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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스 Mar 18. 2020

Track.14 바람이 분다

영국 에든버러 Track.14 바람이 분다 - 이소라

2019.09.28 (토)
영국 에든버러 아서스 시트 (Arthur's Seat)
Track.14 바람이 분다 - 이소라




일기예보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에든버러의 아서스 시트 (Arthur's Seat)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아침부터 너무나도 맑은 날씨를 보여준 에든버러의 하늘이었다. 다음 날 비가 올 줄 알고 어젯밤에 아무런 계획을 잡지 않았던 나는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었다. 비가 오면 갈 수 없는 곳을 오늘 꼭 가야만 했기 때문이다.


사실 어제만해도 오늘 날씨가 좋지 않을거라 생각했기에 아서스 시트는 포기했다. 하지만 하늘이 감사하게도 여행의 아쉬움을 남기지 않도록 맑은 날을 허락해주셨다. 맑은 하늘 아래 로열마일을 지나 올드타운 구역을 지나간다. 한걸음, 한걸음, 발걸음을 계속 이어나간다. 올드타운의 아랫 마을로 빠르게 걸어갔다. 한시라도 난 그곳에 올라서고 싶었다.


구글 지도에 나온 여러 가지 길 중 나는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길을 일부러 골랐다. 그 때만큼은 다른 사람들과 다른 길을 걷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일종의 반항이었을까, 아니면 나는 다르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경사가 급하고 위험한 길을 향해 나는 걸어갔다.





머리 위로 바람이 분다......

아서스 시트 봉우리를 가는 길은 쉽지만은 않았다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길로 가다보니 경사는 가파르고, 숨은 가빠졌다. 자칫 발을 헛디뎌 낭떨어지로 굴러질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이 길을 꿋꿋이 걸어갔다. 누군가는 객기라 말할 지라도, 나는 이 길을 통해 아서스 시트의 정상에 오르고 싶었다. 쉬운 길을 제쳐두고 어려운 길을 가는 청개구리 심보라 할지라도, 난 이 길을 택해서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거친 발걸음들이 모여 마침내 정상에 올랐다. 푸른 하늘, 탁 트인 도시광경, 그리고 머리 위로 바람이 분다. 마침내 아서스 시트(Arthur’s Seat)에 도착했다. 에든버러에 도착해 칼튼 힐에서 바라본 비이성적인 광경이었던 아서스 시트를 올라오니 여기도 비정상적으로 아름다운 광경을 선사해준다.


위험하게 올라오는 과정에서 온 몸은 불안을 느꼈지만, 이내 불안감은 정상에 올랐다는 흥분과 짜릿함으로 바뀌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이 고행을 스스로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안된다는 부정적인 생각과 일어나지 않는 고민들로 괴로워하는 나약한 자신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어렵고, 힘들고,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이라도 나는 해낼 수 있는 자신감과 능력을 지녔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게 아서스 시트의 마루에 올랐다. 아서스 시트는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마치 나를 둘러싸던 부정적인 사념들을 쳐내려는 듯이.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다. 세차게 부는 바람에 오히려 정신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바람이 무척이나 많이 불던 아서스 시트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칼튼 힐은 야트막한 언덕에서 시내를 바라보는 광경의 시퀀스를 주는 반면에, 아서스 시트는 화산지형이 만든 절벽 끝에서 시내와 에든버러 앞바다, 저 멀리 외곽지역까지 한 눈에 보는 광경의 시퀀스를 제공한다.


아서스 시트의 시퀀스는 변환의 시퀀스였다. 올라갈 때만 하더라도 가는 길이 험해 발을 조심히 딛으며 가느라 신경쓸 뿐이었다. 내 발걸음 하나 하나에 집중할 뿐이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올라가 마침내 정상에 섰을 때, 심하게 부는 바람이 시린 한기를 머금고 땀방울을 훔쳐내며 장관을 선사한다. 나에게 집중했던 시야는 전체를 바라보는 시야로 바뀐다. 시야가 바뀌니 내 마음도 함께 바뀌게 된다.


아서스 시트는 3억년 전에 만들어진 화산지형으로, 이곳에 굳건히 버티고 있었을 거다. 시간이 흘러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도 언제나 같은 모습을 지닌 채로. 귓가의 노래에서는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며 내 마음에 들려온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다시금 에든버러를 찾아올 땐 아서스 시트는 늘 그랬듯이 그 모습 그대로 있을 거다. 다만 어떤 내가 다시 아서스 시트를 만날지는 모르는 채로.  








내게는 천금 같았던 추억이 담겨져 있던 머리 위로 바람이 분다


아서스 시트에 올라 시내를 내려다보니, 인터넷 커뮤니티 화제된 다큐 3일의 ‘일반인 명언 레전드’가 떠올랐다.


“기차를 타고 뒤를 돌아보면 굽이 굽이져 있는데, 타고 갈 때는 직진이라고 밖에 생각 안 하잖아요. 저도 반듯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뒤돌아보면 굽이져있고 그게 인생인 거 같죠.”


나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변화하며 살아가야 하는가. 모두가 알 수 없는 문제의 해답을 찾으려 노력할 때, 나는 어떤 답을 내려야 하는가.


사실 아서스 시트는 이미 내게 답을 주었다. 

보기 좋게 빗나간 일기 예보에서 미래의 알 수 없음을,

굳이 힘든 길을 택해 정상에 오른 나에게서 내재된 자신감과 가능성을 알게 해주었다.

미래가 어떠한 모습으로 다가올지라도, 난 내가 지닌 능력을 믿고 뚝심있게 밀고 나가야겠다. 그게 설사 굽이진 길이라 할 지라도.


심오한 질문이 들려오는 오늘의 BGM을 들을 때, 난 아서스 시트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생각할 뿐이었다. 지난 3일간 에든버러에서의 광경을 눈에 담고 간다. 칼튼 힐에서 마주한 에든버러의 첫 대면부터, 에든버러 성과 올드타운을 거닐며 상기되는 소설의 분위기, 그리고 아서스 시트에서 바라보는 에든버러의 전경까지. 언젠가 내가 변해도 에든버러가 주었던 인상만큼은 영원히 변치 않을 것이다. 

    

내게는 천금 같았던, 추억이 담겨져 있던 머리 위로 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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