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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스 May 20. 2020

Track.55 한껏 느리게 가는 바닷가 완행열차

프랑스 니스 Track.55 I Feel It Coming -Weeknd


2019. 11. 08 (금)
이탈리아 밀라노 - 프랑스 니스
I Feel It Coming (feat. Daft Punk) - Weeknd 


Hello thello


비가 그치길 바란 나의 바람과 달리 밀라노의 아침은 다시 거센 비가 세차게 내렸다. 비 오는 거리를 우산을 쓰며 캐리어와 배낭을 메며 낑낑거리며 중앙역까지 이동했다. 이럴 땐 정말 집에 가고 싶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내가 이러고 있는지. 현타가 온다. 세찬 비를 온몸으로 맞으면서 어찌어찌하여 중앙역에 도착해 열차에 몸을 실었다. 내가 오늘 타는 열차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프랑스 니스로 향하는 텔로(thello) 열차였다.


텔로 열차는 트랜이탈리아에서 운영하는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주요 도시를 연결하는 국제선 열차다. 보통은 니스/마르세이유-제노아/밀라노 노선의 주간열차를 많이 이용하며, 파리-베네치아 노선의 야간열차도 이용한다고 한다. 나는 니스로 가야 했기 때문에 밀라노-니스 주간열차를 예약했다. 밀라노-니스 열차는 완행열차로 지중해 해안가를 따라가는 코스로 유명하다.⠀



연착에 대한 사과로 받은 스낵 세트(좌)를 냠냠 먹다보니 도착한 저녁의 니스 중앙역(우)



밀라노에서 출발한 기차는 여전히 비가 내렸지만 
제노아 역에 들르니, 날씨가 점점 맑아졌다. 기왕이면 가기 전부터 맑았으면 참 좋았을 텐데. 잊지 말아야겠다. 이탈리아는 우기 때 오지 말자는 걸. 여하튼 이제 날씨가 맑아졌으니 프랑스 니스에서 꿈에 그리던 안온한 남프랑스 여행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안심이었다.


텔로 열차는 반드시 창가에 앉아야 하는데, 니스로 향하는 구간이 지중해 해안을 따라 지나가기 때문이다. 아침에 맞은 빗물 자국이 창문에 남아있어서 사진을 찍으면 예쁘게 담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눈에 담기로 했다. 푸른 지중해 바다가 계속해서 이어진다. 난 그저 눈에 담을 뿐이었다. 그게 느리게 가는 텔로 완행열차의 매력이었다. 느리게 간다고 해서 누가 뭐라 하지 않는 게 완행열차의 매력이다. 천천히 가는 만큼 눈에 담아 가는 풍경은 많아지고, 오랜 시간 걸려가기 때문에 오랫동안 기억에 남길 수 있다. 덜컹거리는 완행열차에 몸을 실으면서 빗속에서 여행을 다녀왔던 몸의 피로를 푸는 시간으로 삼았다.


예상치 못하게 열차가 1시간 30분이 연착되었고, 기차에서 승무원들이 연착에 대한 사과의 의미로 간단한 스낵을 주었다. 사실 난 오늘 하루는 이동하는 날이라 생각해서 다른 일정을 잡지 않았다. 그래서 딱히 연착되어도 크게 상관없었는데, 덕분에 간식거리도 받게 되어 기분이 좋았다. 간식 먹으며 점점 해가 지는 서쪽하늘을 바라보며 지중해의 풍광을 눈에 담았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여러 번 느낀다. 여행은 역시 의외성의 연속이라는 걸.





니스에 도착하니 오후 6시 30분이 넘었다. 나는 빨리 바다를 보고 싶어 숙소 체크인을 재촉했다. 프랑스 남부의 휴양도시 니스에 간다고 했을 때, 교환학생으로 프랑스 니스를 먼저 갔다 왔던 한 후배가 이렇게 말했다. 


“니스는 바다뿐이지만, 그게 정말 전부이지만, 그렇기에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다.” 

이 말이 생각나 니스의 바다를 보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지금 시기의 유럽은 해가 빨리 져서 6시가 되면 이미 해가 거의 진다. 내가 도착하고 난 뒤의 니스 바다는 완전히 밤바다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근데 왠지 익숙한 이 느낌은 무엇일까?

보통 새로운 여행지에 가면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지는데, 새로운 광경에 큰 감흥을 얻거나, 아니면 국내의 비슷한 곳을 떠오르거나. 대게는 전자의 경우가 많지만 니스의 밤바다를 첫 맞이한 나의 느낌은 익숙한 느낌이었다. 니스의 밤바다를 보고 있노나니, 어라? 왜 제주도나 여수가 떠오르는 건 대체 뭘까?

물론 내가 아직 니스의 낮바다를 보지 못했기에 그 매력을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의 니스 밤바다만큼은 우리나라 여수나 제주도의 느낌을 받은 건 사실이다. 건물의 프랑스 국기가 없었으면 여기 여수라고 해도 믿을 판이었다. 물론 여수와 제주도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지만 니스의 진면모를 보기 위해서 낮의 바다를 하루빨리 보고 싶었다. 왜냐면 내가 생각했던 니스의 광경은 아무래도 낮의 푸른 바다를 간직한 모습이었기에 칠흑같이 어두운 바다인 니스 밤바다의 모습에 실망했던 것일 수도 있다. 


니스 밤바다는 장범준이 기타로 노래하던 여수 밤바다의 감성에는 못 미치지만 그래도 지중해 나름의 느낌을 지니고 있다. 그래도 니스 하면 푸른 바다색을 품은 바다이기에, 낮의 지중해를 맛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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