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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Aug 02. 2017

이혼한여자. 1

단편 소설 '이혼한 여자'


1.

뽀득 뽀득 뽀드득

눈 밟는 소리가 어쩜 이리도 거슬릴까? 무당이 있는 곳은 아직도 멀었는데 뽀드득거리는 이 소리를 도대체 얼마나 더 들으며 걸어가야한단 말인가. 어릴적 밟던 눈은 사그락거렸지만 돼지가 되어버린 내 몸뚱이가 밟는 눈은 눈도 힘에 겨운듯 내 발이 닿기도 전에 눌러앉으며 뽀득뽀득 무거은 소리를 낸다.


뽀드득 뽀드득.

그소리는 고장난 샤시창문의 끼이익 거리는 소리와 흡사했다.

뽀드득 뽀드득 끼이익 끼이익

무당의 집은 택시기사가 내려준 길에서도 한참을 걸어 들어가야 했다.

세상천지가 눈밭이로구나. 하얗고 고와야 할 눈밭이 눈이 부셔 성가셨다. 눈은 왜 검정색이나 흑색이 아니고 하얘서 눈이 부시게 만들까. 자꾸 찡그려져서 얼굴에 주름이라도 잡힐라.

이 먼길을 왔는데 제대로 맞추지 못하면 복채고 뭐고 없다. 시연이 말로는 무당이 된 가원이가 시어머니 얘기도 꺼내지 않았는데 술술 얘기하더란다. 시어머니가 집안을 망치고 있다는 것이 잘 맞춘다는 것이었다. 며느리가 시어머니 흉 보고픈 심리를 이용한것일 텐데 말이다.


이런 들판 끝에 집을 지어놓다니...

이 먼 길을 걸어들어올 손님이 있다는 말인가. 사람들이 찾아 들어가기는 하는 건지.

시연이가 내가 급해보이니 가보라고 했지만 일단 잘 맞춘다니 얘기는 들어보자 생각했다. 대학 후배들이기도 하고 도와주자 하는 마음도 있었다. 이대 나온 여자가 무당하는 것도 재밌는 일이다. 집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미 코트와 신발은 눈범벅이 되어 눈송이들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모직코트에 엉겨붙은 눈덩어리들이 또 성가신다.

저 빨간 깃발이 무당집이구나. 무당이 된 가원이의 집. 깃발은 긴 대나무 끝에서 바람이 시키는대로 좌우로 춤을 추고 있었다.


 남편은 한달이 지나도 두달이 지나도 집에 오지 않았다. 애를 낳았는데도, 아주 잘생긴 아들을 낳았는데도 집에 오지 않았다.

회사가 멀었다. 신혼살림을 시작한 영등포에서 회사가 있는 일산까지는 멀다면 먼 길이다. 그래도 친정식구들이 모두 있는 영등포를 떠나 일산에 집을 구하자는 말은 둘다 하지 않았다. 지금은 모든 걸 후회하고 있지만, 특히 이사 가지 않은 걸 많이 후회한다. 남편은 프로젝트가 걸리면 밤샘일도 많다고 아예 집에 오지 않았다. 정말 프로젝트 일 때문인지 굳이 묻지 않았다. 광고일을 같이 해봤지만 밤새고 술도 마실 일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일일이 캐묻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물어봐야 했었다. 그 하루가 이틀이 되고 사흘이 되고 일주일이 되고 한달이 되어 가고 있었다. 남편이 들어오는 날을 기다리며 휑한 거실 창문에서 지나가는 사람만 쳐다 보고 있었다. 버스정류장이 내려다보이는 아파트거실 창문 밖 사람들은 분주하구나.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약속하고 만나겠지. 나의 일상에서 나는 사라지고 창밖의 행인들만 등장한다. 그들이 누굴 만나러 가는지 생각하다 보면 시간이 금방간다. 밥할 시간은 또 오고 차려놓은 밥을 먹어 줄 남편은 오지 않는다. 그래도 밥은 먹어야지. 먹어야지.

남편이 다른 여자와 동거하는 줄도 모르고 밥만 열심히 먹었다.

남편은 전화도 잘 받지 않았다. 가끔 집에 오면 내가 해 주는 밥상에서 늘 반찬투정만 했다.

밥상에 차려진 콩나물과 멸치볶음, 연근조림, 콩자반 거기에 갈비찜을 해놔도 매번 젓가락 두 개만 움직이고 음식은 입에 들어가지 않는다.

콩나물을 들었다가 놨다가 콩자반에 깨소금을 뿌렸는데 그속에서 뭘 찾는지 그릇바닥만 긁어댔다. 갈비찜도 뒤적이며 감자, 당근을 집어들더니 그대로 내려놓기를 여러번. 고기 한 덩이를 집어들기에 그릇으로 가져가나 싶었는데 냄새를 맡더니 그대로 그릇에 던져버리며 소리친다.

"이거 무슨 냄새야! "

갈비찜냄새일텐데 무슨 냄새냐는 질문에 답을 찾지 못하고 멀뚱하니 쳐다보고있었다. 맛을 보라고 고기 한덩어리를 밥위에 얹어줬더니 자리에서 그만 벌떡 일어나버리는 게 아닌가. 아침부터 장보고 준비했는데 남편은 매번 나의 음식을 먹지 않았다.

"안먹어. 너나 먹어."

그래 나나 먹자. 요리솜씨 좋은 엄마가 조금 거들어 주셔서 간을 맞추고 맛있다고 했던 갈비찜인데...

엄마의 음식이 내동댕이 쳐지는 거 같아 밥위에 얹어진 고기를 내가 얼른 먹어버렸다.

"돼지같이 잘도 먹네."

남편의 핀잔은 이제 뭐 아무렇지도 않았다.

단지 맛있는 음식들이 아까워 꾸역꾸역 먹고 또 먹었다. 그렇게 먹으면 배가 부르고 잠이 왔고 잠을 자면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편안했다.

많은 것들이 머릿속을 떠돌면 잠이 왔다.


"가원아"

깃발이 꽂힌 집앞에서 철대문을 두드리며 후배를 불러본다. 시연이 소개로 알게 된 가원이를 많이 만나지는 않았다. 싹싹하고 잘 따르는 후배여서 가끔 밥도 사주며 수다떨던 후배였는데. 아프다는 말만 듣고 한동안 연락이 없이 지내다가 이렇게 얼굴 대하는 것도 어색하다. 미닫이 문이 열리고 가원이가 나와서 반겨준다. 그래야지 암만. 이 먼 눈밭길을 헤치고 왔으면 반겨주는 게 당연하지. 그것도 선배가 후배를 위해 큰 걸음 한 것 아닌가.

가원이는 방으로 안내하더니 얼음장처럼 차가워진 내 손을 잡아끌고 따뜻한 아랫목으로 앉혔다. 내가 온다고 해서 장작불 잘 지펴놔서 따뜻하다고 했다. 따뜻한 정도가 아니라 쩔쩔 끓어서 방석을 깔고 앉아야 할 정도였다.

가원이는 자신에게 있던 그동안의 일들을 간단하게 말해줬다. 신내림을 받고 신당을 차린 게 얼마 안됐다고 했다. 시연이는 아직 사람들이 잘 모르고 외진 곳에 있어서 손님들은 많이 없다고 했다. 좀 잘 되면 주택가에 신당을 차려놓고 할거라는데 주택가에 어찌 차리려고 자신있게 말하는지. 그동안 신병으로 많이 아프다고 했었는데 얼굴빛이 좋아보였다. 표정도 밝다. 신내림을 받아서인가. 가원이가 모시는 신이 얼마나 정확한 지는 들어보아야 한다.

자리에 앉자 작은 탁자 앞에서 묻지도 않은 얘기들을 시작한다.

"집터가 안좋아. 자리를 잘못 잡았어. 사람을 내쫓는 집이야. 그러니까 남편이 안 들어오는 거야. 그래도 언니가 오래 살고 있는 건 언니의 쎈 기가 눌러 잡고 있어서 그래."

그 말은 맞았다. 내가 이사 오기 전 아파트 전세 만기 2년을 채우지 못하고 신축입주 4년동안 세입자가 다섯번이나 바뀌었다고 했다. 그걸 알았다면 이사하지 않았을 테지만 친정집도 가깝고 새 아파트인데다가 전세구하기가 쉽지 않아 나오자마자 바로 계약해버렸다.


"남편은 안들어와. 기다리지 마."

안들어올거라는 건 나도 알고 있었지만 그걸 가원이 입을 통해서 듣고 싶지 않았다.

"그 말 들으려고 온 거 아니야!"

눈에 힘을 주며 말하는 나를 보자 가원이는 고개를 떨구며 부채를 한 번 펼친다. 부채를 살살 흔들더니 얼굴위로 올리다가 아래로 내린다. 그러자 가원이 왼쪽눈과 마주친다. 내 눈을 보며 한 마디 던진다.

"마지막 방법이 있어."

내가 듣고 싶던 말을 가원이가 해주고 있다. 엄마를 위해서라도 이혼만은 하고 싶지 않았다. 이혼이란 내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남편이 어떻게 살든 상관없다. 남편이 이혼만 요구하지 않는다면 뭐든지 견뎌낼 수 있다. 가원이가 말하는 방법이 뭐든 꼭 될 것 같았다.


"그게 뭔데?"

"내가 부적을 써 줄게. 굿도 한번 하고..."

가원이 대답은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굿을 한 번 하라는 것이었다. 이런 미신을 믿고 여기까지 온 내가 잘못이지. 겨우 굿하란 소리 듣자고 이 먼 길을 왔던가. 그런 걸 한다고 남편이 돌아온단 말인가.

“여우꼬리털이 있어. 언니. 그것도 사서 몸에 지니고 다녀. 내가 구해줄게. 얼마 안해.”

여우꼬리털과 굿을 하란 얘기다. 얼마 안한다는 여우꼬리털은 구하기가 어려운데 겨우 구해놓은 게 있다며 이십만원이라고 말한다. 굿은 원래 오백만원인데 아는 언니니까 삼백만원에 해주겠다고 하네. 이런 것까지 해야할까. 여기까지 들어온 내가 미친게지.

그래도 굿 한번으로 남편마음이 돌아온다면. 이혼만을 요구하는 그 맘이라도 돌아서지 않을까. 그러기만 한다면 잘생긴 우리아들 아빠없다는 소리 듣지 않을텐데... 돌 지나서 이제 걸음마 뗐는데 아빠가 없는 우리 아들 불쌍해서 어쩔까. 그래. 돈을 마련해보자. 남편이 생활비를 주지 않은 지 반년도 넘었다. 모아 둔 돈도 바닥이다. 여기에 돈이 들어가면 마지막다.


가원이의 굿만 믿어보자.

엄마한테 굿을 한단 말을 꺼내놓고 한참을 기다렸다. 굿하는 비용으로 마지막 돈이 들어가면 생활비가 빠듯해서 손을 벌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엄마는 아무 말도 없이 입술을 다문채 천장만 바라보셨다. 그리고 다시 내 얼굴을 쳐다보시더니 머리를 쓰다듬으신다. 이내 눈시울이 붉어지시더니 억지로 눈물을 참으신다.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굿 해보면 괜찮을거 같니? 그러면 해봐야지. 엄마가 아버지 몰래 돈 줄테니까 얘기하지 말구."


징징징

아직도 내 심장을 울리고 있는 징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다음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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