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베네치아 Track.51 좋은 사람 - TOY
2019. 11. 04 (월)
이탈리아 피렌체 - 베네치아
좋은 사람 (feat. 김형중) - TOY
피렌체에서 베니스로 이동하는 날이 밝았지만 여전히 하늘은 흐린 날씨였다. 피렌체에서부터 비를 자주 내린다. 이탈리아의 본격적인 우기를 맞이해 여행을 하고 있었다. 하늘은 흐리지만 그나마 위안을 삼은 건 비는 내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탈리아의 11월은 비가 자주 내리는 우기였고, 하늘이 흐리더라도 비만 내리지 않으면 다행인 나날들이었다.
이동하는 마지막 날이어서 아쉬웠을까. 예상치 못했던 소매치기 일로 마음을 진정하니 어느새 피렌체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그래도 피렌체에 왔는데 피렌체 대성당의 두오모는 못 올라가더라도 조토의 종탑은 올라가 봐야 하지 않겠는가. 오후의 기차 이동까지는 아직 시간이 여유 있었기에 호스텔에 짐을 맡기고선 조토의 종탑 입장 대기줄을 섰다.
피렌체의 메인 랜드마크인 두오모를 앵글에 담아두고 싶었기에 두오모를 올라가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조토의 종탑에 올라가 두오모의 장관을 바라보고 싶었는데, 이전 날까지 피렌체 대성당 통합권 현장 발매 대기줄이 너무 길어 포기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번 여행에 큰 도움을 준 민아씨가 두오모는 올라갔지만 미처 조토의 종탑은 시간상 올라가지 못했다며 나에게 통합권을 넘겨주었다. 도움받은 것도 많은데 너무나 큰 도움을 내게 준 은인이었다. 그리고 이 분과의 인연은 베네치아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소매치기의 멘붕에서 조금씩 회복될 때쯤, 조토의 종탑 입장 대기줄에서 어떤 사람이 내 등을 팍 쳤다. 뭐지 하고 보니까 얼굴에 하얀 분장을 한 사람이었는데, 나는 바로 큰소리로 “노노노노노!!” 외쳤다. 그러자 그 자식은 0.1초 정도 당황한 기색을 보이다가 나를 놀리듯이 따라 하고선 도망갔다. 내가 왜 이렇게 했냐면, 피렌체의 한 젤라또 가게에서 그 자식을 본 적이 있다. 다른 사람에게 셀카 찍자며 다가오는데, 당시 젤라또 직원들이 조심하라고 경고하는 제스처를 취하는 게 아닌가. 알고 보니 그 자식은 최근에 힙색을 매는 동양인, 특히 한국인 대상으로 하는 신종 소매치기라고 한다. 셀카 찍을 때 힙색 안에 물건을 훔쳐가거나 심하면 끊어가는 악질이라 한다. 만약 힙색을 훔치지 못하면, 셀카 찍은 비용으로 터무니없는 돈을 요구하는 사람이라 하니 그 자식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 놀랄 수밖에.
내가 큰 소리로 소리쳐 그 자식을 몰아내자 뒤에 줄을 서던 외국인 가족이 내게 왜 그런 행동을 했는 지를 물어보았다. 나는 신종 소매치기 수법을 자행하는 사람이라는 걸 외국인 가족들에게 알려주었다. 그들도 처음 들어본 소매치기 수법을 듣자 소지품을 주섬 주섬 확인하며 나에게 알려줘서 고맙다고 말해주었다. 소매치기의 멘붕을 조금씩 달래고 있는 중이었는데, 역시 방심과 안심을 하기엔 아직 내 가슴은 진정되지 않은 것 같았다.
긴 시간에 걸쳐 대기하며 조금씩 마음을 진정해나갔고, 오랜 시간 끝에 드디어 종탑으로 들어갔다. 종탑 안에 좁디좁은 계단을 무념무상으로 계속 올라가면 정상이 보인다. 올라가는 계단이 꽤 많아 중간에 포기할까도 싶었지만 포기하고픈 유혹과 육체적 힘듦을 거쳐야 비로소 보일 피렌체 전경 시퀀스의 진가를 위해선 마음을 다잡고 다시 발걸음을 계단으로 옮겼다.
높은 곳에 올라와 바람에 땀을 식히니 좀 전의 놀란 마음도 진정된다. 종탑에서 바라보는 시야에는 두오모가 가장 가까이에서 보이고, 피렌체 시내 전경이 보인다. 분지형태로 산으로 둘러싸인 도시의 전경, 붉은 지붕과 골목 사이사이의 모습들, 그리고 피렌체의 존재감을 단연코 제일로 선보이는 피렌체 대성당의 두오모까지.
이렇게나 아름답고 매력적인 도시인데 소매치기의 악몽으로만 이 도시를 기억할 수는 없었다. 피렌체의 피어난 도시의 이야기와 매력을 한눈에 담고선 이제 도시를 떠날 채비를 위해 내려가는 계단으로 향했다.
이제 피렌체 산타 노벨라 역에서 베네치아로 향하는 기차를 탔다. 사람이 많은 역이니만큼 경계태세를 강화한다. 이때부터 스스로에게 경계태세를 발동해 다니고 있었다. 수상한 사람이 보이면 저 멀리서부터 피하기, 말 거는 외국인은 일단 의심하기, 웬만하면 군인이나 경찰관, 제복 입은 공무원 쪽으로 다니기 등등. 이탈리아도 테러의 위험을 막고자 역사에 군인과 경찰이 상주하고 있었다.
오늘 내가 탈 기차는 '이딸로(Italo)'로, 피렌체 산타마리아 노벨라 역 (Firenze Santa Maria Novella Station)에서 오후 2시 54분에 출발해 베네치아 산타루치아 역 (Venezia Santa Lucia Station)에 오후 5시 4 4분에 도착하는 기차였다. 약 2시간 조금 넘은 시간 동안 달리는 붉은 자줏빛 외관의 기차였다. 역사의 수많은 소매치기 위험요소를 거르고 무사히 열차에 탑승하고선 바깥 풍경을 바라본다. 이탈리아의 가장 비옥한 지역인 토스카나 지역을 지나간다. 다음에는 토스카나의 한 시골 민박집에 가서 아그리투리스모(Agriturismo)를 꼭 해봐야지.
피렌체에서 2시간을 달려 베네치아 산타 루치아역에 도착했다. 베네치아에서 숙소를 본섬의 한인민박에 잡았기에 메스트레 역이 아닌 산타루치아 역에 잡았다. 기차에 내리자 오후의 쌀쌀한 바닷바람과 함께 바다내음이 물씬 풍겨왔다. 역사에서 나오자마자 배가 지나는 운하가 펼쳐진 모습을 보며 비로소 베네치아에 도착했음을 실감한다. 저녁 빛 노을이 물드는 베네치아의 모습을 바라보며 숙소로 향하는 페리에 탑승했다.
페리에서 내려 숙소까지 가는 길에 뱃길을 잇는 다리가 계속 나왔고, 팔근육을 힘껏 쓰며 캐리어를 들고 다녔다. 캐리어를 던져버릴까 하는 생각도 아주 잠시 들었지만 그럴 때마다 베네치아의 운하에 비친 달빛을 보며 맘을 달랬다. 고생 끝에 베네치아 본섬의 한인민박 숙소에 도착했다. 인터넷에서 고풍스러운 디자인으로 인기가 많은 숙소였고, 비수기라서 나 혼자 방을 쓸 수 있었다. 숙소 이용사항을 듣고 나선 허기진 배를 달래려 일단 밖으로 나갔다.
로마-피렌체에서부터 일정이 비슷했던 민아씨와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다. 나보다 베네치아에 하루 먼저 오고, 하루 일찍 밀라노로 넘어가는 일정이어서 오늘이 함께하는 마지막 일정이었다. 민아씨는 숙소에 머무는 브라질 동행 분과 함께해도 되냐고 물었고, 나는 새로운 동행을 만날 수 있어서 동의했다. 영어로 대화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하며 식사를 했는데, 브라질 동행은 핸드폰 스트링 줄과 크로스백에 연결된 자물쇠를 보며 신기해했다. 브라질도 물론 치안이 좋지 않은 걸로 유명한데, 이 정도까지 준비성 있지는 않다고 했다. 오히려 자국의 치안이 더 심하니 유럽의 치안은 아무렇지 않은 듯한 덤덤한 느낌이란다. 이런 이야기를 듣자 새삼 밤늦게까지 다니고, 카페에서 노트북을 두고 화장실을 당연하게 다녀오는 한국의 치안이 대단하다.
저녁식사를 마무리하고 앞으로 남은 여행 잘 마치라는 동행들의 파이팅을 받으며 헤어지고선 산마르코 광장으로 향했다. 밤의 산마르코 광장은 생각보다 조명이 많이 들어오지 않았는데, 그래도 그 나름대로 운치 있는 모습이었다. 화려한 조명을 비추는 야경의 모습이 아니라 은은하게 빛나는 모습이 칠흑 같은 바다와는 대조를 이뤘다. 산마르코 광장의 야경을 보자 낮에 오면 더욱 멋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커졌다.
토이의 좋은 사람은 바로 이곳 베네치아에서 뮤직비디오를 촬영했기에 오늘의 BGM으로 선정했다. 유독 이탈리아는 길 위에서 함께 시간을 같이 보내준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보는 여행지였다. 피렌체에서 소매치기를 하는 나쁜 사람들에게 당하기도 했지만, 이탈리아에서 마주한 사람들은, 특히 민아씨를 비롯해, 나에게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이었다. 내가 어려운 상황에 처하자 마치 자기일인듯냥 도와준 사람들 덕분에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고 생각 들었다. 노랫 속 토이가 말하는 '좋은 사람'과 내가 길에서 만난 '좋은 사람'의 부류는 다를 지라도,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확고해진 이번 여행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좋은 사람들과의 추억이 기다리고 있길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