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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늘보 Nov 22. 2022

나무늘보가 좋은 이유

나무늘보는 나무에 하루 종일 매달려 붙여진 ‘나무 느림보를 뜻하는 ‘늘보 합성어라고 한다. 영화 '주토피아' 보았는가. 그렇다면 나무늘보가 단순 느리다는 말보단 느려 터진 이 더 적절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화 주토피아


나무늘보 캐릭터로 나오는 ‘플래시’는 미국의 관공서 DMV의 직원으로 나오는데 도장 한번, 스테이플러 한번 찍는데 한참이 걸린다.

어디 그뿐 인가.

타자 치는 모습은 처음 타자기를 접한 우리네 할머니들의 독수리 타법이다. 행여나 조크라도 날아오면 하던 업무는 올스탑 되는데 정말 환장할 노릇이다. 표정 하나 변화하는 데는 세월아 네월 아라 이건 뭐 슬로 모션이 따로 없다. 행정처리가 느려 터진 미국의 공무원들의 업무 속도를 풍자한 것이라고 한다.

영화 주토피아

미국 DMV(Department of Motor Vehicles)에서의 경험


미국 유학시절 운전면허증을 따기 위해 DMV를 방문한 첫날. 한국의 업무처리에 익숙했던 당시의 나는 한 시간이면 충분하겠지 싶어 공강 시간을 쪼개서 왔건만 이들의 업무 속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번호표를 뽑고 보니 앞에 대기자가  10명 이내였다.  금방 일을 볼 거라 생각해 기다렸건만 문제는 대기자 수가 아니라 그들의 업무 속도였다. (물론 업무량도 상당하겠지만) 전혀 급할 것 없는 공무원들의 업무 속도로 인해 나의 오후 수업은 지각이 아닌 결석으로 이어졌고, 나의 성적에도 타격을 입혔다. 처음에는 짜증이 났고 ‘여기는 공무원 일처리가 이리 느려 터져서 어떻게 발전을 했을까’ 나라 탓까지 하곤 했다. 미국 공무원 문화에 대한 나의 무지인 줄도 모르고 말이다.

영화 주토피아. DMV에서 일 보고 나오니 밤이 된 장면 (영화적 장치가 아닌 실화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운전면허 시험에 몇 차례 떨어지며 DMV방문이 잦아졌다. 성격 급한 이 토종 한국인은 차례 기다리는데 한두 시간, 처리되는데 한두 시간 총합 서너 시간은 넉넉히 잡고 와야 한단 걸 자연스레 습득하면서 이 속도에 적응해나간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은 순간이었다. 나는 플래시를 보며 그때의 기억이 생각나 킥킥 웃었고 이 장면은 공식 트레일러로 나올 정도로 많은 이들에게 큰 웃음을 주었다. 이렇게 느려 터진 플래시의 업무 속도로 수업까지 쨌던 내가 지금 와서 나무늘보가 끌리는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나무늘보는 실은 환경에 적응을 잘한 동물이다.  

움직임이 느린 것은 근육량이 적기 때문이고, 그 덕에 에너지 소모량도 적다. 너무 안 움직이는 탓에 역으로 의태가 되어 생각보다 천적도 많지 않다. 움직임이 더딘 탓에 유일하게 털에 녹조류가 서식하는 나무늘보는 몸 전체가 녹색을 띠는 덕에 나뭇잎 색깔과 구별이 잘 되지 않아 천적들의 공격을 피할 수 있다.

                                                                                                

나무늘보는 의외로 잠이 많지 않다.

하루 종일 잘거라 생각했는데 하루 8-10시간 정도 잔다고 한다. 이는 인간의 평균 지향되는 수면 정도가 아닌가? 18시간 이상 자는 코알라에 비해 적은 편이다.


느리다고 절대 우습게 봐서는 안 되는 동물이다.

하루 종일 발톱을 이용해서 나무에 매달려 있는 탓에 발톱이 상당히 흉악하게 진화했다. 코끼리 상아와 비슷한 형태로 보이는데 이게 구부러져 매우 굵고 단단하며 뾰족하기 까지 한다. 인간이나 천적이 다가오면 발톱으로 공격을 막아낼 수 있을 정도로 나름의 공격성을 내재하여 생존할 수 있다고 한다.    

                  



나무늘보에 대해 찾아보면서 새롭게 발견한 정보들이다. 대중매체에서 묘사된 나무늘보는 느리다 못해 보는 사람  터지게 하는 무능하고 게으른 캐릭터로 그려져 왔다.   하는 동물이라고 매체에 그려진 대로 편견을 갖게 하는 것은 너무 억울한 일이지 않나?  그래서인지 나는 나무늘보의 억울함을 해명하고 싶다. 왠지 그들 성격에 억울함을 느끼지도 토로하지도 않겠지만. 그저 그러려니  ? 같지만 말이다. 


만일 나무늘보가 치타가 부러워서 자신의 신체를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에너지를 소모했다면 어땠을까? 

단언컨대 지구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생물체는 타고난 고유한 특성이 있다. 나무늘보는 그저 근육량이 적고 에너지 소모량이 적게 타고난 동물이다. 그들은 치타와 같은 민첩함을 갖지 못했을 뿐이지 타고난 에너지에 맞게 움직임을 최소화한다.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남기 위한 나름의 방법이다. 또한 다른 민첩하고 강한 맹수에 의해 쉬이 잡아 먹히지도, 공격에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로 무능하지도 않다. 느리기에 녹조류가 털에 자랄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위장술, 생존술을 익히지 않았는가. 그 어떤 동물의 세계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나무늘보만의 고유한 특성이자 자원이다.


어쩌면 나무늘보가 게으름의 대상으로 풍자되는 것은 인간이 만들어 낸 강박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부지런해야 한다는 강박 말이다.


단시간에 초고속 성장을 이룬 국가이자 세계에서 인터넷 속도와 일처리가 빠른 국가.  한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이라면 빠릿빠릿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을 것이다. 주어진 시간 내에 최대한 많은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노동자를 닦달하고 비난한다. 효율은 있을지 언정 노동자가 살기에는 버거운 사회다. 주토피아에 나오는 나무늘보 "플래시"와 미국 DMV 공무원은 어떤가. 일처리가 답답하긴 해도 묵묵히 그들의 속도에 맞춰 일한다. 서비스를 받는 사람도 그들이 느리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러려니 한다. 컴플레인 한번 없이 말이다. 어쩌면 노동자를 존중하는 성숙한 사회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나에게 있어 나무늘보는 자신의 자원과 한계를 인지하고 그에 맞게 살아가는 지혜로운 동물이다. 느림의 미약과 여유를 일깨워주는 지구상에 꼭 필요한 귀여운 생명체이다. 모든 생명체가 살아감에는 이유가 있듯이 나무늘보의 존재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였으면 좋겠다.


느려도 괜찮으니, 네가 가진 고유한 장점을 보라고


나는 사심을 담아 나무늘보가 지금처럼 느리고 여유롭게 이 지구상에 살아남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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