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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늘보 Jul 05. 2023

나는 식물킬러였다(1)

나는 식물 킬러다. 최초의 기억이 있던 어릴 적을 떠올려보면, 줄곧 초록덩어리와 함께였다. 엄마는 식물을 좋아하신다. 유년기를 넓은 정원이 있는 주택에서 자라서인지, 식물을 좋아하는 그녀 아버지를 닮아서 인지. 혹은 둘 다 인지는 모르겠으나, 엄마는 결혼 후 도심의 아파트에 살면서도 초록 삶을 고수했다.


6살 무렵, 처음 베란다가 있는 아파트에 살 때였다. 식물은 베란다에 있었기에 관심도 불만도 없었다. 식물에 눈길을 줄 때라 하면 놀이터에서 소꿉놀이하는 순간이 유일했을 터다. 놀이터 주변에 피어있는 붉고 푸르른 식물을 죄다 따서 벽돌 위에 올리면, 갓 따온 싱싱한 푸른 잎은 그릇이 되고, 붉고 노르스름한 꽃잎은 밥이 되는 놀이였다. 그중 최고는 벽돌 위 초록잎을 돌팔매질하며 초록물을 얻어내는 일이었는데, 빻고 찢는 이 행위가 그렇게 재미날 수가 없었다. 식물 빻기에 정신이 팔려 해의 자리에 달이 떠오를 때 귀가해 엄마의 애를 태웠다.


하루는 학원도 빼먹고 식물 빻기에 빠진 탓에 쫓겨 난 날이었다. 깜깜한 현관 앞 계단에 앉아 등불을 켰다 껐다를 반복하다, 다짐한 듯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터벅터벅 아지트라 정해둔 놀이터에 멈춰서는, 달빛 하나가 유일하게 빛나던 야밤에 또 신명 나게 식물을 빻아댔다.

‘어차피 쫓겨난 김에, 조금만 더(몰래) 놀고 오자.’ 어린 나의 합리적 결정이었으나, 유희를 자제할 능력은 없었다. 그 ‘조금’은 한참이 되었고 엄마는 쫓아낸 나를 찾으러 한밤중에 온 동네를 뒤졌다. 그녀의 화가 공포로 변했던 밤이었을 테다. 엄마가 된 지금 그 기억을 떠올리면 웃음과 동시에 죄송스러운 마음이 든다.


고등학생이 되어 이사 간 곳은 40평대의 거실 베란다를 튼 확장식 아파트였다. 언니는 대학생이 되어 서울로 떠났고 나와 동생도 꽤 커서 엄마의 손길을 떠나가는 시점, 엄마는 본격적인 식집사가 되었다. 거실 유리창 앞에 푸르른 아이들이 일렬로 줄을 섰다. 가끔 지나가며 보니 엄마가 주둥이가 긴 파란 물뿌리개로 ‘콸콸콸’ 식물에 물을 주셨다. 환청인가 싶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식물들에게 속삭이는 소리도 들렸다.


어느 날, 어쩌다 본 거실풍경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한 줄이던 초록이들이 어느덧 두 줄, 세 줄 기차를 만들며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커튼봉에 걸려있던 아이비 덩굴들은 라푼젤처럼 초록 머리카락을 치렁치렁 풀어헤치곤 바닥을 휘집고 다녔다. 불만스러웠다. 우리 집은 유일하게 거실에만 에어컨이 있는데, 초록이들로 우리의 수면 공간이 비좁아졌기 때문이다. 더위를 많이 타는 아빠, 동생과 나는 폭염이 시작될 때면 암묵적으로 형성하던 팸이 있다. 일명 ‘에어컨팸’으로, 거실 에어컨 앞 요를 깔고 밤새 에어컨을 추울 정도로 틀고 자는 구성원을 말한다. 에어컨 바람과 세금 폭탄을 혐오하는 엄마의 눈을 피해 비밀리에 형성된, 한마디로 비밀 단체라고 생각하면 된다.


"에어컨 끄고 자라."

엄마는 자기 전 루틴처럼 말씀하셨다.

“에이~ 당연하지!”

우리는 이구동성 대답만 하곤 에어컨을 주야장천 이가 시릴정도로 틀었다. 추워지면 이불을 돌돌 말아 쾌적한 밤을 났다. 상대적으로 추위를 많이 타는 언니가 밤에 합류해서는 새벽에 방으로 사라질 정도였다. 어찌 됐건 에어컨팸 인원은 최소 세 명에서 네 명인데, 더위도 안타면서 거실을 떡하니 차지하는 초록이들이 얄미웠다.

“엄마, 초록이들 때문에 우리 집 거실이 반으로 줄었어. 제발 그만 데려와!” 하며 말려보았고, 물 주느라 한 시간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엄마를 보며 혀를 내찼다.

“엄마! 이 많은 애들 물주는 거 힘들지도 않아?”

엄마는 끄덕도 안 했기에 나랑 언니는 엄마 욕을 하며 ‘나중에 독립하면 엄마처럼 저 짓은 안 해야지’ 다짐했다.


결혼하고 들어간 첫 집은 오래된 아파트였다. 주방과 욕실수리를 싹 하며 인테리어에 관심을 두던 시기다. 수많은 인테리어 사진을 저장해 놓고 인스타 감성을 추구하다 보니 식물이 필수적이었다. 이미 몇 차례 작은 식물을 죽인 전적이 있는지라, 남편에게 둘러댈 그럴싸한 구실도 만들어냈다.

“비염이 심한 첫째와 곧 태어날 아기를 위해서 집에 공기정화 식물은 필수지!”

그렇게 공기정화 식물 1위인 ‘아레카야자’를 장만했다.

아레카야자

십만 원이 훌쩍 넘는 금액만큼 곧게 뻗은 초록 잎이 아름다웠고, “야자”라는 이름 따라 열대지방 느낌을 주는 자태가 집안을 한껏 분위기 있게 해 주었다. 물론 단점도 있었다. 거대한 식물이 좁은 거실에 놓인지라 녀석의 두세 가닥 잎이 우측 티비 모서리를 가렸다.

'거슬리지만 예쁘니 봐준다!'

그렇게 녀석을 애지중지하다 둘째가 세상에 나왔다. 아기와 식물은 공생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나는 3시간 텀 밤낮수유로 지쳐갔고, 코로나로 첫째마저 가정보육을 시키니 마음의 여유가 사라졌다. 마음이 옹졸해지면 질수록 녀석이 차지하는 거실이 비좁게 느껴지면서 가슴이 턱턱 막혔다. 아기는 기기 시작하면서 식물의 흙을 퍼먹었다. 그러곤 맛이 별론지 고사리 같은 손으로 흙을 온 사방에 뿌려댔다. 그 저지래와 함께 첫째의 티비 시청이 늘어났고, 결국 난 티비를 가리는 이 녀석이 꼴 보기 싫어졌다.


그때쯤이었을까.

나는 이미 결정을 내렸던 것 같다. 죽었으면 좋겠다고, 아니 죽이기로 말이다. 이 거대하고 걸리적거리는 녀석에게 무언의 사형선고가 내려지던 찰나, 식물원 사장님의 당부가 생각났다.

“직사광선을 직접적으로 쐬면 잎이 노랗게 되니 강한 빛은 피해 주세요.”

애석하게도 그 당부는 역으로 작용했다. 베란다로 옮겨진 그 녀석의 푸른 잎은 뜨거운 태양 앞에 누렇게 익어가다 갈색으로 타들어갔고, 그렇게 운명을 다했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서서히. 그게 언제인지도 모르게 말이다.

 


                                 2화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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