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찌르고 간 벼룩의 경고

이옥의 「조부(蚤賦)」와 「후조부(後蚤賦)」

by bbj

지구상 생명체들의 대다수는 유전적으로 크게 차이가 없다고 한다. 바나나는 50%, 초파리는 60% 이상 인간과 일치한다고 하며, 유인원으로 오면 거의 99%에 가까운 일치율을 자랑한다. 생명체들이 유사한 유전적 토대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든다. 어쩌면 먼 훗날 인간이 바나나, 초파리와 교감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도 해 본다.


과학 장비도 지식도 없던 옛날 사람들 중 일부는 이미 그걸 알았거나 상상했던 걸까. 조선 후기 벼룩에 대한 이옥 선생의 글에서 그런 느낌을 받는다.


글은 총 두 편이다. 첫 번째 글은 ‘경금자’라는 사람이 어느날 자기 몸을 파고 드는 벼룩을 잡은 것으로 시작한다. 그는 벼룩이 이익을 탐하다 화를 초래했다고 판단해, 가르침을 주기 위해 그 등짝을 쳤다. 그 조그만 벼룩을 잡기도 힘든데 가르치겠다고 등짝을 쳤다는 게 우습다. 벼룩의 마음보를 알아보려 손톱으로 꾹 눌렀더니, 창자는 보이지 않고 한떨기 복사꽃 같은 피가 보였다.


두 번째 글은 꿈 이야기다. 그렇게 벼룩 한 마리를 잡고 나서 잠들었는데 꿈에 도사가 나타나, 사실은 공부하다 졸고 있는 걸 깨우쳐 주려고 벼룩으로 변신해 찌른 것이라 알려준다. 서울 귀족 자제들은 희망이 안 보여 내버려두었고 너는 그나마 희망이 보여 찔러주었건만. 책망하다니 다시는 오지 않겠다 으름장을 놓는다. 경금자는 자신의 멍청함을 앞으로도 찔러달라며 사과한다.


귀찮고 피 빨아먹는 벼룩으로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게 엉뚱하고 귀엽다. 근데 단순한 유머는 아닌 것 같다. 인간의 입장으로 사물의 유불리를 판단하지만 사실 만물은 각자 생의 논리를 가지고 있고. 생각에 따라 해악도 유리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의인화나 꿈 이야기는 어쩌면 흔하지만. 하찮고 징그러운 벌레를 데려와서 인간을 가르칠 수 있음을 표현하여 신선한 충격을 준다.


스쳐 지나간, 혹은 벼룩이라 생각했던 존재나 인연들도 어쩌면 날 한번 찔러 가르치고 지나간 건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된다.





한국고전문학 - 이옥의 「조부(蚤賦)」와 「후조부(後蚤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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