십 년 만에 꿔준 돈 천만 원을 겨우 받았다는 얘기를 하는데, 그 소리를 듣는 순간 ‘그 돈이 내 돈이다’ 하는 생각이 들어서 꿔 달라고 했고, 꿔줬다. 날짜가 일주일이나 남았건만 돈이 다 구해졌다. 그것 참. 그때 아내가 나를 불렀다. 내가 우동집을 하고 싶어 아쉬워하는 것을 안 것이다. 그래서 말하길, 산나물 집을 할 것인지, 아니면 안 할 것인지 확실히 하라고 했다. 주님의 음성을 좀처럼 못 듣는 나로서는 기로에 섰다. 우동집을 하고는 싶었지만 그건 내 마음이었고 산나물집은 별로 좋아하는 메뉴가 아니어서 갸우뚱하고 있으니 아내는 그 태도가

 

확실해야 정말 이 가게를 할 수 있다며 다짐을 받기 원했던 것인데, 좀처럼 마음을 정하기가 어려웠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원하느냐, 아니면 내가 하라는 것을 하기 원하느냐?’ 내 생각은 주님 생각과 달라 높이와 깊이와 넓이가 얕았다. 그래서 주님이 원하신다는 말에 정답을 찾은 듯 기꺼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내려놓고, 주님께서 하라는 것을 해야죠.’

 

그렇게 마음이 결정되었고, 산나물집은 시작되었다.

 

이전에 친구에게 소개받았던 분식집 사장에게 산나물집을 놓고 고민하고 있는 상황을 미리 이야기했었다. 아마 안 될 테지만 이런 제안이 있어서 며칠 생각해 본 후에 나가겠다고 했더니 천천히 잘 생각하고 와도 된다고 했었다. 아마 그 사장님은 ‘돈 삼백도 없어 쩔쩔매는데 몇 억 넘는 것을 어찌할 수 있겠나? 곧 오겠구나.’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껏 못 가고 있다. 그렇게 벌써 십오 년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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