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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더군 Jun 06. 2022

한 손에는 칼, 한 손에는 쿠란

가제 - 이슬람 여행 


"이라크에서 ISIS가 자살 폭탄 테러범으로 훈련시킨 1,500명 이상의 어린이"  - Asharq AL-awsat 




한국인들이 이슬람에 대해 가장 처음으로 생각나는 말은 “한 손에는 칼, 한 손에는 쿠란”이라고 한다. 이말은 이슬람은 전쟁의 종교이며, 이슬람으로 개종하지 않으면 죽인다는 말로 현대 테러리즘과 함께 가장 이슬람을 이해할수 없는 존재로 만들며, 이슬람을 무서워 하게 만드는 말이다. 


누구나 들어본 이야기지만 이 말은 거짓이다. “한 손에는 칼, 한손에는 쿠란”이라는 말은 어디서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 없다. 확신할 수 있는 건 이 말을 만들어낸 사람은 이슬람과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인 무슬림을 꽤 증오했나보다. 이슬람의 성경인 “쿠란”에도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의 삶을 기록한 “하디스”에도 무슬림이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규칙인 “샤리아”에도 믿지 않는 자를 죽이라는 내용은 없다. 



قَاتِلُوا الَّذِينَ لَا يُؤْمِنُونَ بِاللَّهِ وَلَا بِالْيَوْمِ الْآخِرِ وَلَا يُحَرِّمُونَ مَا حَرَّمَ اللَّهُ وَرَسُولُهُ وَلَا يَدِينُونَ دِينَ الْحَقِّ مِنَ الَّذِينَ أُوتُوا الْكِتَابَ حَتَّىٰ يُعْطُوا الْجِزْيَةَ عَن يَدٍ وَهُمْ صَاغِرُونَ 

하나님과 내세를 믿지 아니하며,∗  하나님과 사도가 금기한 것을 지키지 아니하고, 진리의 종교를 따르지 아니한 자들에게 비록 그들이 성서의 백성이라 하더라도 인두세를 지불할 때까지 성전하라  그들은 스스로 초라함을 느끼리라. - 쿠란 9:29




두바이 - 부르즈 할리파 

역사적으로도 이슬람이 “한 손에는 칼, 한 손에는 쿠란” 이라는 말그대로 보통 사람들을 학살한 일은 찾기 어려운데, 7세기 시작된 이슬람이 수많은 전쟁을 일으킨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 중동은 여러 루트의 실크로드를 따라 현대의 두바이 같은 자유 무역도시들이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며, 엄청난 부를 얻는 상황이었고 아무리 전쟁이 벌어져도 귀중한 오아시스 안에서는 싸우지 않는 유목민족의 전통상 맞지 않는 이야기였다. 특히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점령지 시민을 몰살시킨다는 것은 실리를 중요시하는 중동 지역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이슬람은 신자들에게 병역과 “자카트”라는 세금을 기독교, 유대인 등 비신자들에게는 보호세의 개념으로 “지즈야”를 내도록 하였다. 7세기부터 이슬람의 영역이 폭발적으로 확장되었을 때 정복당하지 않았던 영주들 중 동로마 제국이 받았던 세금보다 지즈야가 더 저렴하다는 이유로 도시 전체가 이슬람교로 개종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슬람 제국들은 세금을 위해, 기독교인들의 집단적인 이슬람 개종을 막었었다. 또한 중세에 개인이 종교를 선택한다는 것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불가능했다. 



사우디아라비아 - 메카 


인간 자체가 가장 중요한 자원인 시대에 개종하지 않는다고 죽인다는 것은 비효율적이며, 수백 개의 신전이 있던 메카에서 시작된 이슬람은 타 종교와 같이 살아가는 방법을 알았다. 무함마드는 기독교인들과 유대인들을 노예로 삼지 말라고 무슬림에게 선언했다. 터키의 전신 오스만튀르크는 제국 내부의 수많은 민족들을 힘으로만 통치할 수 없는 것을 잘 알았고 “밀레트”라는 제도를 이용해, 각 민족의 종교지도자들이 직접 통치하게 하고 자치권을 주었다. 


킹덤오브헤븐 - 살라딘




“한 손에는 칼, 한 손에는 쿠란”이라는 말에서 쿠란 대신 성경이라는 말을 넣으면 어떨까? 기독교인들은 1차 십자군 전쟁 중 목적지인 예루살렘성을 정복(1099)후 사흘간 성 내부에 있던 거의 대부분의 사람을 학살했다. 적게 잡아도 만명, 기록에 따라선 7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죽었다고 하는데, 학살은 무슬림, 유대인, 기독교인을 가리지 않았다. 


반대로 거의 한세기 후 세번째 십자군 전쟁에서는 이슬람의 군주 살라딘은 예루살렘성을 기독교인의 손에서 해방시키면서 “천국의 가장 위대한 점은 자비”라고 하며, 예루살렘의 왕과 포로들을 석방했다. 그는 약탈과 학살이 일반적이었던 중세 전쟁에서 품위와 기사도를 갖춘 자비로운 군주였다고 한다. 살라딘과 당시 십자군에 관한 이야기들은 영화긴 하지만 역사적 고증이 잘되었다고 평가되는 킹덤 오브 헤븐(Kingdom Of Heaven)을 보면 알 수 있다. 구백년전 중동에선 이슬람이 품위 있는 쪽이었고 기독교인들은 흉포한 야만인이었다. 


일본의 역사 소설가 시오노 나나미는 저서 “십자군 이야기”에서 “전쟁은 인간이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떠올리는 아이디어다.”라며 책의 서두를 시작한다. 유럽에서 십자군 전쟁은 성전이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유럽의 군주들에게 전쟁을 호소한 우르바노 2세 교황은 박해당하는 성지 순례자들을 이슬람 약탈자에게서 보호하고 예루살렘의 성묘 교회(1)를 되찾아야 한다고 성전을 주장했지만 사실은 신성로마 제국의 황제때문에 힘을 잃고 유럽을 떠돌게 된 교황이 자신과 교회의 권위를 다시 세우기 위해서였다. 


당시 지중해 동부는 2)만지케르트 전투(1071)이후 동로마의 쇠락으로 수많은 세력들이 서로 전쟁을 하고 약탈이 흔한 지역이었고, 성지순례가 종교적 의무인 무슬림은 성지순례가 가져오는 경제효과를 이해하고 있었기때문에 이슬람이 의도적으로 기독교 성지순례자들을 박해한다는 교황의 말은 거짓이었다.


적어도 1차 십자군에서 벌어진 예루살렘 학살 이전까지는 이슬람은 기독교를 이슬람의 공통된 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로마 교황의 정치적인 이유로 수많은 사람들은 전쟁에 참가했고 죽었으며, 기독교와 이슬람은 십자군 전쟁으로 인해 서로를 적대하기 시작했다. 




훈족의 아틸라 - 카자흐스탄 주화 



유럽은 역사적으로 크게 아시아계에 의한 두번의 침략이 있었는데, 5세기 유럽을 죽음과 공포에 빠지게 만든 훈족의 아틸라는 신의 재앙, 신의 채찍이라고 불렸고, 슬라브인들을 유럽으로 도주하게 만들었다. 13세기 몽골 군 역시 유럽인으로 저항할수 없는 재앙이었으며, 16세기 유럽의 상징 비엔나 바로 앞까지 밀어닥쳤던 오스만 제국은 마르틴 루터가 말했듯 신의 재앙이고 공포였다. 아마도 “한 손에는 칼, 한 손에는 쿠란”이란 말에는 유럽인의 뇌리 속 깊숙하게 박혀있는 아시아계에 대한 공포가 숨어있는게 아닐까? 


혹자는 이 말을 토마스 아퀴나스가 만들어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확실하지 않다고 많은 학자들은 말한다.



1) 예수가 죽고 묻히고 부활했다는 위치에 세워진 교회

2) 동로마제국과 셀주크 제국이 현재 터키 동부에서 벌인 전투로 셀주크 제국의 승, 동로마 쇠락의 시작으로 이후 점차적으로 영토를 잃고 결국 동로마는 도시 하나인 콘스탄티노플 (이스탄불)로 축소된다. 결국 1453년 동로마는 오스만 제국에게 멸망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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