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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현 Apr 15. 2023

터키여행

터키선교여행

 

2007년 여름

“어디로 가야 할까요?”

올해도 어김없이 여름 전도여행을 위한 기도가 시작되었다. 매년 봄쯤 기도를 시작하고 준비했다. 오늘도 찬양으로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집중시킨 후, 전도여행을 위한 기도에 들어갔는데, 먼저 어느 나라에 갈지를 위해 기도했다.

“도도도 가라 도도도 가라” (방언의 일종)

“하나님, 말씀해 주세요!”

기도 후, 주신 마음을 나눠보았다.  

“이번 전도여행은 선교사님과 연결해서 가는 것 같지는 않고, 마치 일반여행처럼 가이드를 통해 땅 밟기 하는 것이 될 것 같습니다만…”

“저도!” “저도 그런 마음을 주셨어요!”

그렇게 서너 명이 일치하니까 그날 떠나야 할 나라가 단 한 번에 결정됐다. 터키로!

 

헌데 문제가 있었으니 돈이었다. 동남아로 갈 때보다 비용이 두 배가 들었다. 아무런 사심 없이 처음 든 생각은 '못 가겠다'였다. 사는 것이 어렵고, 기적은 일어나지 않고 갈수록 힘든데 전도여행 비용마저 비싸다니! 때려치워라! 다들 이런 심정이 아니었을까? 하나 왜 말들을 못 하는 걸까? ‘경기가 나쁘니 싼 곳으로 갑시다. 캄보디아에 있는 보고 싶은 S선교사에게 갑시다.’ 하고 외치지 못하고 다들 가만히 있었다. 왜냐하면 전도여행은 돈이 아니라 기도로 결정하기에 그랬다. 주님 가라는 곳으로...

 

2주 후

얼마 지난 후 다시 모였을 때, 1 자매의 입에서  안 간다는 말이 사라졌다. 무엇을 믿는 걸까? 돈이 해결되었나? 2 자매는 전도여행 얘기만 나오면 오래전부터 터키로 가고 싶어 했었다. 그런데 막상 올해 터키가 되니까 뛰며 기뻐했으나, 하필 요즘이 가장 재정적으로 힘든 시기인 것이 문제였다. “왜 이때에 터키를 가느냐!” 신랑은 가지 말라고 하나보다. 평상시 남편의 말을 존중하지만 터키만큼은 오랫동안 부르짖었기에 고민에 빠졌다. 과연 결과가 어찌 될지 주목된다. 3 자매 역시 터키를 가고 싶어 했기에 눈물 흘리며 기뻐했다. 4 자매는 이들이 기뻐하니 덩달아 좋아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마음이 무거웠다. 언제 어디서나 두 종류의 사람들이 공존하는 것이다. 가볍거나 무겁거나. 이왕이면 맘이 가벼운 것이 좋은데 그게 맘대로 안되니 문제다!

 

한주가 가고, 또 한주가 왔다

한 주, 또 한 주 지나니 결정을 빨리 해야 만 했다. 갈수록 비싸지는 비행기 값에 쫓겼고, 결정을 못하면 다음단계로 나아갈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러했다. 그런데 아내는 급할수록 돌아갈 듯이 터키선교사님을 초청해서 브리핑을 듣길 원했다. 일부러 시간을 끄는 것은 아닌데 시간이 지연되었다. 아내는 이왕이면 그곳에서 활약하는 선교사와 함께하면 좋겠다 싶었고, 그분과 함께 하면 돈이 더 들지만 돈 때문에 조금 더 나은 은혜를 놓치는 것이 안타까운 듯 아쉬워했다. 난민촌도 가보고 싶어 했는데, 먼 과거와 현재를 모두 보고 싶은 걸까? 브리핑으로 일주가 또 지나갔다. 비행기 값은 계속 오르고 있었고 우리는 도망자처럼 계속 쫓기고 있었다. 어찌할 것인지 결정을 못할 때 우리는 마음이 힘들다. ’가부간 결단을 내리면 좋으련만’ 하고 생각하는데 그것도 아니다. B전도사님은 강릉을 갔다 오시더니 과감히 결단을 내리셨다. 터키에 안 가는 것으로! 체력이 문제였다. 결단해도 방향이 다르면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쯤에서 우리는 우리의 전도여행을 되돌아보았다. 늘 우연 같으면서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던 것이 기억났다. 이번에도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우왕좌왕 우연의 연속처럼 행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은 과연 어찌 인도하실지가 흥미진진하다.

 

갈 사람도 안 정해졌고, 그래서 갈지 안 갈지도 모르는데 팀장을 미리 뽑았다. 팀장 추천에 들어갔는데 한 자매가 무슨 느낌이 왔는지 제비 뽑기를 통해 뽑자고 했다. 평소 말을 잘 안 하는데 느낌이 왔나 보다. 혹시 세상 사람들이 자기를  팀장으로 몰아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나 보다.  그런데 주님도 그를 지명했다. 제비 뽑기를 통해 본인이 팀장이 되었다. 그것 참. 결국 자기가 팀장 안 하려고 제비 뽑기 하자 하고 그것에 의해 자기가 되었구나. 희한하구나. 한편, 이틀의 시간이 주어졌다. 8명이 최소인원인데 전도사님이 결단을 내리신 바람에 한 사람이 채워져야 했다. 다음 날, 판을 깰까 미안했던지, 민폐 끼침에도 불구하고 다시 가는 것으로 전도사님이 도전하셨는데, 이번에는 A형제가 틀었다. 저는 빠지겠습니다. 또다시 한 명이 필요했다. A형제 아내가 남편 대신 옛 친구를 택해 그는 적금 깨고 자리를 채웠다. 인원은 다 됐는데 그렇다고 A형제를 버릴 수 있나? 우리 모두 힘을 합해 돈을 모으고 함께 가는 것으로 마음을 모았다. 형제도 팀원들의 도움에 감사하며 동참하기로 했다. 돈은 언제나 큰 걸림돌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길가에 작은 돌 발로 차 치우듯 간단하게 해결됐다. 돈은 돈으로 해결되는 법이다. 돈 있는 자가 나타나 제가 플로잉 할게요! 하니 같이 간다.

 

5/23화 요일

오늘은 헬퍼 박자매가 기도모임을 인도했다. 터키땅을 떠올리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마음이 무엇인지 묵상하고, 다음 주에 이야기해 달라면서 기도 모임을 눈물로 끝맺었다. 언제나 터키가 자매를 울린다. 사람이 다 채워져서 급한 불은 껐고, 이제 잠시 평강을 찾아 일상에 돌아가 생활하면서 무더운 8월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그때가 되면 노랑 풍선을 타고 파랑 나라로 떠나면 된다. 한 자매가 회사 사정에 따라 잘하면 합류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한다. 6월 17일까지 잔금을 다 치르기로 했는데, 8명이 초과되어 일인당 3만 원씩 깎아준다고 한다. “깎아 준 돈으로 지중해 해변가에 있는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한 끼 멋진 식사를 할까요?” 했더니만 그러지 말고 우리들 먹을 간식을 사는 것에 쓰자고 한다. 멋있는 식사라고 해 봤자 한국에서 먹는 자장면에 비할 바냐? 먹는 욕심을 버리기로 했다.

 

7/18

터키 말고 비용이 저렴한 캄보디아로 가자 했던 캄보디아에서 서선교사가 갑자기 한국에 왔다. 천사로써 한국에 보내진 것을 나중이 되어 보니 알게 된다.

애 낳은 지 얼마 안 된 우리 딸이 갑자기 40도까지 열이 올라 나흘 동안 응급실에 갔을 때, 딸의 갓 태어난 아들을 돌봐 줄 사람이 필요했는데 우리는 전도여행을 가고 없는 때였다. 바로 그때 우리 대신 서선교사가 그 옆을 지켜줬다. 천사처럼. 캄보디아로 전도여행을 갔더라면 손주가 큰일 날 뻔했다. 요런 장면에서 난 주님을 만난다. 주님이 이미 그럴 줄 알고 예비하셨군요! 예비하시는 주님이심을 작은 일에서 강하게 깨우침을 감사.  

 

8/1

내일이면 분주하던지 한가하던지 괴롭던지 다 내려놓고 멀리, 아주 멀리 떠난다. 결국 올해도 가게 하신다. 우여곡절은 언제나 있었고, 이번에도 있었다. 해결되기 어려울 것 같은 일들이 쉽게, 당연하다는 듯이 해결되었으나 그 와중에 우리 마음은 이미 또 스트레스 속에 빠졌다 건져졌다를 반복했고, 늙었다는 표현이 맞는지 성숙되었다는 것이 맞는지 모르게 변화되고 있었다. 다 내려놓고 8박 9일 주님의 은혜 속으로 푹 잠기면 좋겠다. 올해는 영적 전쟁이 심해서 서로 싸울 수 있으니 서로 배려하고 조심하라고, 평상시 민감하지도 않던 형제가 기도하는 중에 주신 마음이라며 이야기한다. 그 말을 안 들었으면 내가 폭발했을지도 모른다. 하나 그 소리를 들었으니 어찌 싸우겠는가.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특별히 나를 사랑하셔서 미리 말씀해 주신 것 같다. 무기를 내려놓고 하늘을 바라볼 뿐이다. 올해 폭염이 심했고, 이제까지는 잘 버텼으나 마음에 뭔가 많이 쌓였는데, 그즈음 떠나서 타이밍이 좋다고 볼 수 있다. “자, 그럼 내일 11시에 공항에서 만나 터키전도여행을 떠나 봅시다.”

 

8/2 첫날

인천공항을 출발해서 이스탄불로 갔다. 오후 두 시 비행기를 타고 새벽 5시가 되어서야 이스탄불 호텔에서 잠을 잘 수 있었다. 시차가 여섯 시간 나는데, 터키가 늦으니까 그 시간을 빼주면 밤 11시에 자는 것이 된다. 첫날 도착해서, '오늘 예배는 없습니다. 피곤하니 어서 쉬세요' 하고 팀장이 말하기도 전에 노인네가 다 된 우리가 알아서 오늘은 그냥 씻고 자사고들 했다. 제비를 뽑아 얼떨결에 팀장이 된  팀장님은 제비가 되어 마음이 강남으로  날아가지 않았을까? 팀장이 말하기도 전에 자기들이 결정한다면 분노나 서글픔이 올라올 수 있지 않을까? 아무리 피곤해도 참으며 팀장의 결정을 기다리고, 팀장이 ‘오늘은 수고했으니 예배 없이 쉬겠습니다’ 했을 때, 그 소리를 듣고 아이처럼 기뻐하며 자러 갔어야 되는 것 아니었을까? 이래서 싸우지 말라는 소리를 했구나 생각된다. 구시렁구시렁 다 지가 팀장이야! 느끼며 화가 난다. 가뜩이나 리더가 리더력이 없을 때는 회원은 쫑알쫑알하다가 그래도 마지막엔 팀장에게 어떡할까요? 결정할 기회를 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무리 피곤해도 기도 잠시 짧게 하고 들어가요 하고 싶을 수도 있지 않겠나? 아니면 주께서 강력하게 예배하라! 하실 수도 있는데.. 다 자자! 내일 하자며 이미 발이 자기 배정된 방으로 향한다면 하나가 되겠는가! 이래서 전도여행 때 싸움이 많이 난다.

내가 일본 전도여행서 팀장 할 때 어쩔 수 없이 사사건건 나서니까 늘 두목같이 행하던 친구가 넌 뭔데 자꾸 나서냐? 해서 내가 팀장이야! 했을 때 기억이 나며 다신 팀장 안 할 거야 결심한 게 떠오른다. 사실 알아서 의논하고 자연스레 결정하면 되는데 마치 팀장이 이순신장군처럼 결단을 내려야 되는 줄 알았다. 너무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은 게 많다 보니 결정하기가 어려웠다. 팀장 아니면 그저 한 군데서 과자나 먹고 있으면 되는데 팀장이라 힘들었던 게 생각나며 주절주절 해본다. 어쨌든 팀장이 아무 소리 안 하고 노인들의 말을 잘 따라주어서 첫날 무사히 통과!

 

8/3목 요일

다음날 아침 6시에 밥을 먹고 7시에 출발하게 되어 있는데, 깨보니 7시 8분이었다. 어쩌나? 애가 이불에 오줌 싼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 닦고 세수는 해야 되겠고, 짐도 챙겨서 내려가면 최소 30분은 걸릴 텐데... 머릿속이 분주하고 당황이 되자 먼저 내 머릿속에 우리 식구들에게 배신감이 들었다. 깨워 주지도 않고 자기들끼리만 밥을 먹으러 가다니! 그러나 그것은 나의 큰 착각이었다. 내가 잘못하고도 남을 미워하고 있는데 아내가 침착히 말했다. “여보! 지금 새벽 1시 8분이잖아” 그렇다. 6시간 빼면 한밤 중이었던 것이다. 쑥스럽지만 다시 안심하며 취침했다. 잠시 후 이번엔 뭘 또 착각했을까? “여보! 또 한 시간 지난 건데 왜 그래?”  이번에는 6시간을 더해서 일어나야 되는 걸로 착각했나 보다. 숙면을 취해서 한 시간 잔 것이 오랜 시간 지난 것 같아 또 실수했다. 첫날, 세 번의 실수로 아내의 잠을 깨워 미안했으나 덕분에 남달리 빠른 시차적응이 되어갔다. 아침 5시 모닝콜이 정확히 울렸다. 아침은 뷔페였는데 분위기와 날씨가 좋았고 먹을 게 많았다. 점심은 케밥이란다. 현지 식으로 두 끼를 먹으려니 벌써 힘들다. 마치 광야에서 만나를 먹는 것 같구나. 불만이 터져 나와 '메추라기를 주세요' 했는데, 뒤늦게 합류한 자매가 주변사람들과 맛있는 것 사 먹으라며 엄마가 주신 돈으로 양갈비를 산다고 하고, 가이드가 장어를 한번 쏘겠다고 했다. 메추라기를 주시는 하나님을 이렇게 만났다. 만나와 메추라기와 광야! 느낌이 왔다. 왜 애굽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평을 했는가에 대해. 그 후로는 주는 음식에 감사하며 맛있게 먹겠다고 다짐했고 불만 없이 잘 먹었다. 물론 고추장과 김을 곁들였다. 음식은 그렇게 진행되었다. 다들 잘 먹어서 가이드가 ‘이 팀은 걱정 안 해도 안심해도 되겠다’ 생각했단다. 첫날 음식을 먹는 것을 보면 이 팀의 적응력이 보인다고 하던데, 오래된 가이드의 노하우였다.

 

8/3 오후

이스탄불을 떠나 앙카라로 갔다. 매번 가는 지역마다 호텔을 바꾸고 마지막에 다시 이스탄불로 와서 같은 호텔에 한번 더 묵는다. 왜 이런 스케줄인 것 같은가? 이스탄불에서 비행기를 내리고 타기 때문이다. 점심 후 몇 백 킬로미터를 달려 앙카라로 갔다. 그곳에서 지난 4월에 우리 기도모임에 오셔서 터키에 대해 브리핑해주셨던 선교사부부를 만나 라면과 짜왕을 전달했다. 사모님은 감사하며 받으셨고, 짧은 간증과 함께 하루라도 같이 있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드러내고는 당부하길 싸우지 말고 잘 지내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 말 덕분에 싸우지 않는데 또 도움이 되었다.

 

우리는 8박 9일간 3000km 정도를 움직였다. 매일 부산에서 서울을 가는 것과 비슷하다. 과연 우리는 안 싸우고 건강하게 잘 견딜 수 있을까? 첫날 헬퍼 자매가 수프를 뜨는데 생각한 맛이 아닌 듯 급체했다. 그때부터 이틀을 못 먹어 살이 빠져 예뻐지긴 했지만, 잘 먹는 자매인데  안타까웠다. 체력을 걱정하셨던 전도사님이 오히려 끝날까지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셨고, 아내가 간혹 두통을 느꼈으나 평소 달고 살던 소화제는 한 번도 안 먹고 잘 버텼고, 머리 아픔도 버스에서 찬양하는 가운데 치유되는 일이 있었다.

터키를 가장 와보고 싶어 한 사람은 2 자매였다. 기쁨으로 터키를 가고 싶어 했다. 와서는 마냥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반면 눈물로 터키를 사모한 것은 헬퍼 자매였는데 오자마자 체했다. 2 자매가 권유해 적금까지 깨고 합류한 6 자매는 인생의 터닝포인트에 서 있었는데, 친구가 같이 가자고 하는 말을 들었을 때 하나님의 음성으로 알고 적금을 깼다고 한다. 각자의 여행이 채워지고 있었다.

 

8/6일

오늘은 주일날이다. 어떻게 예배를 드릴까? 우리는 가이드에게 양해를 구하고 이동하는 버스에서 예배를 드리기로 했다. 자연스럽게 찬양하며 찬양에 찬양을 이어갔고 방언 찬양을 하고 우리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기도할 때 성령님은 우리를 만지셨고 축복하셨다. 우리의 예배는 오세만 가이드와 하티제 현지 가이드, 오스만 운전기사를 만지셨고 우리는 그들과 이 땅을 위해 기도하며 은혜에 은혜를 누렸다. 예배가 주는 은혜와 회복과 거룩은 감격 그 자체다. 이날은 라오디게아와  파묵칼레 땅을 밟으며 바울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다녔던 곳을 실제적으로 느껴볼 수 있었고 그 거리를 조금이라도 체감할 수 있었다. 라오디게아의 차지도 덥지도 않은 온천물을 경험하면서 그것이 어떤 느낌인지 느껴 보았다. 참 신기하고 아름다운 곳이었는데 물에 발을 담갔지만 차지도 덥지도 않은  답답함이 있었다. 호텔에 돌아와 호텔 온천장에 모두 모였는데 이곳 역시 차지도 덥지도 않아 오래 있으니 감기가 걸릴 듯했다. 온천이라 하여 기대했었는데 모두 실망했지만, 차지도 덥지도 않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잊지 못하도록  피부에 새겨 넣은 느낌이 들었다. 주님은 우리를 어떻게 보실까? 우리의 태도에는 그렇게 차지도 뜨겁지도 않은 모습은 없을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정으로 이 땅에 와 있지만 그것이 식지 않고 더 뜨거워지길 기도한다.

 

8/7일

어제의 예배에 은혜가 넘쳤던 탓일까? 어느 틈엔가 찬양이 시작되었고 찬양은 찬양을 불렀다.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찬양은 우리 자신을, 그리고 우리가 밟은 터키 땅을 사랑하셔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사랑 고백 같았다. 아! 그분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우리의 찬양은 예배로 이어졌고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부으시는 마음 때문에 눈물의 부르짖음이 되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사실 터키 땅에서 현지인을  만나고 함께 기도하고 나누는 일을 할 수 없어서 많이 아쉬웠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가이드였던 오세만, 하티제, 오스만을 우리에게 붙이셨다. 우리는 기도 때마다 이들이 새롭게 하나님을 만나고 변화되길 기도했다. 이심전심일까? 가이드의 입에서 정말 특별한 팀이라고, 기억에 오래 남을 팀이라는 말이 나왔다. 몇 번이나 말이다. 우리는 특별히 한 것이 없었다. 그저 불평 없이 잘 따라주고, 예배하고, 기도한 것뿐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보이지 않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음을 경험한다. 삶, 태도, 모습, 그러한 것들을 통해 그리스도의 향기가 퍼지길 기도한다.

 

8/8

마지막 날이었다. 여유 있는 아침 식사를 마치고 보스 포러스 해협에 유람선을 타러 갔다. 센스 있는 가이드가 비용 차이가 별로 없다며 큰 배를 통째로 빌려 ‘빛의 샘’ 전용 배로 만들어 주고, 박종호의 ‘여호와 우리 주여’를 배경음악으로 깔아주었다. 온통 폭염으로 땅에서는 쉴 곳을 찾을 수 없을 때에 바다로 나아가 배를 타고 찬양을 들으며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니 기분이 아주 좋아져서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그때 돌연 헬퍼 자매가 몸이 회복된 듯 술 취한 듯 한가운데로 나타나 춤을 추는데 자세가 엉성해 은혜가 안되었다. 다들 그 모습을 보며 웃고 있는데 우리의 팀장이 잽싸게 나오더니 무릎을 꿇고 자세를 잡아 춤을 추니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주었다. 은혜가 되었다. 우리의 여정을 축복해 주시며 누리라는 하나님의 따뜻한 음성을 들었다. 그 축복과 은혜에 우리 모두는 절로 회복이 된 듯하다. 배에서 내린 후에는 해상 레스토랑에서 고등어 케밥을 점심으로 먹고 소피아성당과 톱 카프 궁전들을 둘러본 뒤, 전망 좋은 곳에서 커피를 한 잔 했으니 이번 여행의 최고의 만찬이라고 할 수 있겠다.

 

왜 마지막 호텔이 첫 호텔과 같아야 했나? 또 다른 깊은 뜻이 있었다. 그것은 늘 깜박하는 빛의 샘을 배려한 주님의 섬세함이었다. 친구가 핸드폰을 놓고 왔는데, 바로 돌아가지는 못했지만 일주일 후에 찾았다. 친구는 남들이 깜박하고 놓고 다니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자신이 그런 것은 이해가 안 된다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러했다. 나 역시 자매들이 쇼핑하는데 정신이 팔려 시간을 안 지킬 때 소리치고 싶었다. 기다리는 것이 화가 났다. 결국 마지막 나눔 때 그때 그랬었다고 나누고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받았으나 마지막 날 일정 중에 내가 모두를 기다리게 하는 짓을 범하게 되었다. 길을 잃었는데 결국 그런 셈이 되었다.

헬퍼 자매는 왜 아팠을까? 하나님께서 여행에서 많이 섬겨야 한다고 알려 주셔서 그리하겠다 결심하고 왔다는데 오히려 섬김을 받을 줄이야. 섬기려면 먼저 받을 줄 알아야 하기에 그랬나 보다.

 

내일이면 집으로 돌아간다. 모두 기쁨에 차 마지막까지 씩씩한 모습들을 보니  감사의 미소가 번진다.

푹 자고, 내일 집에 가자!

 

8/9

하나님의 마지막 보너스가 인천공항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19번, 짐 찾는 곳에 도착했는데, 친구 따라 적금 깨고 왔던 자매에게 주님이 편지를 보내셨다. '네 짐이 무거운가? 내가 옮겨주겠다. 그냥 남 주려고 사 온 선물만 안고 가라!' 안 그래도 그 자매는 집도 멀고 차도 없는데 짐이 무겁다며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매의 상황을 아시고 섬세하게 배려해 주셨다. “가방이 다른 곳으로 가서 죄송합니다. 저희가 내일 직접 집으로 배송해 드리겠습니다.” 공항 측의 이야기를 듣고 우리는 모두 당황하기보다는 서로 쳐다보고 웃으며 말할 수 없는 기묘한 주님을 만났다. 그 자매는 이 일을 통해 마리아가 비싼 향유를 주님 발에 붓듯 자신도 적금을 깨고 떠나 어야 한 이유를 깨달았을 것이다.

 

여행 속에서 만났던 바울의 교회와 그 수많은 돌을 나른 종들의 수고를 이해하고 나누기에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함을 느낀다. 각자 깊이 생각할 시간을 가진 후 다시 만나 나누기로 한다.

해마다의 전도여행! 언제나 특별한 기억과 이미지들이 남는다. 그때 그때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우둔한 우리가 잘 이해하고 경험할 수 있도록 알려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물 떠 온 하인만이 아는 그 경험과 축복이 우리들의 자산이다. 그렇게 행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내년을 벌써 기대해 본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P.S

예배는 전부 7번 드렸다. 버스에서 찬양 예배 2번, 호텔 방에 모여 찬양 예배 1번, 온천 나눔 예배 1번, 선교사님의 즉흥 기도회 1번, 성찬식 예배 2번. 이렇게 첫날을 뺀 모든 날에 예배를 드렸다. 예배로 회복되며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으니 감사하다. 예배는 회복이다.

 

과정, 과정 땀과 은혜의 범벅이었지만 다 쓰기에는 지면이 부족해서 안타깝지만 뒤로하고 이만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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