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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슬 Dec 10. 2020

동기부여, 그게 뭔데 어떻게 하는 건데

머릿속에 떡볶이를 떠올려 보세요


회사를 다니기 위해 요구되는 몇 가지 덕목들이 있다. 매일 매일 똑같은 노동을 해내는 성실함, 맡은 일을 잘 해내기 위해 노력하는 태도, 양 옆에 앉아있는 사람들 정도와는 원만하게 지낼 수 있는 약간의 사회성. 여기서 연차가 좀 쌓이면 갖춰야 할 자질 리스트가 늘어난다. 이를테면 중간 관리자에게 ‘동기부여’의 미션이 떨어진다. 팀원들이 자신의 강점을 더욱 기똥차게 살려 더 열심히, 잘 하고 싶게끔 만들라는 것이다. 팀이 지향하는 목표를 잘 이룰 수 있도록.


‘동기부여’란 무엇인가. 하고 싶은 마음이 막 끓어오르게 만드는 것이다. 내가 뭐라고 남에게 그 대단한 동기를 부여할 수 있을까 싶지만, 그러라고 중간 관리자를 시켜놓은 것이니 어떻게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우선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 건지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대해 적절한 피드백을 줘야 할 것이다. 잘한 점에 대해선 잘 했다고 당근을 주고 보완할 점에 대해선 함께 방향성을 고민해야겠지? 우리가 목표에 잘 다가서고 있는지, 계속 같은 곳을 보고 있는지 대화를 자주 나누며 체크해야 할 테고. 와, 이렇게 글로 써놓으니까 정말 쉬워 보이네. 밥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사실 우리 팀은 연초에 야심차게 구글의 성과 관리 기법 ‘OKR’을 도입했다. 1분기부터 4분기까지 나눠 꼭 이뤄야 할 큰 목표와,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달성해야 할 수치들을 정했다. 그걸로 면담도 하고, <구글이 목표를 달성하는 방식 OKR>이라는 책을 인상깊게 읽은 나는 최소 2달에 1번은 파트원들과 개별적으로 만나 대화를 나눠야지 다짐하기도 했다. 그리고 찾아온 쿼런틴 시국. 아, 네... OKR이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물론 다들 집에서 열심히 일 해 목표한 것 중 많은 바를 이루었지만, 서로의 생각을 들을 기회는 거의 없었달까.


그리하여 1년이 얼렁뚱땅 흘러버리는 사이, 마음 속엔 여전히 ‘동기부여’란 돌덩이가 떡하니 존재하고 있다. 친한 언니에게 “동기부여를 어떻게 하지?”라고 물으니 제일 쉬운 방법은 ‘칭찬’이란다. 그렇다. 위에 밥 아저씨의 붓 터치처럼 쉽게 썼던 ‘적절한 당근.’ 근데 나는 칭찬이 좀 어렵다. 나이 서른 하나 먹고 부모님 핑계 대는 게 치졸하다는 건 알지만, 우리 아빠가 아주 칭찬에 인색했거든. 내가 그걸 쏙 빼닮은 것 같다. 방송국에서 도제식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 거기서 칭찬은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 같은 존재였다. 일을 잘하는 것은 돈 받고 하는 프로로서 당연한 거니까. 그 ‘잘함’이 몇 개월 쌓여야만 선배들의 호평과 함께 들을 수 있는 것. 몇 개월에 한 번 듣는 칭찬이 너무나 짜릿했으므로, 나는 오랫동안 지켜보다 신중하게 하는 칭찬이야말로 진정성 있는 칭찬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Z세대 인턴들과 일하면서 깨달았다. 그들이 말하는 ‘피드백’엔 칭찬이 꼭 포함돼있다는 걸. 열심히 하길 원한다면 당근을 줘야 한다는 걸! “잘 해야 칭찬을 하지.”가 리틀 빗 꼰대인 나의 생각이었다면, “칭찬을 해줘야 더 열심히 하고 잘 하지!”가 그들의 마인드였다.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다. 처음엔 모두가 회사에 열정 완충 상태로 입사하지만, 날이 갈 수록 배터리는 닳고 충전을 반복해야 하니까. 주말에 쉬면서 충전하는 건 개인을 위한 충전이고, 노동자 모드를 위한 충전은 회사에서 어느 정도 이루어져야 한다. 칭찬, 기회, 보상 어떤 방식으로든. 기회와 보상은 일개 중간 관리자가 쉽게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니 결국 가장 효율적인 동기부여는 ‘칭찬’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스윗한 말을 하려고 치면 뚝딱이가 돼버리는 나, 어떻게 칭찬 자판기가 될 수 있을까요? 칭찬의 정의에 대한 재정립이 필요하다. 칭찬은 1년에 한 번 받는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이 아니다. 그 생각부터 지우자. 그래, 일주일에 한 번씩 먹어도 맛있는 떡볶이로 하는 거 어떨까. 떡볶이가 뭐 놀라운 맛일까봐 일주일에 한 번씩 시켜먹는 건 아니지 않나. 뻔히 아는 그 맛이 자꾸 땡기는 거지. 칭찬도 비슷한 것 같다. 정우성이 잘 생겼단 말을 매일 들어도 매일 짜릿하다고 한 것처럼, ‘좋네요’ ‘잘했어요’ 이런 말은 매번 기분 좋으니까. 혹시 나는 예전의 내가 감동 받았던 칭찬들처럼 임팩트 있는 칭찬을 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완벽해질 때를 기약하며 좀처럼 결과물을 내놓지 않는 습성이 여기서도 발휘됐나 보다. 칭찬하는 데 그렇게까지 비장할 필요는 없다. 좀 밍밍한 맛일지라도 떡볶이를 안 먹는 것보단 먹는 게 훨 나은 것처럼. 내년엔 좀 더 다른 사람에게 좋은 말을 많이 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 중의 몇 마디가 마음에 잘 가 닿아서 그 대단한 ‘동기 부여’의 씨앗을 뿌릴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고. 이상, 연말 면담을 앞둔 노동자의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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