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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스 May 18. 2020

Track.53 하루 끝이 모이는 여행

이탈리아 베네치아 Track.53 하루 끝 - IU


2019. 11. 06 (수)
이탈리아 베네치아 부라노섬
하루 끝 - IU 



일주일 내내 비가 온다던 베네치아에서 유일하게 맑은 날을 맞이했다. 어제 숙소에서 스텝은 "내일은 하늘이 맑다고 하니 부라노 섬에 다녀오기 좋겠네요"라고 말했다. 비가 오면 어떡하지라는 우려와 달리 다행히도 어제와는 다른 맑은 하늘 아래의 베네치아를 볼 수 있었다. 날씨가 화창하니 고민도 하지 않고 바로 배를 타러 선착장으로 간다. 베네치아에 오면 꼭 가야 하는 곳, 부라노 섬으로 향했다. 


부라노 섬은 베네치아 중 한 섬으로 형형색색의 집들이 있는 마을로 유명하다. 보통 베네치아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하루를 '부라노-무라노-리도' 섬 투어 당일치기를 한다. 나도 처음엔 부라노, 무라노, 리도 모두 다녀올까 생각했지만, 어제 스텝이 리도는 해수욕장으로 유명해서 지금 같은 동절기에는 비추천하는 곳이라며 말렸다. 대신 부라노 섬에서 시간을 보내고 어제 비가 와서 못 가본 본섬을 구석구석 다녀보길 추천했다. 현지인의 추천을 따르는 게 성공적인 여행의 기본이기에 스텝의 권유를 따라 여행하기로 결정했다. 베네치아 북쪽 폰다멘테 노베 (Fontdamente Nove) 승강장에서 12번 페리를 타고 40분간 물살을 가르며 섬으로 향했다.





오늘의 BGM인 아이유의 ‘하루 끝’은 베네치아 부라노 섬에서 MV 촬영을 했다. 부라노 섬의 형형색색의 집들을 배경으로 노래가 나오는 '하루 끝' 뮤직비디오를 떠오르며 부라노 섬을 돌아다녔다. 부라노 섬의 집들이 형형색색인 건 어부들이 흐린 날에도 자신의 집을 명확히 알기 위해서란다. 부라노 섬의 모습은 비비드 컬러의 작은 장난감 집을 모아둔 듯한 느낌이었다. 다행히 날씨도 맑아서 원하는 색감의 모습들을 찾아 찍을 수 있었다. 부라노 섬에 온다면 당연히 해야 하는 9분할 컷을 위해 동행들과 함께 다녔다.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는 게 민망하지만 잊지 말자 창피함은 한순간, 사진은 영원하다는 걸.







부라노 섬에서 본섬으로 돌아와 본섬을 다시 보기로 했다. 비가 와 무거운 공기를 머금은 어제의 베네치아와는 다르게 맑은 하늘의 베네치아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푸른 하늘 아래 배들이 여유롭게 출렁이는 파도를 가르며 다니고 있었다. 곤돌리에테는 손님에게 노래도 한 자락 뽐내고 있었다. 산 마르코 광장에 와서 어제 못 찍은 사진을 담았다. 나폴레옹이 유럽의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이라 칭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앞으로 보이는 바다와 우뚝 솟은 종탑, 그리고 이를 감싸고 있는 궁전과 광장의 모습은 유럽의 본토로 들어가기 전의 화려한 응접실이었다.


이전에 대항해시대 온라인 게임을 했을 때, 베네치아는 참으로 가기 힘든 곳이었다. 베네치아로 향하려면 역풍을 뚫고 항해를 해야 했기 때문에 베네치아로의 항해는 고전 중에 고전을 거듭하는 교역로였다. 베네치아에 도착하면 맞이하는 산 마르코 광장은 PC 그래픽으로도 아름다워 실제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는데, 드디어 맑은 날씨의 산 마르코 광장에 도착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산 마르코 광장에서 산타마리아 살루테 성당 쪽으로 넘어가서 반대편에서 산 마르코 광장을 보았다. 수평선 위로 세워진 건물들의 모습은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베네치아는 그동안 다녀온 어느 도시와 비교했을 때 베네치아만이 지닌 도시의 감흥이 달랐다. 베네치아에서만 볼 수 있고, 베네치아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도시의 이야기가 가득했다.  우리는 
수상도시를 이야기할 때, 대부분 ‘00의 베네치아’라는 표현을 자주 차용한다.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을 북구의 베네치아라 부르고, 네덜란드의 운하도시 암스테르담도 베네치아에 버금가는 수상도시이며, 중국의 쑤저우는 마르코폴로가 자신의 고향인 베네치아를 떠올려 동양의 베네치아라 불렸다. 그만큼 베네치아라는 도시가 지닌 유일성과 특이성은 그 어느 도시에도 없으며, 수상도시의 기준점이 됨을 다시 한번 알게 된다. 우리가 보쌈의 원조로 할머니보쌈을 찾듯, 원조가 지닌 베네치아의 Originality는 유일하고 달랐다.







하루 끝마다 글을 써서 포스팅한지도 언 52일째다. 매일매일 그날의 여행하면서 느끼는 감흥과 순간을 기록하니 하루의 끝이 스스로 정리가 된다. 밤늦게까지 여행을 하고 지친 몸을 숙소에 이끌고 오더라도 하루의 감흥을 잊어버리지 않으려 하루 끝의 일기 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매일매일 여행기를 작성하는 습관은 하루 끝을 마무리하는 하나의 루틴이 되었고, 그렇게 써 내려간 여행기는 어느새 두꺼운 노트의 절반을 채워졌다.


하루 끝에 여행일기를 쓰면서 오늘 다닌 여행이 단순히 '좋았다'라고 그냥 넘기는 게 아니라 무엇을 느끼며 어떤 상태로 여행을 했는지를 바라본다. 맘 속에 숨어있던 말을 꺼내 글로 새겨본다. 오늘의 나는 어떤 감정을 느끼며 하루를 보냈는지 스스로에게 건네본다. 마디를 채우는 여행으로 시작한 유럽여행의 2/3이 흘러간 시점에서 나는 무슨 말로 하루를 마감했는지 확인해본다.


오늘은 하루 끝에서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 위에 세워진 유일한 도시의 모습을 보며, 오늘 하루 나는 이 도시가 품은 이야기를 어디까지 보았는가를 다시금 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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