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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스 May 14. 2020

Track.50 위기는 예상치 못하게 찾아온다

피렌체 Track.50Tell Me If You Wanna Go Home


2019. 11. 03. (일) 
이탈리아 피렌체
Tell Me If You Wanna Go Back Home – Keira Knightley
(영화 Begin Again OST)


아무리 아름다운 야경을 보더라도 착잡한 마음 뿐이었다.


피렌체는 이번 여행에서 정말 잊기 힘든 도시가 되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멋진 역작들을 봐서 감흥이 큰 것도 있지만, 예기치 못한 일을 당했기에.




사건은 지난 11월 1일 저녁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일어났다.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야경 사진이 잘 나오는 포인트는 시내 전경이 한눈에 보이는 테라스 모퉁이다. 그곳에는 사람들이 북적이는데, 그날은 피렌체의 성인을 기념하는 날이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유독 많았다. 뭐 포토스팟에 사람들이 많은 건 당연하기에 차례를 기다리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동행과 번갈아가며 사진을 
잘 찍고 나오는데 누군가 말을 걸었다. 



사건의 발생지, 미켈란젤로 언덕 모퉁이 테라스. 이 때만 하더라도 앞으로의 일을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사진 좀 찍어줄래?



내게 건넨 핸드폰은 우리가 흔히 쓰는 삼성 핸드폰 중 하나였고, 자기 부부와 아이들을 찍어달라는 
남자의 부탁에 흔쾌히 찍어주려했다. 처음에는 부부만 찍어달라고 들어서 재차 물어보니 옆의 아이를 가르키며 3명을 함께 찍어달라고 했다. 그 아이가 자신들의 딸이라며 함께 찍어달라고 하는게 아닌가. 그 때 뭔가 쎄한 느낌이었다. 아이가 살짝 집시 느낌이 났고 뭔가 부부 사이에서 절대 나올 수 없는 외모의 아이였다. 하지만 입양한 아이일 수도 있고, 복잡한 가족사를 의심하기 보다는 빠르게 사진을 찍고 많은 인파 속에서 나오는 걸 택했다. 그래서 별 의심없이 사진을 찍어줬다. 근데 왜 자꾸 가로로 찍어달라, 세로로 찍어달라, 밑에서 위의 풍경이 보이게 찍어달라는 등의 요구가 많은 걸까? 왜 그랬을까?



하지만 예감은 틀리지 않는 것일까? 

아이를 보고 쎄한 느낌이 왔을 때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결국 사진을 찍고 나오니 이미 가방은 열려있었고, 스트링 줄로 연결된 지갑을 끊어버리고 누군가 가져갔다. 문제는 거기에 현금과 카드가 전부 있었다는 게 문제였다. 아침에 200유로 정도 경비를 인출했었고 인출하기 위해서 카드를 지참했던게 화근이었다. 소매치기의 인기척을 포함해 
정말 아무 느낌도 나지 않았다. 인파를 뚫고 혹시나 땅에 떨어진 건 아닐까 확인해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청한 사람들도 자리에 없었다. 


알고보니 사진을 찍어달라는 사람들과 훔쳐간 사람이 하나의 일행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사진을 찍어달라는 사람들은 시선을 분산하기 위해 여러 각도에서 사진 찍어달라는 요구를 계속 한다. 사진 촬영에 한 눈 팔린 사이에 그들의 일행이 소매치기를 한다. 팀플레이로 활동하는 그들은 그들의 미션이 끝나면 유유히 사라진다.



결국 내 지갑은 찾을 수 없었다.






일단 잃어버린 지갑이 제 발로 돌아오지는 않으니 대책을 강구해야 했다. 우선 지갑 이외에 잃어버린 물건을 확인했다. 다행히 여권과 핸드폰은 그대로고, 오직 지갑만 없어졌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인터넷으로 카드 사용내역이 있는지 확인 후 분실신고와 카드이용정지를 신청했다. 같이 다닌 동행분과 우피치 미술관 가이드에게 자초지종 상황을 설명해서 현금 인출을 부탁드렸고, 인출한 금액과 수수료를 합쳐 한국의 계좌로 이체하는 식으로 현금을 확보했다.

2일에는 우피치 투어 이후 경찰서로 가서 폴리스레포트를 작성했다. 살면서 처음으로 경찰서를 가봤다. 이탈리아 경찰은 굉장히 사무적이었고, 불쌍한 동양인 아이가 또 당했구나라는 측은한 시선으로 레포트를 작성하는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2019년에 관재수가 있다며 경찰서 가는 일 없게 행동거지를 조심하랬던 사주카페 아주머니의 말이 머릿 속에 스쳐지나갔다. 어쩐지 잘 보낸다했더니 경찰서 가더라도 이탈리아 경찰서에 가는 건 뭔 일인가 말인가. 생애 첫 경찰서 방문은 한국도 아닌 이탈리아에서 발생했다.



파리, 로마에서 무사했고 그동안의 여행지에서 조심하며 다녔기에 문제없을 거라 생각했는 데, 한순간에 그렇게 당했다는 게 너무나 분하고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현금과 카드를 분산해서 다니지 않은 자신에게도 너무나 화가 났다. 
그 순간이 여행하면서 가장 집에 가고 싶었던 순간이었다. 앞으로 한 달 가까이 남은 기간을 어떻게 여행해야하는지 감도 안왔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여행 계획은 다시 짜야만 했고, 특히 경비 지출계획을 다시 세워야했다. 그래도 다행히 도와준 사람들 덕분에 어찌어찌 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더 조심해서 다니고 가방과 캐리어에 잠금장치를 다시 점검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고작 이딴 소매치기로 여행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는 오기도 생겼다. 어떻게든 잘 마쳐서 여행을 끝낼 거다.


추가로 남의 재물을 탐해 돈을 버는 못된 인간들, 평생 버러지 같은 인생이나 살기를. 똑같은 방법으로 재물을 잃어버리길.







오늘(3일)에서야 앞으로 여행할 방법과 대책이 세워지자 다시 여행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 로마에서부터 일정이 비슷했던 '민아'씨가 정말 큰 도움을 준 은인이었다. 나의 사정을 듣고선 현금 출력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나를 위로하며 피렌체에서 맛있는 음식 먹으며 함께 다녀준 고마운 사람이었다. 


고작 소매치기로 인해 나의 여행이 망가질 수 없다는 결의를 세워서 였을까, 베키오 다리에서 앞으로의 미래를 암시하는 무지개를 봤다. 앞으론 행운이 가득한 상황만 가득한 여행이 될 거라 생각하며 나의 여행을 멈추지 않았다!!!


Tell Me If You Wanna Go Home, See this Rainbow. It will be fine, and Don't Worry Be 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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