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22 (일)
영국 런던 캠든타운
Track.08 60's Cardin - Glen Check
굳이 숙소를 옮겼던 이유
여행을 하면서 가장 힘들고 귀찮은 과정이 있다면 그건 바로 짐을 싸고 숙소를 옮기는 과정일 것이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런던에서 숙소를 옮기는 날이었다.
보통 나는 1도시 1숙소를 잡는 편인데 런던에서는 9일 동안 있으면서 2번의 숙소를 묵게 되었다. 이전의 6박을 호스텔에서 묵었다면, 오늘부터 2박은 에어비앤비로 묵으려 한다. 숙소를 옮기는 귀찮은 작업을 감수하면서도 에어비앤비로 숙소를 옮긴 이유는 단 하나다. 바로 현지인처럼 런던에 머물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
에어비앤비의 광고 슬로건처럼 여행자들은 현지인, 로컬들처럼 머물기를 원했다. 익숙한 도시를 떠나온 이방인에게 여행하는 순간만큼은 여행지의 현지인이 되고 싶으니까. 대학생활 때 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교환학생이었다. 군 제대 이후 교환학생을 가려 노력했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아쉬움이 가득해서였을까, 해외에서 하숙(?)하는 유학생의 느낌을 받고 싶었다.
현지인처럼 다녀보는 건, 관광객의 입장과 시야에서 벗어나겠다는 행위다. ‘인천에서 온 나’는 여행하는 기간 동안만큼은 ‘런던에 사는 나’가 되고 싶었다. 이를 호스텔에서는 느끼기는 힘드니, 에어비앤비로 숙소를 옮겼다. 런던의 한 가정집에서 생활하는 것, 관광객으로 가득한 숙박시설이 아닌 조용한 현지 동네에서 잠시 머무르는 시간. 그 시간을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숙소를 옮기는 귀찮은 작업에도 불구하고, 내가 머무를 동네에 짐을 옮겼다.
캠든 타운의 작은 방에서 머물다
안녕 Woolfie :)
오늘부터 머물 새로운 숙소는 캠든 타운(Camden Town)에 위치한 Flat의 한 개인실이었다. 호스트와 연락을 주고 받은 뒤, 숙소에 들어가 내가 머물 방을 보니, 마치 런던에서 방 한 칸을 얻어 홈스테이하는 학생의 된 것만 같았다.
아, 그리고 여기에 고양이 울피(Woolfie)가 문 앞에서 맞이해줬는데 우리집 고양이에 족히 두 배는 되는 자이언트 고양이었다. 시끌벅적한 호스텔 주변과는 달리 캠든 타운은 조용했다. 정말 런던의 주택가 같은 느낌이었다. 길게 늘어선 집들과 지하철 역 주변에 몰려있는 가게들. 딱 상상하던 이미지의 거리였다.
호스트는 편의도 잘 봐주고, 여러 가지 마을 주변 편의시설도 알려주었다. 에어비앤비를 해외에서 이용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다행히도 좋은 호스트를 만나 편안히 잘 지낼 수 있었다. 숙소에서 머무는 규칙 및 공지사항을 알려주고, 별다른 터치를 하지 않는 호스트였다. 외출을 하고 저녁에 들어오면 간단하게 하루 일과가 어땠는지 안부를 물어볼 정도의 대화만 했다. 덕분에 호스트가 알려주는 런던의 숨은 명소를 알 수 있었다. 이날도 호스트가 알려준 숨은 명소에 다녀왔다.
의외로 한국 여행자는 잘 가지 않는 미술관을 향해
여기가 내셔널 초상화 갤러리
숙소에서 짐을 정리한 뒤, 다시 런던 시내로 나섰다. 문 밖의 날씨를 보니 비가 쏟아질 날씨일 것 같았다. 이런 날씨엔 어딜 돌아다니기 보다는 미술관이나 박물관 같은 실내에 들어가는게 상책이다. 오늘은 내셔널갤러리 말고 다른 미술관에 가기로 결정했다. 내셔널갤러리 뒤편, 한국인들은 많이 가지 않지만 익숙한 초상화들이 있는 ‘내셔널 초상화 갤러리 (National Portrait Gallary)’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국인들은 보통 런던의 미술관을 가면 내셔널갤러리, 테이트모던 정도를 간다. 물론 두 곳이 유명하긴 하지만 오늘 간 내셔널 초상화 갤러리는 의외의 알짜배기 미술관이다. 일단 무료이고, 교과서에서 한 번쯤은 봤을 영국 인물들의 초상화들이 모여있기 때문이다.
내셔널 초상화 갤러리는 미술관이라는 느낌보다는 사진관에 가까웠다. 사람을 그린 초상화들이 전시되어 있기에 인물을 보여주는 사진 전시회 같았다. 내셔널 초상화 갤러리는 교과서든 어디서든 한 번쯤은 봤을 영국 인물들이 모여있는 사진 전시회였다.
엘리자베스 1세, 헨리 8세 등 왕가의 초상화부터 시작해 윌리엄 셰익스피어, 아이작 뉴턴, 찰스 다윈, 비틀즈까지 각 분야에서 영국을 대표한 사람들의 초상화까지 모두 만나볼 수 있다. 엘리자베스1세 여왕을 비롯한 정치인, 세상을 바꾼 과학자부터 영문학의 대가들까지. 개인적으로 지난 시내 야경투어에서 들은 헨리 8세의 여섯 아내의 초상화를 찾는 재미가 쏠쏠했다.
최초의 공화정을 이끈 올리버 크롬웰, 영문학의 대가 세익스피어, 사과로 과학을 알아낸 아이작 뉴턴 프랑켄슈타인의 저자 메릴 셸리, 여성 영문학의 대가 조지 엘리엇, 그리고 엘리자베스 1세 여왕
비가 그친 흐린 날의 런던 거리를 거닐며
갤러리에서 나오니 한바탕 내리던 비가 그치고 흐린 날씨가 지속되었다. 비가 그친게 다행이다. 비만 오지 않는 날이면 다니는 데 큰 문제는 없다. 구름이 짙게 깔린 흐린 날씨는 영국 런던의 느낌을 물씬 풍기게 만든다.
점심 때 먹은 파이브가이즈 햄버거나 소화시킬 겸 다음 목적지인 트와이닝(Twinings) 본점까지 걸어갔다. 트와이닝은 영국 대표 홍차 브랜드 중 하나다. 영국의 일반 마트에서, 심지어 우리나라 마트의 해외물품 코너에서도 만날 수 있는 홍차 브랜드이긴 하다. 그래도 본점에 가면 다양한 차를 만날 수 있다.
트와이닝에 도착해서는 여러 찻잎을 시향하고 시음할 수 있었는데, 비온 뒤 쌀쌀한 날씨에 으슬으슬한 몸을 녹이려 레이디 그레이 차를 테이크 아웃했다. 차를 호로록 마시면서 템즈 강변을 천천히 걸어보았다.
따뜻한 홍차를 손난로 삼으며 정처없이 걸었다. 템즈강변의 산책길을 걷다보니 웨스트민스터 궁전이 보였다. 웨스트민스터 궁전 옆 시계탑 빅벤은 여전히 공사중이었다. 유럽여행을 두번이나 했지만, 온전한 모습의 빅벤은 한번도 본 적이 없다. 빅벤의 종소리를 듣기 위해 영국 런던에 다시 가야만 할 듯하다.
이후 킹스맨 양복점으로 유명한 헌츠맨을 지나 옥스퍼드 서커스로 발길을 옮겼다. 오늘은 딱히 일정이 있어서 다닌 하루가 아닌 그저 발길 가는 대로 돌아다닌 하루였다. 숙소로 돌아와 씻고 침대 위에 누워 일기로 하루를 마무리 했다. 런던에 돌아다니고, 작은 방에 돌아와 하루를 갈무리하니 정말 영국 하숙생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옥스퍼드 서커스 (좌) / 헌츠맨 양복점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