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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슬 Nov 23. 2020

빅데이터 시대의 사랑

사랑을 쓰려거든 AI로 쓰세요

요즘엔 어떤 아티클을 읽어도 기승전빅데이터다. 주로 빅데이터를 활용해 '개인화'에 주력하겠다는 요지다. 지금도 기사 하나, 제품 하나 클릭하는 내 모든 행동들이 구글의 데이터로 쌓이고 있을 것이다. 분석 후에 내 마음을 동하게 할 만한 광고만 기똥차게 보여주겠지? 저번엔 한 모임에서 '구글이 음성 데이터도 수집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어떤 사람이 아내와 자동차에 대한 대화를 나눴는데, 그날 유튜브 앱에 들어가자 메인 화면에 자동차 콘텐츠가 떴다는 것이다. 평소에 찾아보는 주제도 아니었는데! '불쾌한 골짜기' 이론과 비슷한 걸까. 내가 좋아할 만한 것을 적당히 던져주는 건 참 편리하고 좋지만, '이건 어떻게 알아?' 싶은 것까지 먼저 제시하면 공포스러워지는.


물론 빅데이터는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쓰이는 경우가 더 많다. 오늘 본 기사. 코로나19로 비대면 교육이 활성화되면서 '에듀테크'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고. 단순히 온라인 수업을 하는 것을 넘어서, 빅데이터와 AI 학습 알고리즘을 통해 수준에 딱 맞는 문제를 제시해 학습 효율성을 높여주는 서비스가 등장했다고 한다. <수학의 정석> 기본 문제와 응용 문제의 극심한 난이도 차이를 극복하지 못해 수학 시간마다 통곡의 벽을 쌓았던 라떼로서는 '수포자'가 조금이나마 감소하지 않을까 기대가 되는 내용이었다. 그 기사의 마무리는 '미래 교육은 개인 맞춤형 시대'로 갈 것이라 예언하고 있었다. 교실에선 선생님이 하나하나 체크하지 못했던 학생의 성향이나 의지 같은 정성적 부분까지 데이터로 쌓여 단 한 명을 위한 솔루션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문득 그럼 빅데이터 시대의 사랑은 어떻게 될 것인지 궁금해졌다. 한 100년 후엔 A부터 Z까지 내게 맞춰진 AI 애인도 등장할까? 나의 핸드폰과 노트북의 데이터 베이스를 기반으로 내가 뭘 제일 좋아하는지, 요즘 어떤 고민을 하는지, 어떤 행동을 싫어하는지 귀신같이 입력한 채로 태어난 애인. 그래서 "그 남방 안 입으면 안 돼?"라는 말을 할까 말까 고민할 일도 없고, '이건 너무 좋은데 이건 너무 싫어!'서 머리 터지게 결단을 낼 필요도 없는 (나 한정) 적절히 훌륭한 애인 말이다. 원래 타인에게 연인을 소개할 때 하는 최고의 칭찬이 "나랑 잘 맞아" 아닌가. 나이와 상황에 따라 관심사도, 성격도 변하는 게 사람인데, 매일 나를 '딥 러닝' 할 테니 죽을 때까지 잘 맞지 않을까?


그런데 생각해보니 사람끼리의(?) 연애도 이미 빅데이터의 산물이다. 함께 시간을 쌓으며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머리로, 촉으로, 마음으로 알아가는 과정. 상대를 이해하고 서로에게 맞춰가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이 연애니까. 연애 초기 우리는 기꺼이 상대방에게 '개인화'되길 택한다. 나는 늘 밥 먹으며 다리를 떨었더라도 네가 싫다니까 안 하려고 애써보고, 원래 핸드폰을 잘 안 보는 사람이라도 나에게'만'은 하루에 최소 3번은 메시지 보내주길 바란다. 처음엔 억지로 우겨넣은 퍼즐같은 느낌이 들어도, 지난한 싸움과 이별 위기라는 데이터가 쌓이면 어느새 척하면 척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인지 아는 '딱 맞는' 사이가 된다.


그렇게 '딱 맞는' 사이가 된 우리는 왜 끝을 맞이하는 걸까? 그건 아마 AI는 이변이 없는 한 매일 '딥 러닝'을 계속하지만 사람에겐 어느 순간 더 이상 너를 배우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찾아오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무엇을 보면 웃음짓는지 그토록 궁금했던 것들이 시시한 일상으로 수렴해버리는 날이 찾아오는 것이다. 매일 조금씩 바뀌고 있는 서로를 알아채지 못한 채. 배우고 탐험할 가치가 사라진 사랑은 뒷전으로 내내 밀려있다가, 혼란스러운 얼굴을 하고 되묻는다. 너 원래 이랬어?


또한 우리의 '개인화'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일 조금씩 바뀌지만 타인에 의해 '코어'가 바뀌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행동 양식을 바꿔보려 애쓸 뿐, 타고난 성정까지 상대방에게 맞춰 바꾸긴 어렵다. 사랑에 대한 가장 유구한 착각 중 하나는 "내가 저 사람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다. 사람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지만 아주 작은 범위에서만 가능하다. 작게나마 바뀌려고 노력한 그 마음을 어여삐 여겨 관계의 영양분으로 삼을 뿐. 그러나 약에도 내성이 생기는 것처럼 약속 역시 마찬가지다. "노력할게"로 시작해 "믿을게"로 끝난 수많은 데이터들은 결국 어떠한 결론을 도출한다. 너는 변하지 않는구나.


끊임없이 변하면서 절대 변하지 않는다. 이것이 사람을 사랑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인지도 모르겠다. 이 어려움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그동안의 연애 데이터가 깨달은 진리가 있지 않은가. '그놈이 그놈이더라.' 나 역시 누군가에겐 뻔하디 뻔한 한 명의 '그 놈'일 것이다.


무엇이든 효율성있게 해낼 것 같은 2120년의 '신인류'는 어떻게 사랑을 하고 있을까? 빅데이터 시대의 사랑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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