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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슬 Dec 01. 2020

나는 더 잘하고 싶은가봐

그것 또한 좋아하는 마음의 증거가 아닐까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주인공 '송아'는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무려 삼수를 해 음대에 입학한다. '바이올리니스트'라는 꿈을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어서. 목덜미에 바이올린 닿은 자국이 사라질 새 없이 부지런히 연습하지만, 동기들이 어릴 때부터 쌓아온 절대적인 연습량과 재능을 이기긴 무리다. 성적 순으로 자리가 배치되는 오케스트라에서 송아의 자리는 늘 제일 끝 자리. 꼴찌다. 그런 송아에게 식당에서 만난 꼬마가 (눈치도 없이) 묻는다. "언니, 바이올린 잘 해요?" 이것이야말로 상처 준 사람은 없고 받은 사람만 있는 현장. 송아는 뭐라고 대답했을까?

좋아해. 아주 많이.


그 지고지순한 대답에 문득 말문이 막혔다. 송아가 답답해선 아니고, 나는 왠지 "글 잘 써요?"란 질문보다 "글 쓰는 거 좋아해요?"라는 질문 앞에서 더 버벅거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 수록 무언가를 좋아할 줄 아는 사람들이 진국으로 느껴진다. 잘 하지 못해도, 결과가 어떻더라도 좋아한다는 마음만으로 꾸준히 해내는 사람들. 송아는 특히나 그런 인물이라, 나는 화면 너머에서 혼자 자주 부끄러워졌다. 좋아한다는 이유로 에디터란 직업을 선택해놓고 이제 와선 '글쓰기'만 생각하면 체할 것처럼 답답해지는 내 마음이. 


원래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으면 안 된다고 했던가. 직업이라는 건 모름지기 월급값을 해야 하니까. 굳이 둘중 선택하자면 좋아하기보단 잘 하는 편이 모두를 위해 좋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올해 글쓰기 앞에서 많이 괴로웠다. 새로 시작한 미디어에 착 붙는 콘텐츠를 만들고 있는 건지, 왠지 10% 정도 모자란 느낌인데 당최 어떻게 채워야 하는 건지 감이 오지 않아서였다. 7년을 글쓰기로 밥벌이하면서도 원하는 결과물을 출력해내지 못하다니. 나의 모든 짬바(?)가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글쓰기는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면 오랫동안 지속하기 힘든 일이다. 클라이언트가 주문한 글이든 월급 받고 쓰는 글이든 어쨌든 결과물에 대한 만족감이 가장 큰 동기부여가 된다. 그게 안 되면 사람이 극단적으로 변한다. 마음에 드는 콘텐츠가 완성되면 며칠 동안 기분이 좋았다가 그게 안 되면 신경줄이 잔뜩 날 서는 감정의 널뛰기가 봄부터 겨울까지 지속되었다. 시방 나는 위험한 짐승이여!


그리고 얼마 전, 선배가 내게 일에 대한 만족도를 물었다. 그중 '에디터로서의 만족도'를 묻는 질문이 있었는데, 코 끝을 타고 올라오는 싸늘한 눈물의 기미를 참아내느라 입술 안 쪽살을 칵 깨물어야 했다. 너무 불만족스러워요. 내 자신이요! 내가 너무 싫 어 요! 언덕에서 굴러 떨어지는 돌덩이처럼 선배를 치받지 않기 위해 심호흡을 하며 말을 골랐다. "어... 에디터로서의 만족도라기보단... 어... 네. 그러니까, 더 잘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집에 돌아가는 길, 얼떨결에 튀어나온 속마음을 가만히 들여다 보았다. 결과물이 맘에 안 들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만 생각했었는데, 나는 사실 더 잘 하고 싶었나 보다. 근데 뾰족한 방법이 보이지 않아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나 보다. 어딘지 익숙한 이 기분. 잘 되고 싶은 상대가 밀당하면 더 짜증나는 그런 마음과 비슷한 걸까? 왜, 마음 없는 사람 앞에선 매사에 개비스콘 먹은 것처럼 편-안하지만 좋아하면 밥 먹었냐고 묻기만 해도 심장이 요동치며 구속영장 발부를 외치게 되지 않나. 사귈 것도 아니면서 잘해주지 말라고!(우냐)


나는 꼭 뒤늦게 자신의 감정을 깨닫고 후회하는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처럼 되뇌었다. '아, 나 글쓰는 거 좋아하네.' 좋아한다는 건 러브홀릭 노래 가사처럼 '한 걸음 뒤에 항상 내가 있었는데' 같은 아련한 마음으로 묵묵히 바라보고, 송아처럼 아무리 꼴찌를 해도 그 대상을 미워하지 않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나의 애정은 수없이 느끼는 패배감에도 내일 더 잘 하고 싶다고 다짐하는 마음에 가까웠나 보다. 살면서 너 하나만은 좀 잘 해보고 싶다는 오기와 투쟁으로 점철된 짝사랑. 언제 나가 떨어질진 몰라도 그 전까지는 계속 할 것 같다. 스트레스 받는다고, 고통스럽다고 염불을 외면서도.


엊그제 <나 혼자 산다>에 박세리 감독이 골프 중계를 하기 위해 미리 골프장 사전 답사를 하는 장면이 나왔다. 잔디질과 바람, 코스를 느껴보기 위해 직접 스윙을 휘두르던 그녀는 공이 엄한 데로 날아갈 때마다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는 듯 했다. 이어서 나오는 인터뷰. "아, 골프 칠 때마다 스트레스 받아..." 약력을 굳이 외우지 않아도 될 정도로 전설적인 커리어를 찍은 사람도 매번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사실이 조금 위안이 됐다. 나의 괴로움과 자책감은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느껴져서. 하지만 세리 언니는 자기 자신에게 좀 더 관대해도 된다는 모순적인 명언도 남겼다. 그래서 난 나 좋을 대로 해석하기로 했다. 마음껏 스트레스 받되 나의 쓸모까진 고민하지 말자고. 짝사랑은 지구력이 생명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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