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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스 May 11. 2020

Track.47 고대와 근대 사이, 중세의 작은 마을

이탈리아 아씨시 Track.47 출발 - 김동률

2019. 10. 31 (목)
이탈리아 아씨시
'로마에서 피렌체 이동 관광투어'





로마에서 피렌체로 이동하는 날, 마침 이동하면서 투어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미리 한국에서 예약을 했다. 로마에서 피렌체 이동 관광투어로, 피렌체로 향하는 여정에서 치비타 디 반뇨레죠와 아씨시를 들러 구경하는 투어였다. 개인적으로 이 투어를 신청한 건, 이탈리아의 고대 – 중세 – 르네상스를 이해하는데 유용하기 때문이다. 특히 로마에서 피렌체로 가는 순서가 시대순이어서 더욱 이해하기에 쉬웠다. 고대시대의 로마, 중세시대의 치비타 디 반뇨레죠와 아씨시, 그리고 르네상스의 피렌체 순으로 가기 때문이다. 참고로 로마와 피렌체에서 투어를 하지 않고 로마와 피렌체 사이의 두 도시만을 들러 투어한다.



반뇨레죠 마을의 근원이란 뜻의 치바타 디 반뇨레죠. 짙게 깔린 안갯속에서 마을의 경관은 마치 천공의 성 라퓨타를 떠오르게 한다.



아침의 어스름을 헤치고 나와 짐과 몸을 차에 싣고선 가이드 분과 인사를 나눴다. 가이드분은 투어 업체의 사장님께서 직접 하셨는데, 현지 투어 경력만 10년이 넘는 베테랑이셨다. 가이드분 덕분에 로마를 비롯한 이탈리아 전반적인 역사와 문화적
 설명과 함께 치비타 디 반뇨레죠로 향했다. ‘근원’이란 뜻의 치비타, ‘~의’란 디, 반뇨레죠는 마을 이름. 치비타 디 반뇨레죠는 ‘반뇨레죠의 근원’이란 뜻으로 조그마한 산속의 요새 같은 마을이다. 이민족의 침입으로 산속으로 도망친 이탈리아인들이 만든 마을로, 방어에 용이한 마을이었다. 이민족의 침입으로 산속에 자리 잡은 마을은 폐쇄적일 수밖에 없었고, 세상의 변화에 귀를 닫은 채 세월을 보냈다. 


근대로 접어들어 더 이상 이민족의 침입 걱정이 없어진 사람들은 이 작은 마을을 하나둘씩 떠나가기 시작했고, 현재는 얼마 살지 않는 마을이라 한다.  


안개가 자작하게 낀 요새의 형상을 한 마을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천공의 성 라퓨타가 저절로 연상된다.

작은 규모의 라퓨타 성의 이미지가 눈앞에 아련히 떠올라졌다.


이제는 사람이 얼마 없는 마을에 고양이만 조용히 오전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두 번째로 도착한 마을은 아씨시,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발상지로 유명한 마을이다. 아씨시는 로마와 피렌체 사이의 제법 큰 도시였는데 청빈, 순결, 사랑을 강조한 프란체스코의 정신이 탄생한 가톨릭의 성지였다. 아씨시 마을 곳곳에 남아있는 그의 발자취를 따라 가이드분의 설명을 더해 그의 인생이 어떠했을지 상상을 덧칠했다. 탕아에서 열혈 한 신앙자로 변모한 그의 인생을 들으며 하나의 작은 계기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큰 결과로 나타남을 깨닫는다. 누구나 다들 작은 계기로 시작해 지금의 길을 걸어가고 있을 테니, 우리네 인생은 거창한 포부와 원대한 시작이 아닌 것부터 시작되고 있음을 아씨시에서 한번 더 알아간다.



탕아에서 성인으로 변모한 프란체스코의 마을 대성당에는 속세에서 신앙의 길로 회귀하려는 인간의 회개하는 모습이 있다



아씨시에서 유명한 건 트러플 오일과 트러플 소금이라는 가이드분의 설명에 같이 온 동행분들은 각자 쇼핑하러 거리로 나섰다. 반면 쇼핑에 큰 흥미를 지니고 있지 않은 나는 마을의 골목을 돌아다녀보기를 선택했다. 그러자 가이드분께서는 마을의 정상 전망대에 올라가 보기를 추천했고, 얼마 남지 않은 자유시간에 정상을 향해서 뜀박질을 멈추지 않았다.



뜀박질을 해서 심장이 두근거렸던 걸까, 아니면 조용하고 고즈넉한 마을의 풍경에 감명받아 두근거렸던 걸까



아씨시의 정상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마을은 조용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띄고 있었다. 살짝 아침에 비가 왔기에 아직 산 능선을 넘어가는 구름의 모습과 함께 펼쳐진 아씨시의 모습은 텐션 업된 로마의 풍경과는 사뭇 다른 차분한 분위기였다. 


또한 가톨릭의 성지라는 공통점을 지닌 바티칸과 아씨시의 분위기도 달랐다. 바티칸은 사람들이 북적북적한 도시의 모습이라면, 아씨시는 아는 사람들만 찾아 조용한 촌락의 모습이었다. 바티칸이 가톨릭의 성지로서 모든 사람들이 필연으로 들러야 한다면, 아씨시는 내면의 신앙심을 기르려 조용히 순례하러 오는 느낌이었다. 개인적으로 아씨시가 좀 더 종교적으로 다가가기에 더 적합하지 않나 싶다. 조용히 기도하며 하늘의 은총을 들을 수 있는 그런 공간으로서.





아씨시에서 4시 30분쯤 출발한 차량은 피렌체에 도착하니 저녁 7시가 넘었다. 피렌체 도심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차가 막혀 예상보다 조금 걸렸다고 했다. 그래도 이동 걱정 없이 투어와 함께 편하게 와서 좋았다. 이탈리아 여행할 때 가장 걱정되는 부분 중 하나가 이동시 소매치기 걱정, 짐 분실 걱정이었다. 특히 로마 테르미니역은 소매치기들이 모여있는 소굴이라는 악평이 나있었기에 걱정이 배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로마와 피렌체 사이 중세의 모습을 간직한 작은 두 마을을 거친 여정을 편하게 할 수 있어서 이번 투어도 성공적이라 스스로 평했다.







피렌체에 도착한 후, 호스텔 숙소에 체크인 후 오랜만에 준용이형을 보러 갔다. 멘토링 때의 인연으로 시작되어 내가 첫 유럽여행 때 조언을 많이 해준 형이었는데, 그 형을 유럽에서 본다니 신기한 인연의 끈이었다. 형은 유럽배낭여행 가이드 일을 하고 있었는데, 형과 나의 일정이 딱 오늘만이 겹쳐서 겨우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이탈리아 북부로 향하고, 형은 이탈리아 남부로 향하는 여정이었고 이탈리아 중부인 '피렌체'에서 하룻밤을 함께 보낼 수 있었다.





피렌체의 두오모 근처 작은 골목길에 저녁 늦게까지 영업하는 작은 중국 요릿집에서 형을 만났다. 배고픈 허기를 급히 달래며 대화를 꺼냈다. 오랜만에 만났기에 그동안 어떻게 지냈고, 어떤 여행을 하고 있는지 물으며 시간을 보냈다. 피렌체에서 만나 함께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상황이 신기하기만 했다. 음식점에서 나와 피렌체 밤거리를 형과 함께 다니며 못다 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여행 경험이 많은 형의 속성 피렌체 가이드도 들으면서 피렌체 여행의 맛보기 시간을 가졌다. 배낭여행의 단 하루, 함께한 몇 시간이었지만 그동안의 못다 한 이야기를 담고선 한국에서 만날 날을 기약하며 서로의 여행이 무탈하길 소망하는 안녕을 고했다.


여행지에서 만난 인연들은 소중하면서도 신기하다. 타국에서 만난 인연이기에 좀 더 애틋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지만 하루 동안 잊지 못할 추억을 남기기도 하고,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은 시간의 공백이 무색하듯 이전의 감정들로 재밌기만 하다. 여행을 다니면서 사람의 인연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하게 된다. 전생에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하는데, 이들은 나와 어떤 인연이기에 타국에서 만나 시간을 보내는 걸까? 단순히 동행이라 하기엔 너무나도 좋은 사람들이었기에 그들의 이야기에서 배우기도 하고, 공감하기도 하고, 때론 도움도 받게 된다.


오늘의 BGM 제목처럼 이번 여행의 인연이 앞으로 이어지는 인연의 출발점이 되길 바라면서, 피렌체에서의 첫날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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