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시간이 한꺼번에 흐르는 곳
여행 이야기를 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질문이 있다. “어디가 제일 좋았어?” 그럴 때마다 나는 낯선 지명을 떠올린다. 어디냐고 되물을 만큼 유명하지 않은 작은 마을이거나 ”거기 ~밖에 없지 않아?”라는 답이 돌아오는 한 시간짜리 도시를.
아유타야는 후자다. 방콕에서 기차로 2시간 들어가야 하는데, 많은 한국인들이 반나절짜리 투어로 메인 유적지만 둘러보고 돌아간다. 400년간 번성했던 아유타야 왕조가 도심 한복판에 세운 어마어마한 규모의 왕궁과 사원, 정확히 말하면 그 흔적들. 채 무너지지 않은 붉은 벽돌의 건축물과 미얀마에 의해 머리가 잘린 불상들은 기이한 공기를 뿜어낸다. 과거의 영화와 몰락이 공존하며 만들어내는 쓸쓸함인지도 모르겠다.
그 모습을 찰칵찰칵 카메라에 담아 방콕으로 돌아간다면, 근사한 유적지 하나가 마음에 새겨질 것이다. 그러나 그곳을 나와야만 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차오프라야 강을 떠다니며 선상 식당에서 식사를 즐기는 노부부, 쭉 늘어선 가게에서 경쟁적으로 만들어내는 색색의 꿀타래, 그걸 우물거리며 길을 걷는 아유타야 사람들.
저녁엔 과일이 먹고 싶어 툭툭을 타고 ‘마켓’에 갔다. 툭툭 기사는 한창 파장 중인 시장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매대를 정리하는 사람들에게서는 유적지에서 맡지 못한 생활의 냄새가 났다. 왕조의 흔적에 감탄하고 바로 떠나버렸다면, 살아 움직이는 아유타야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다음 날, 조식을 먹고 가보지 않았던 반대편으로 길을 나섰다. 씻지도 않았고 잠옷을 입은 채여서 적당히 걷다 들어갈 참이었다. 그런데 이게 뭐람. 반칙처럼 등장한 이 푸르고 너른 초원은? 구글 지도에는 분명 ‘park’라고 나오는데…. “아!” 5분쯤 걸어 들어가다가 나도 모르게 얼빠진 소리를 내고 말았다.
반짝이는 호수와 드문드문 자리 잡은 붉은 탑. 250년 전과 지금이 아스라하게 겹쳐 시간 여행을 온 것 같았다. 그런 여행지에서 하나의 시간만 느낀 채 떠나버리는 건 너무 아쉬운 일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