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레디움, 바이올리니스트 김다미
1922년 일제 강점기 조선의 토지와 자원 수탈을 위해 대전광역시 인동에 지어진 동양척식회사 대전지점이 얼마 전 '헤레디움'이라는 이름의 문화예술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눈이 부시게 햇빛이 좋았던 4월의 어느 날, 이곳 헤레디움에서 바이올리니스트 김다미 님의 연주가 있다고 해서 방문하게 됐다.
미술관에 근무하면서 미술관과 연계된 클래식 및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수년째 진행해왔다. 하지만 이렇게 다른 문화공간에서 오롯이 공연만을 위해 시간을 내어본 것이 너무나 오랜만이라 조금은 설레는 마음도 들었다.
사실 바이올리니스트 김다미 연주자의 이름을 보자마자 살짝 놀랐다. 좋은 연주자가 오셔서 놀란 점도 있지만 나를 놀라게 한 이유가 그것은 아니었다. 정말 개인적인 이유가 있었다. 수년 전 이성적으로 만났던 분 중 바이올리니스트가 있었는데, 그분이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국내 연주자가 '김다미'님이라고 말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1. 로베르트 슈만 : 세 개의 로망스
Robert Schumann : Three Romances for Violin and Piano, Op.94
Ⅰ. Nicht schnell
Ⅱ. Einfach, inning
2. 요하네스 브람스 : 바이올린 소나타 제1번
Ⅰ. Vivace ma non troppo
Ⅱ. Adagio
Ⅲ. Allegro molto Moderato
3. 안토니오 비탈리 : 샤콘느
T.A. Vitali : Chaconne in g minor for Violin and Piano
프로그램은 위와 같았다. 첫 번째 곡인 슈만의 세 개의 로망스를 들었을 때 김다미 연주자를 가장 좋아한다는 그분이 더 강하게 떠올랐다. 오래 만난 것도 아니었고, 그분에 대한 기억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연주를 듣는 그 시간만큼은 마치 인화실 암흑 속 또렷해져 가는 사진처럼, 내 기억도 잠시나마 분명 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로맨틱하지만 슈만 특유의 너무 밝지만은 않은 느낌 때문에 더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 이루어지지 못한 인연을 자꾸만 그 연주에 대입하게 됐다. 연주는 굉장히 섬세하고 여리 여리한 것 같지만 그 안에 심지가 단단한 느낌을 받았다.
첫 번째 연주가 끝나고 다음 연주곡인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1번에 대해 연주자께서 간단하게 설명을 해주셨다. '비의 소나타'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곡인데, 곡이 조금 길 수도 있지만 똑똑 비가 떨어지는 것 같은 소리의 변화를 느끼면서 감상하면 좋다는 포인트를 알려주셔서 참 좋았다. 중간에는 장송곡(망자의 장례식 현장에서 매장 등의 과정을 거치며 마지막 이별을 하는 도중에 연주되는 곡)과 같은 느낌도 느낄 수 있다고 간단히 설명을 해주셨다.
곡은 실제로 톡톡 비가 떨어지는 소리, 비 구름을 몰고 오며 어두운 배경으로 비가 쏟아지다가 잠시 갠 모습, 그러다 이내 다시 비가 떨어지는 것과 같이 변화무쌍한 느낌을 주었다. 또 중간에는 정말 레퀴엠처럼 들리는 부분이 있었는데, 이 곡을 들으니 전날 유명을 달리한 가수 ‘문빈’이 생각나며 더 깊이 음악에 빠져들게 됐다.
나는 아이돌 가수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아이돌은 멤버구성도 많고 더군다나 내 관심분야도 아니기에 더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문빈'이라는 가수에 대해서는 유독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내 여동생이 고인의 완전 팬이었기 때문이다. 그룹 아스트로에는 잘생김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차은우가 있었는데, 내 동생은 차은우보다 문빈을 더 좋아했다. 아이돌에 크게 관심 없는 나에게 동생은 허구한 날 문빈의 춤 영상, 멋진 사진들을 보여주기 일쑤였다. 영상링크를 보내주며 이렇게 멋있는 사람은 더 잘되야 한다며, 링크 꼭 확인해 보라고 몇 번을 말했는지 모른다. 동생은 작년 부산에서 열리는 워터밤 페스티벌에도 참석했는데 가장 큰 목적 중 하나는 문빈을 가까이서 보는 것이었다. 앞줄에서 찍은 춤 영상은 정말 관심이라곤 하나도 없는 나에게조차 멋있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런 문빈이 하루 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내가 직접적으로 좋아하는 가수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비록 타의였긴 했지만 고인의 모습을 적지 않게 접한 나에게 그의 죽음은 정말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런 마음상태로 마주한 브람스의 '비의 소나타'는 깊은 애도와 함께 팬 주변에 서있던 나에게도 마지막 이별의 시간을 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연주곡 안에서 비가 추적추적 떨어져 눈물조차 가릴 것 같은 날씨에, 늘 해맑은 미소를 보여주었던 고인이 부디 좋은 곳에서 평안하길 진심으로 기원했다. 이 곡을 그날, 그 분위기에서 마주한 것은 마치 운명과도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연주자께서 조금 길 수도 있다고 설명해 주신 소나타가 나에게는 정말 순식간에 지나갔다.
마지막 곡은 안토니오 비탈리의 샤콘느였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악'이라는 홍보문구와는 다르게 그날의 나에게는 오히려 두 번째 브람스의 곡이 더 슬프게 들렸고, 샤콘느는 뭔가 정리를 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헤레디움에서 김다미 바이올리니스트의 공연을 만난 것, 슈만의 곡을 들으며 지나간 인연을 떠올렸던 것,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1번을 들으며 동생의 최애 아이돌 문빈을 떠올렸던 것. 우연치고는 절묘한 만남이다. 나에게 일련의 경험이 없었더라면 '와, 좋은 연주구나!'라는 정도로 끝날수도 있었던 어느 날의 연주가 지나간 경험, 그날의 분위기와 만나 특별하게 마음에 남게 되었다.
오직 나만 알 수 있는 특별한 감정과 경험, 자주 간직하고 싶은 그날의 분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