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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아 Feb 03. 2020

사려니 숲길 가는 길,

미쳐 다다르지 못해도 괜찮아

#1


사려니 숲으로 출발하기 전에 주차장에서 바라본 하늘,

앙상한 겨울나무 가지의 선명한 선들이 

회색빛 겨울 하늘과 만나면

겨울의 쓸쓸함이 그대로 전해진다.


앙상해도

푸르름이 없어도 

계절에 공감하는 나무의 모습이 아름답다.


나무의 외로움이

나무의 의연함이

고개를 들게 한다.

© boah
© boah
© boah
© boah




#2

주차장을 나서면 바로 사려니 숲인 줄 알았는데

그곳까지 가는데 조금(?) 걸어야 한다고 한다.

그 정도쯤이야

발걸음이 가볍다.

겨울 숲으로 들어가는 길은 

오히려 따뜻하고 포근하다.

© boah
© boah




#3

산 길이라 그런지 

길은 멀고,

곧 나온다는 숲은 보이지 않는다

어제 내린 비로 촉촉해진 땅은

디디는 발 끝을 잘 놓아주지 않는다.

오르락내리락

이 길의 너머에는 어떤 길이 나타날까?

산 길을 걷는 것이

이토록 즐거운 일이었나?

낯선 길을 

걸어가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예기치 못한 것들을 

만나는 건 좋은 일이다.

마음이 뛰고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 boah


© boah
© boah




#4

사려니 숲에 가고자

길을 나섰는데

길을 잃었다.

아니 마음을 잃었다.

숲의 입구는 아직 멀었는데

지금 지나고 있는 이 길에 마음을 

다 빼앗겼다.

그냥 여기 머물고 싶어 졌다.

내가 어디로 가려고 했는지도

잊어버리고,

가는 길 숲의 한가운데서

한 참을 놀았다.


© boah
© boah
© boah
© boah
© boah
© bo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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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oah
© boah
© boah


© boah
© bo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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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제야 사려니 숲의 시작점에 이르렀다.

그런데 비가 내린다.

이곳을 다 돌아보려면

하루 종일이라는데

초입을 좀 걷다가

발길을 돌렸다.


사려니 숲을 다 걷고 싶었지만

문턱만 넘은 셈이다.

그래도 아쉽지가 않았다.

여기까지 걸어왔던 

그 길에서 행복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사려니 숲을 아직 경험하지 못해서 일 수도 있다.


다음을 기약한다.

그때도 내가 걸어간 만큼의 즐거움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 boah
© boah
© bo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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