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슬 Dec 26. 2016

'무름' 고수의 필살기

드라마 스페셜 <태권, 도를 아십니까>

어떤 순간, 직감한다. ‘무른 사람 레이더’에 걸려들고 말았다는 걸. 기가 세 보이지 않으니 무례하게 굴기 시작한다든가, 짜증의 방향이 엉뚱하게 내게로 튄다든가. 그건 내가 만만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만만하니 함부로 할 것이라는 선언이다.

 

마음 같아선 그런 취급하는 인간들의 목젖을 쳐주고 싶다. 다시는 얕보지 못하도록 칼 같은 말을 꽂아 넣고 싶다. 하지만 ‘센캐’도, ‘빙썅’도 안 되는 사람에겐 남을 공격하는 것이 더 힘든 일이다. 한 번도 휘둘러본 적 없으니 내 주먹이 얼마나 센지 확신할 수 없고, 물주먹이라면 오히려 더 우스워지는 게 아닐까 겁도 나고, 주먹을 내지르는 행위 자체가 좀 거북하다.

 

한번 두번 마음 상하는 일을 겪고 나자 사람들에게 만만해 보이는 자신이 싫어졌다. 눈에 힘을 주고 말을 안 하면 세 보일까, 고민했다. 하지만 험악한 표정을 지어도 “졸려?”란 소리를 듣고, 차가운 말을 할라 치면 심장이 벌렁거리는 이 육신을 버리지 않는 한 나는 본질적으로 변할 수 없으리라. 그래서 찾아 나서기로 했다. ‘무른 사람’으로 잘 살아남는 법을.




일찍이 현명하게 방향을 선회한 <태권, 도를 아십니까>의 명성이

 

내게 생존법의 실마리를 알려준 건 한 소년이었다. 태권도부 형들의 셔틀 노릇을 하느라 학교 생활이 고달픈 명성이. 어느 날, 태권도부에 새로운 선생님이 부임하는데 유약한 외모와 달리 덩치 큰 고학년들의 공격을 가뿐히 피하는 것 아닌가. 명성은 그를 찾아가 부탁한다. “저, 안 맞게 좀 해주세요.” 그때부터 두 사람의 극기 훈련이 시작된다.


핵심은 적의 주먹이 어디로 날아올지 읽어내는 것. 잘 때리는 것 말고 ‘잘 피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결과는 어땠을까? 늘 몸을 웅크리고 발길질을 받아들이기만 했던 명성은, 위협하는 형들 앞에 당당하게 서 대부분의 주먹질을 피해낸다. 혼이 쏙 빠진 무리를 넘어뜨려 타격을 주는 것도 성공! 물론 결국엔 붙잡힌 채 신나게 얻어맞았지만, 명성의 눈엔 전에 없던 자신감이 떠오른다. 자신에게 맞는 생존법을 찾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충고한다. 피하면 바보 되는 세상이라고. 하지만 나는 이제 더 적극적으로 피해 볼 생각이다. 짜증 나는 말을 할 것 같으면 선수를 쳐 화제를 돌려버리고, 무례하게 굴라치면 웃어버리는 거다. 상처 줄 틈을 노리면 내가 먼저 상처를 드러내면 그만이다. 네가 이렇게 나올 줄 알았다는 듯 슥 피해버리는 게, 공격하는 사람을 가장 당황스럽게 만드는 법이니까. 그러려면 명성이처럼 상대를 제대로 응시하고 서 있는 연습부터 해야겠다.

 

맞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야 주먹의 방향을 읽을 수 있고, 그제야 비로소 피할 수 있다. 상대의 나쁜 태도에, 날 만만하게 보는 자체에 상처받아 눈을 꾹 감고 웅크려버리면 계속 당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피하는 것은 수동적인 행동이 아니다. 나를 움직여 내 마음이 다치지 않는 곳으로 가겠다는 뜻이다. 이것이야말로 무른 사람 레이더에 걸려도 무섭지 않은, ‘무름’ 고수의 전략 아닐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