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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스 Mar 16. 2020

Track.12 형용할 수 없는 시퀀스

영국 에딘버러 Track12. I Don't Know You-더 로즈

2019.09.26 (목)
영국 에딘버러
Track.12 I Don't Know You - The Rose




영국이지만 엄연히 다른 국가

숙소에서 바로 보였던 에딘버러성


Edinburgh, Scotland, United Kingdom

오늘은 리버풀을 떠나는 날이다. 리버풀 라임 스테이션에서 기차를 타고 북쪽으로 향한다. 리버풀에서 오늘의 목적지까지는 직행 열차가 없다. 환승을 한 번 해야 갈 수 있는 목적지를 향해 먼저 위건역으로 향했다. 리버풀에서 영국 중서부 지역열차를 탔는데 우리나라 무궁화호와 같았다. 40분을 타고 가니 위건역이 보였고, 나는 환승하려 플랫폼에 발을 디뎠다.


나는 위건역의 야외 플랫폼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열차가 20분 지연되었지만, 별다른 기다림을 느끼지 않았다. 위건역에서 탈 열차는 버진 트레인 고속열차였다. 짐을 들고 열차에 탑승해 미리 예약한 창가자리에 몸을 실었다. 열차는 평원을 보여주더니 어느 지점이 지나고 나자 산악지대가 보이기 시작했다. 영국은 남저북고(南低北高) 지형으로 북쪽으로 갈 수록 산악지형이 나타난다. 언덕과 산이 보이기 시작하자 슬슬 영국의 북쪽에 왔음을 실감했다.


빠르게 달리던 열차는 드디어 오늘의 목적지에 도착했다.

리버풀에서 3시간을 더 달려서 도착한 곳, 영국에 머물고 온 사람들은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는 곳. 영국이지만 엄연히 다른 국가의 도시인 곳. 


오늘의 여행지는 영국 브리튼섬,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든버러 되시겠다.


에딘버러를 관통하는 로열 마일





코트가 어울리는 도시, 에든버러


에든버러에 도착한 첫 느낌은 ‘춥다!!’였다. 

런던에서 낮에는 종종 더웠던 적도 있었는데, 북쪽으로 오니 확실히 기온이 떨어진 게 느껴진다. 9월의 런던은 가을보다는 늦여름에 가까웠던 날씨였다. 반면 9월 말의 에딘버러는 쌀쌀함이 온전하게 느껴지던 가을의 날씨였다. 여름과 가을 사이에 여행을 시작하던 나는 에든버러를 기점으로 완전히 가을 여행을 하게 되었다.


에든버러는 골목과 계단의 도시로 유명하다. 골목길을 걷다보면 계단이 끝없이 펼쳐진 광경을 만날 수 있다. 거기에 가는 길은 돌길이다. 캐리어를 지닌 여행자에겐 최악의 여행길이긴 하지만 도시 자체가 하나의 성(城)과 같은 에든버러만의 매력이기도 하다.


호스텔로 가기 위해 최대한 돌길과 계단을 피해 돌아갔지만 캐리어를 들고 다니느라 몸에 조금씩 열이 났다. 물론 몸에 열은 나지만 그래도 추운 날씨였다. 나는 호스텔에 체크인하자마자 바로 코트를 꺼내입었다. 가을에 여행하기에 코트를 입을 거라 예상은 했다만, 이렇게 빨리 꺼내 입을 줄은 몰랐다.


추운 날씨로 으슬으슬한 몸도 녹이고, 점심도 먹지 못해 요기도 할 생각으로 에든버러에서 유명한 찻집을 찾았다. 영국에서 여행 좀 했다고 몸이 커피보다 차가 먼저 생각나나보다. 에딘버러 로얄마일을 지나면 보이는 '클라린다스 티 룸'(Clarinda's Tea Room)로 향했다. 따뜻한 홍차와 스콘, 라즈베리&크림이 같이 나온는 크림티 세트를 주문했다. 따뜻한 홍차가 목을 타고 내려오니 온 몸에 따뜻한 기운이 퍼져나갔다. 런던에서 처음 성공한 크림티의 안온한 기억은 에든버러에서도 통하였다. 몸이 나른할 때쯤 폐점시간이 되어 발걸음을 칼튼 힐로 옮겼다. 


에딘버러 클라린다스 티 룸






형용할 수 없는 시퀀스가 보이던 칼튼 힐

칼튼 힐의 국립기념비 (National Monument)



칼튼 힐(Calton Hill)은 에든버러에 오면 반드시 가야하는 장소다. 왜냐면 칼튼 힐은 에든버러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천연전망대이기 때문이다. 칼튼 힐에는 에딘버러의 대표 랜드마크 중 하나인, 국립기념비가 있다. 국립기념비는 나폴레옹과의 전투 때 희생당한 군인의 넋을 기르는 그리스 신전 모양의 기념비다.


국립기념비는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 모양으로 지었는데, 사실은 짓다 만 미완성의 건축물이다. 건설 도중 예산이 부족해 미완성인채로 보존되었다고 한다. 오히려 미완성으로 남아있어서 멋있는 건축물이 된 것 같았다. 비록 예산부족으로 미완성되었지만, 미완성이기에 나름의 여백의 미도 느껴지는 듯 했다. 국립기념비에서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면 에든버러의 구시가지와 신시가지가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 믿을 수 없는 광경의 산, 아서스 시트 (Arthur’s Seat)가 기다리고 있었다.


솔직히 에세이를 쓰는 지금도 칼튼 힐에서의 광경을 뭐라 형용하기 힘들다. 직접 봐야만 알 수 있는 그 광경의 느낌을 글로 표현하기엔 나의 필력이 부족할 따름이다. 


그래도 몇 자 적어보자면, 숨이 살짝 가쁘게 칼튼 힐의 언덕길을 올라가 있을 때 탁 트이게 펼쳐지는 에든버러 시내의 전경과 아서 시트가 불어오는 바람에 가슴과 눈을 뻥 뚫리게 만들어준달까. 언덕과 계단이라는 칼튼 힐까지 올라가는 시퀀스(Sequence)를 거쳐 칼튼 힐의 전경이라는 클라이막스를 맞이하는 느낌이라 말할 수 있겠다. 


건축가 유현준은 강의와 TV프로그램에서 건축물을 설명할 때 '시퀀스'를 자주 언급한다. 


그가 알쓸신잡2에서 말한 시퀀스의 정의는 '서로 연관된 작은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나면서 만들어지는 하나의 서사. 즉, 흐름이 있는 이야기'다. 


건축에서의 시퀀스는 '공간을 차례로 지나 마지막 공간에 도착했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건축물의 이야기 서사'를 뜻한다.


내게 칼튼 힐의 시퀀스는 그 동안의 전경들과 남달랐다. 밑에서 조그만하게 보이는 마루의 모습, 언덕을 오르면서 전경의 기대감과 함께 두근대는 심장, 그리고 숨이 턱에 막힐 때 쯤 보이는 도시의 광경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까지. 칼튼 힐에서 느꼈던 시퀀스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짜릿한 오감의 기억이었다.


칼튼 힐의 전경은 지금까지 보았던 최고의 전경 Top 3에 들어갈 정도로 꼽을 정도였다. 저 멀리 보이는 스코틀랜드 앞바다와 감탄만 나오는 아서 시트의 자연 광경과 함께 에든버러 특유의 고풍스러우면서도 음울한 건축물의 조화....... 아, 이건 말이 안된다. 그냥 와서 봐야만 한다.     





에든버러 여행에 필요한 3가지


칼튼 힐에서 내려와 로열마일을 따라 쭉 걸어다녔다. 에든버러 시내를 발길따라 걸어다녔는데, 에든버러만큼은 잠시 구글맵을 꺼두고 길을 잃어버리며 다니는 게 진정한 에든버러를 즐기는 법인 듯하다. 


칼튼 힐의 시퀀스를 보며 한동안 그 자리에 서있었다. 회색빛 구름이 짙게 깔려 흐린 날씨와 에든버러의 전경이 어울렸다. 무채색의 코트를 입으며 한껏 음울감을 느껴봤다. 여기에 브릿 팝 스타일의 음악을 곁들었다. 오늘의 BGM으로 The Rose의 'I Don't Know You'를 들었다. 날씨와 도시의 광경, 무채색의 코트와 브릿 팝 스타일 음악까지, 제대로 영국을 느낄 수 있었다. 


런던과는 다른 스코틀랜드만의 풍경, 오직 에든버러만이 주는 도시의 느낌을 한껏 받는 하루였다. 영국에서 여행 좀 다녀봤다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으로 에든버러를 뽑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 글을 읽고 나중에 에든버러 여행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꼭 말해주고픈 이야기가 있다. 바로 에든버러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필수사항 3가지다.


첫째, 적당히 우울하게 흐린 날씨에 오기. 

둘째, 무채색의 코트를 꼭 입고 오기. 

셋째, 좋아하는 브릿 팝 스타일의 음악을 들으면서 다니기. 


이 세 가지를 갖춘다면 형형색색의 빛깔보다는 톤 다운된 무채색이 어울리는 에든버러의 매력을 한층 더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칼튼 힐에서 바라본 아서스 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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