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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골목길을 따라 흐르는 아줄레주의 빛

포르투

by 김보아
“빛은 모든 것을 열고, 모든 것을 감싼다. 그것은 내가 말하고자 했던 언어였다.” — 소피아 데 멜로



봄의 시작을 알리는 3월, 포르투갈의 작은 도시, 포르투 (Porto)는 겨울보다 낮이 길어지기 시작한다. 완전히 맑은 날보다 구름이 바삐 오가며 비를 뿌리는 날이 더 많지만 리스본에서 여행을 마치고 이곳에 온 여행객들은 그나마 여기는 비가 덜 하다며 입을 모았다. 대서양에 인접한 포르투는 바다의 습한 공기와 바다에서 반사되는 빛이 결합하여 부드럽고 은은한 빛이 도시를 채우기 시작한다. 비가 그친 후에는 맑아진 공기가, 젖은 돌길과 건물 표면에 반사된 빛을 더욱 반짝이게 한다. 이른 아침이나 늦은 오후에는 골목 사이로 깊은 그림자가 드리워, 방향을 바꾸어 움직일 때마다 골목마다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아줄레주 타일이 만들어내는 질감(texture)은 변화하는 빛과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이 도시의 감춰져 있는 수많은 기억과 이야기를 드러낸다.


포르투 거리를 걷기 시작하면 곧 좁고 경사진 골목길이 구불구불 나의 발걸음을 이끌어간다.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노란 에그 타르트와 건물의 외부를 감싸고 있는 파랗고 하얀 아줄레주(Azulejo) 타일은 길을 걷는 내내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아줄레주 타일의 주요 장식은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패턴인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8세기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한 무어인(Moor)들은 이곳에 이슬람 사상을 강요하여 사람이나 동물의 형상을 만들거나 그리는 것은 금지하였다. 이것이 아줄레주(Azulejo) 문양의 형성 배경이 되었다. 그 패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없이 반복되면서도 결코 같지 않은 선과 면의 흐름이 보인다. 포르투갈 인들은 그것에 시간의 순환과 영원의 의미를 담고자 하였다. 새로운 세상과 마주하기 시작한 포르투갈 인들은 르네상스 시기에 이르러 푸른 바다와 청명한 하늘 그리고 흰 파도에서 영감을 얻어 그들만의 아줄레주를 발전시켜 나갔다. 포르투갈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인 아줄레주(Azulejo)는 푸른색과 흰색의 타일로 건축의 벽면을 장식하며, 포르투의 도시적 정체성을 형성하였다.


골목길마다 펼쳐지는 아줄레주의 향연 ©boah


타일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500년 된 타일이 무척이나 선명하다. 비에 젖었다가 마르기를 수백 번 반복했을 타일의 표면은 유리처럼 매끄러웠다. 비밀은 제작 방식에 있었다. 초벌과 재벌, 두 번의 고온 소성을 거친 후 유약층을 입힌다. 이 층이 물을 막고 빛을 반사시켜 지금도 반짝이는 푸른색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아줄레주는 빛과 만났을 때 그 자체로 빛을 재구성하는 매개체가 되는데 시시각각 변화하는 빛의 강도와 방향에 따라 아줄레주의 코발트블루의 색감은 때로는 선명해 보이고 때로는 부드러워 보였다. 해 질 녘 노을빛이 타일표면에 닿으면 그 주변으로 따뜻한 색감이 감돌아 타일에 겹겹이 남겨진 시간의 흔적들이 되살아 나는 것 같았다. 이를테면 바람에 스쳐간 계절과 빗방울이 머물다 흘러내린 흔적들이 아줄레주의 표면에 고요하게 각인되어 있다가 빛이 반짝하는 순간 슬며시 나타나는 것이다.


상 벤트 역사(São Bento station) 벽면의 아줄레주를 들여다보면 제작 당시의 그 도시의 삶의 이야기가 그려져 있는 것을 보게 된다. 특별 포르투갈의 전쟁의 역사를 그려내어 후세에게 과거의 시간을 기억하게 하였다. 역 내부에 들어오는 자연광은 타일의 푸른색과 흰색 위에서 부드럽게 반사하여 공간 전체를 밝히고 깊이감을 제공한다. 이 빛의 반사는 정적인 벽면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타일의 표면을 더욱 입체적이고 생생하게 만들어 내었다. 푸른 아줄레주는 반투명의 노란색 유리창으로 비춰 들어오는 오후의 빛 아래 견뎌온 전쟁의 역사를 담담히 그려내었다. 이렇게 아줄레주는 이 도시의 피막이요, 시간의 흔적이 되었다.


상 벤트 역사 내부 ©boah


포르투의 카르무 교회(Igreja do Carmo)의 외벽을 장식한 아줄레주는 1912년, 포르투 출신의 유명한 타일 예술가, Silvestre Silvestri이 디자인한 것으로 카를루스 알베르투 광장(Praça de Carlos Alberto)에 위치해 있다. 리스본의 타일공방에서 제작되어 교회 벽면에 약 11,000개의 타일이 사용되었는데 역동미와 곡선미를 추구하는 바로크 양식의 교회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어 내었다. 사람의 손이 닿는 외벽의 타일들은 손상되기 쉬워 주기적으로. 남서향 정면에 배치된 타일 벽화는 성모 마리아의 기적에 대한 타일 위에 일일이 그림을 다시 그려 넣는 복구 작업이 진행된다. 이야기를 그리고 있었는데 오후 햇살이 드리우면 그 이미지가 시각적으로 극대화되면서 정적인 타일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포르투의 아줄레주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시간과 빛이 스며들어 낮과 밤, 계절에 따라 변주되는 기억의 조각이었다.

카르무 교회의 아줄레주 ©boah


포르투의 거리는 아줄레주의 향연이다. 빛이 닿는 아줄레주는 시간과 계절에 따라 새로운 이야기를 꺼내고 풍부한 빛과 그림자의 다채로움을 만들어낸다.

이 도시를 "아기자기하다"라고 표현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 말이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지 나는 며칠이 지나서야 알았다. 그 좁은 골목 안에 500년이 겹겹이 쌓여 있고, 한 뼘 타일 안에 기하학과 신화가 공존한다. 아기자기함이란 결국, 시간의 흔적이 곳곳에 빼곡하다는 의미였다.

나는 상점 직원이 한 말을 떠올렸다. "여기 사람들은 이야기를 한다"라고. 누구와도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는 포르투 사람들, 타일이 이야기하고 빛이 대답하는 이 도시의 풍경은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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