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늘보 Jul 05. 2023

나는 식물킬러였다(2)

식물킬러에서 식물힐러로

‘다시는 식물을 들이지 않으리라’

의도적 살생 이후 다짐한 바이다. 학업과 육아를 병행하며 나 스스로를 돌아볼 겨를도 없이 달리는 삶이 이어졌다. 모든 것이 버거웠던 나는 ‘아이를 제외한 그 어떤 것도 키우지 않겠어!’ 선포했다.


아이와 일식집에서 점심을 먹던 어느 주일 오후. 뜬금없이 화원에 가고 싶었다.

“하윤아 우리 집 앞 식물연구소 가볼까?

“응, 좋아”

우리는 곧장 화원으로 향했다. 피톤치드 쐬며 소화나 시켜야지 싶었다. 그 넓고 푸르른 장소에 발을 디디는 순간, 내 다짐은 와르르 무너졌다. 내 몸의 세포가 외치는 소리를 들어버린 것이다.


이건 네가 거부할 수 없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야

내 유전자에 깊이 박혀 저항할 수 없는 강력한 마력에 빨려 들어가는듯 했다. 나의 외할아버지에서 엄마, 엄마로부터 나에게 내려와 내 몸속에 내재된 식물유전자가 이리 강할 줄이야. 평생 식물 곁에 머물어야 함을 인정하는 순간, 킬러였던 내 삶을 청산해야 했다.

흙장난 식물연구소의 내부


“사장님, 어떤 식물이 키우기 쉬울까요?
베테랑 사장님은 답정녀 손님을 잘 다루시는 분이었다.
“일단 몇 개 골라보시고 물어보세요!”


한참을 돌아보다 멈춘 곳은 우산처럼 시원하게 펼쳐있는 식물 앞. 세네 장의 큰 잎은 제각각 다양한 모양을 이루고 있었다. 한 잎은 숲에서 토토로가 쓸 법한 나뭇잎 우산 같았고, 나머지 잎들은 각기 한두 갈래가 쩍, 여려 갈래로 쩌-억 쩌-억 갈라져 있는 아이였다. 같은 종에서 다양한 잎사귀를 뽐내는 녀석이 우리네 모습 같았다.


“엄마! 여기 잎이 하나 생겼어!”

“우와! 진짜네? 눈떠보니 잎이 생겨났네”

처음 집에 왔을 때 세네 장이던 잎이 어느덧 여섯이다. 일어나 보면 잎이 하나씩 마법처럼 뿅 나타나는 게 그렇게 신기하고 기특할 수 없다. 어제만 해도 꼬불거리던 녹색 번데기 같던 녀석이 몸을 쫙 피며 기세 등등 하다. 새잎이 여러 갈래로 찢어져 나오는 이유는 뭘까? 난생처음 식물정보를 찾아보았다.


‘몬스테라가 여러 갈래로 찢어진 잎을 가지게 된 것은 풍압에 찢어지지 않기 위한 자연선택이다. 원산지인 열대 아메리카에서는 폭우가 쏟아지고 비바람이 잦기에, 환경에 잘 견디기 위해 갈대처럼 뻣뻣하지 않고 비바람에 유연하게 흔들려야 한다. 잎이 갈라져 있는 돌연변이는 상대적으로 개체 수를 늘리는 일에 확실히 유리하다’


식물킬러 집사로부터 살아남기 위해서였을까. 우리 집에 들어온 가여운 녀석은 갈라진 잎만을 생성해 냈다. 환경에 적응하려는 몸부림이 기특하고 사랑스럽다. 나는 더 이상 식물킬러가 아니다. 내 몸에 거부할 수 없는 식물힐러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인데…, 그 유전자의 신비가 무서우면서도 반갑다. 식물과 함께하는 앞으로의 날들은 얼마나 더 멋질까? 상상하다 최근에 들인 식물의 누런 잎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런, 물 주는 걸 또 잊었네? 식물킬러와 식물힐러는 한 끗 차이구나!'


처음 집에 들어온 몬스테라와 반년 후의 모습


매거진의 이전글 나무늘보가 좋은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