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라고 떠민다. 구글이.
옛날사람같아 보일까봐 되도록 13년전 유럽여행 얘기는 자제하는 중인데, 이번만큼은 그리 못하겠다.
그 때의 여행과 지금의 여행은 같은 장소를 다른 모습으로 다른 느낌으로 다니는 새록한 재미가 있다. 그 중 으뜸이라면 나는 구글지도를 뽑겠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SNS 이런 것들과 친한 사람이 아니다. 블로그가 하나 있긴 하지만 그마저도 그냥저냥 몇 번 글을 올려놓고 나서 시들해져버린게 전부다. 아이 키우는 엄마들이 많이 하는 카카오스토리도 안한다. 귀찮다. 안해도 크게 안 불편하니 그냥 없이 지낸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켠에는 뭐라도 하나 시작해야하나 하며 인스타나 페이스북을 가끔 들여다보긴 하는데 여전히 마음뿐, 귀찮음을 이기지 못하고 창을 닫는다.
그런 내가 먼 땅에 와서 <구글지도>라는 신세계를 영접했다. 친구가 엄청 편했다고 하길래 한 번 눌러봤는데, 어머나 세상에. 이런 세상이. 이런 편리한 세상이.
영어나 현지어로 입력할 필요도 없다. 그냥 내가 알고 있는 건물 이름을 그대로 한글로 적으면 끝이다. 겁낼 필요가 하나도 없었던 것을 괜히 겁먹었다.
예전 여행에서는 지도가 필수였다. 지도만 가지고는 또 부족했다. 가려는 곳의 주소도 알아야 하지만 메트로 몇 호선을 타고 어느 역에 내려야 하는지가 중요했다. 따로 메모를 해가지고 다니기 귀찮고, 하루에 최소 서너군데는 찍고 다니는 빡빡한 일정 탓에 아예 그냥 유럽여행 안내책자를 들고 다니는게 기본이었다. 두껍고 무거운 책이 부담스러워, 나라별로 혹은 도시별로 분권하여 조금이라도 무게를 줄여보기도 했다. 지도를 펼쳐 방향을 찾고, 여행책자에 형광펜으로 그어놓았던 접어놓았던 정보를 다시 펼치며 발 아프게 유럽을 누볐었다. 한국 배낭여행객들끼리 비슷한 두툼한 책자를 들고 길에서 마주치는 일은 흔한 풍경이었다. 여행 준비를 위해 서점에 나가 책을 좀 살펴본 적이 있었는데, 요즘엔 책들도 예전보다 더 실용적이고 자세하고 재미있게 잘 되어 있어 좋았다. 예전엔 딱 두 가지 종류 밖에 없었는데, 그나마도 두 권의 내용이 판에 박히게 빼닮았었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
그 몇 년 사이.
스마트폰이라는 혁신이 일어났고, 안 그래도 일상에서 도움을 많이 받고 지내지만 여행지에서 특히 가이드가 없는 자유여행에서 톡톡히 몫을 다하고 있다.
목적지를 한글로 적어 넣으면 자동차로 갈건지 걸어갈건지 대중교통을 이용할건지 선택할 수 있게 해주고, 선택을 하면 곧장 안내를 시작한다. 지금 서 있는 딱 그자리에서 오른쪽으로 걸을지 왼쪽으로 걸을지부터 화살표로 콕 집어 알려준다. 이런 훌륭한 가이드가 어디 있을까.
더 고마운 건, 헛걸음을 줄여준다는거다. 피렌체에서 그 유명한 '고현정크림'을 사러 구글지도를 검색했는데, 요놈이 그런다. 지금 영업 끝났다고. 그래도 가겠냐고. 후후.
너같으면 가겠냐.
어찌됐건 정말 고맙다.
그 덕분에 여행객들의 풍경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큰 지도를 펼쳐 들고 여기저기 건물과 주소를 확인하느라 길에 멈춰 서 있는 여행객들의 모습은 이제 찾기 힘들다. 어느 외국 할머니 몇 분이 지도를 펼치고 머리를 모으고 궁리중인 모습을 몇 번 본게 전부다. 다들 스마트폰에 구글지도를 펼치고 우회전하라면 하고, 직진하라면 한다. 9호선을 타라면 타고, 내려서 3번 출구로 나가라하면 나간다. 고분고분 말도 잘 듣는다.
길을 몰라 막막할 때 지나가는 현지인들에게 묻기보다는 검색이 먼저다. 검색하면 왠만한 정보는 다 나오는데 말도 잘 안 통하는 사람 붙잡고 시원한 대답을 얻기가 더 어렵다.
더운 거리에서 방향을 몰라 고민할 시간을 줄였으니 징징하는 아이들과 함께인 난 진심으로 구글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지만, 어딘가 예전의 낭만이 사라진 것 같아 아쉬움이 함께 온다.
배부른 소리같아 우습지만 지도를 잘못 읽어 왔던 거리를 뱅뱅 돌고도 목적지를 찾지 못하고,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지나가던 사람의 친절 때문에 엉뚱한 버스를 타기도 했던 그 때가 재미있었던 기억.
재미있었다고 낭만 있었다고 기억하면서 다시 선택하라면 서슴없이 구글지도를 택할 이 놈의 변덕스러운 마음.
지나간 일들은 다 좋게만 추억되는데, 실은 그 때 정말 덥고 진짜 피곤하고 항상 배고프고 너무너무 배낭이 무거웠었다.
지도펼칠 일 없다고 낭만 타령하면 정말로 고생스러운 일이 닥쳐올지도 모르겠다.
그저 감사할 노릇이다.
구글과 잡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