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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이누나 Feb 02. 2023

절대 헤어질 수 없는 사람의 헤어질 결심

영화 <헤어질 결심> 리뷰

박찬욱 감독님과 정서경 작가님의 엄청난 팬이다. 살다 보면 ‘나만 진심인가?’ 싶은 순간이 있는데, 영화 헤어질 결심을 보고 나 말고 누군가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영화는 ‘절대 헤어질 수 없는 사람의 헤어질 결심’에 대한 이야기.



줄거리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포털사이트에 공개된 공식 영화소개 글을 첨부해 본다.



산 정상에서 추락한 한 남자의 변사 사건. 담당 형사 '해준'(박해일)은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와 마주하게 된다. "산에 가서 안 오면 걱정했어요, 마침내 죽을까 봐." 남편의 죽음 앞에서 특별한 동요를 보이지 않는 '서래'. 경찰은 보통의 유가족과는 다른 '서래'를 용의 선상에 올린다. '해준'은 사건 당일의 알리바이 탐문과 신문, 잠복수사를 통해 '서래'를 알아가면서 그녀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져가는 것을 느낀다. 한편, 좀처럼 속을 짐작하기 어려운 '서래'는 상대가 자신을 의심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해준'을 대하는데…. 진심을 숨기는 용의자 용의자에게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느끼는 형사 그들의 <헤어질 결심>



* 이후 내용에 강력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 읽을 것을 추천드립니다.


서래와 해준의 아름다운 찰나



- 해준(박해일) : 내가 품위 있댔죠? 품위가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아요? 자부심이에요. 난 자부심 있는 경찰이었어요. 그런데 여자에 미쳐서... 수사를 망쳤죠. 나는요... 완전히 붕괴됐어요. 할머니 폰 바꿔 드렸어요, 같은 기종으로. 전혀 모르고 계세요. 저 폰은 바다에 버려요깊은 데 빠뜨려서아무도 못 찾게 해요.



자부심 넘치는 형사였던 해준(박해일)이 서래(탕웨이)가 범인임을 알게 됐지만, 그동안의 자신이 가졌던 올곧은 신념을 모두 져버리고 결정적인 증거품인 핸드폰을 바다에 던져버리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모든 걸 알아버렸는데도 증거품을 영원히 없애고 도망치라 말하는 해준의 마음도 사랑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해준은 완전히 붕괴되어 헤어질 결심을 했는데, 서래의 진짜 사랑은 이때부터 시작됐나 보다. 영화에서는 이 점을 엔딩장면에서 서래의 대사를 통해 매우 명확하게 보여주는데, 이때부터 서래를 감싸는 파도처럼, 먹먹한 감정이 물밀 듯이 밀려들어왔다.


각본집에서 발췌한 영화 엔딩의 대사. "내가 언제 사랑한다고 했어요?"



‘저 폰은 바다에 버려요. 깊은 데 빠뜨려서, 아무도 못 찾게 해요.’ 

해준이 완전히 붕괴됐다고 이야기하는 그 목소리를 서래는 사랑한다는 말로 들었다. 휴대폰에 녹음된 해준의 목소리를 수없이 반복해서 듣다가, 결국 영원한 미제사건으로 남기 위해 파도와 함께 사라져 버리는 엔딩은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해준이 내가 언제 사랑한다고 했냐며 소리치며 따졌을 때, 세상을 다 잃은 것처럼 쓴웃음 짓는 서래의 표정연기는 정말이지 강렬하게 남았다. 가끔은 상대방을 나 혼자만 진심으로 대하는 걸까 생각이 드는 순간이 많았는데 그건 아니라고, 더 깊은 사랑을 가진 서래도 있다며 말을 걸어오는 기분이 들었달까.



영화의 중심이 되는 해준과 서래의 이야기 말고도 해준의 아내 정안(이정현)과의 관계에서 분명히 서래보다 사랑하지 않는 것 같은데 공허한 정사장면이 나오는 부분. 서래와는 그런 장면이 없지만 불면증이 있는 해준이 서래 곁에서는 깊은 잠에 드는, 누가 봐도 서래를 더 사랑하는 것 같아 보이는 해준의 모습. 폐경에 좋다면서 석류를 산더미처럼 준비한 정안의 최종 목적은 놀랍게도 해준이 아니고 외도상대인 이주임(유태오)이었던 것. 등장만으로도 놀라웠던 김신영 배우가 맡은 연수가 ‘저희 팀장님은 엄청난 실력자’라고 이야기하는 모습이 단순한 동경이 아니라 은근슬쩍 해준을 좋아하는 것 같은 미묘한 느낌. 저 여자(서래)한테 비싼 초밥 왜 사준 거냐며 해준에게 따져 묻는 형사동료 수완(고경표). 모든 캐릭터가 적재적소에 녹아들어 더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어 준 것 같다.



박찬욱 감독님의 다음 작품은 어떤 모습으로 찾아오게 될까? 당분간은 절대 헤어질 수 없는 사람의 ‘헤어질 결심’이 오래도록 떠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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