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검색

대한민국 블로거들께 감사드립니다.

by 이은경

여행이 2주를 꽉 채워가니 여기저기 불평의 목소리가 나온다. 빵과 면은 이제 신물이 난다며 도대체 맛있는게 없는 동네라며 촌사람 티를 낸다. 남편이.

남편은 평소, 본인이 남자치고는 대한민국 아저씨치고는 굉장히 식습관이 유연하고 글로벌하며 빵이든 밥이든 잘 먹는 세계화된 사람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첫 일주일 정도는 나도 그가 진짜 그런 사람인줄 알았다. 햄치즈 잔뜩 들은 샌드위치도 맛나게 먹고, 밤에 출출할까봐 슈퍼에서 파운드 케잌을 사다가 또 잘 먹고, 이탈리아에 들어서서는 맛있는 스파게티를 향한 큰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아이들은 아직 유연한 입맛과 서구화된 내 입맛도 좀 닮은 탓에 그럭저럭 매 끼니 맛있게 먹어주고 있는데.


남편의 식사에 문제가 생겼다.


빵과 면이 미치게 싫어졌다는거다. 조식부페의 유일한 위안은 스크램블과 우유일 뿐이라고, 빵 말고 면 말고 다른 거 있으면 좀 먹고 싶다고 왠종일 궁시렁거린다.

저런저런

절레절레


본인이 빵을 좋아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는 말을 100프로 번복하기로 하고 순순히 오리지날 한국인임을 인정하고야 말았다. 우리집 아침밥상도 크루아상, 우유, 스크램블, 햄, 과일, 요플레 요런 느낌의 조식으로 바꾸어야겠다고, 간단하면서도 든든하고 아이들도 잘 먹으니 참 좋다고 슬쩍 떠봤더니 기겁을 한다. 아침엔 제발 밥을 달라며. 후훗. 콧대높던 세계화 아저씨가 밥 앞에 꼬리를 내리는 통쾌한 순간이다.


새로운 도시에 도착하면 남편이 검색은 시작된다. 일정을 짜기 위함이 아니고, 박물관 예약을 위함도 아니다. 아무리해도 시원찮고, 아무리해도 끝이 없는 <맛집검색>이다. 길에 있는 느낌 괜찮아 보이는 식당 몇 군데에서 어이없는 소금 덩어리 스파케티의 공격을 당한 후부터 검색 시간이 더 길어졌다. 더 이상 이런 짜디짠 밀가루 덩어리로 배를 채울 수 없다는 강한 의지가 보인다.


덕분에 몇 번의 만족스러운 식사가 있었다. 소개하련다.


1. 피렌체의 스테이크

티본 스테이크가 유명한 동네라는 것 정도 알고 있었고 그래서 한 번 먹어보면 좋겠다. 는 나와는 달리 남편은 이미 스테이크 맛집 검색을 마치고 그 곳에 갈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명성이 자자한 그 곳은 서둘러 갔음에도 한 시간이 넘는 대기 시간이 있었고, 식당 안에는 현지인들 반, 한중일 반 정도일만큼 동양인들이 많았다. 특히 한국인들이 그렇게 한 곳에 많이 모여 식사를 해본 건 여행 통틀어 처음인 듯하다.


역시.

한국의 블로거들은 틀림이 없었다. 그들이 몇 번이고 강조하여 맛있었다며 사진을 올려놓은 식당답게 고기는 살살 녹고, 스파게티 소스는 과하지 않았다. 블로거의 승리이며, 남편의 홈런이었다.


Tripadvisor라는 앱으로 별점을 보며 식당을 찾는 나와 달리 남편이 애정한 건 한국인들의 블로그 후기였다. 본인 입맛이 토종 한국스타일임을 인정한 뒤부터는 세계인들의 앱 따윈 신경쓰지 않았다. 줄곧 Daum이나 Naver를 통해 블로그 검색을 했고, 한국인 입맛에도 만족스러운 식당을 열심히 찾아냈다.


하지만 여기에도 생각지 못한 함정이 있었으니 그 블로거들은 대부분 '20대 여성'들이라는 사실. 그녀들은 실제로 유럽여행을 많이 시도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유럽에 한국 20대 여인들만 있는건 아닌데 어째 블로그에 열심히 맛집후기를 남긴 걸 보면 대부분 그들이다. 그러니 그녀들의 입맛에 의존한 맛집 추천인 셈이다. 40대 아저씨들도 유럽에는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아줌마도 있고, 남자대학생 무리도 여학생들만큼 많다. 그런데,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고 즐거운 여행을 했다 해도 40대 아저씨들은 블로그에 맛집후기를 남기지 않는다. 그래서 남편은 본인 입에 딱 맞는 식당을 찾는데 어려움이 많을 수 밖에. 아무리 열심히 뒤져 보아도 20대 여인들이 맛있다고 한 식당밖에는 정보를 가질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불쌍한.


2. 나폴리 화덕피자

피자가 유명한 동네이니만큼 제대로된 나폴리 피자 한 번 먹어보겠다는 각오를 이미 피렌체에서부터 계속 들었다. 그래, 먹자 먹어. 건성으로 몇 군데 이름만 알아낸 나와는 달리 남편은 수십개의 블로그 후기들을 통틀어 많은 님들이 베스트로 추천하는 화덕피자 전문점 한 곳을 찾아냈고, 덕분에 나는 한 시간 반 정도를 피자 줄서기에 보내야 했다. (남편은 주차할 곳을 못 찾아 여기저기 경찰 눈치를 보며 그 시간을 대기하는 중이었다.)


나폴리 피자 중 으뜸으로 하는 집 답게 베짱장사가 아주 으뜸이었다. 가게 안에 들어가 번호표를 받아서 들고 기다리면 번호를 부를 때 들어가 주문하고 받아나오면 되는곳인데 어찌나 거만하고 불친절한지 내가 조금만 더 자존심이 셌거나 남편의 맛집검색이 조금만 더 덜했다면 난 그냥 포기하고 나왔을 것이다.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바글거리는 좁은 가게 입구에서 직원은 오직 단 한 번만 번호를 부른다. 대답은 2초도 기다리지 않고 다음 번호로 바로 패쓰하며, 지나간 번호를 들고 아무리 사정을 해도 소용이 없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사정하고 거절당하는 여행객들의 모습이 애처롭다.

그러니, 번호표를 들고 있는 내가 얼마나 눈을 반짝이며 긴장했을지는 당연한 일이다. 이탈리아인 특유의 강한 억양의 영어로 '뽈띠 쓰리'라고 부르는 순간의 심쿵. 얼마나 집중을 했었는지 내 번호 43번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렇게 얻어낸 피자는 블로거들께 감사의 인사를 다시 전하고 싶게 만들었다. 그간의 긴장과 불쾌함을 싹 씻게 만드는 절묘한 맛이 있었다. 짜지 않으면서 맛있는 나폴리 최고의 피자다웠다.


그러니까 이 글의 요지는 뭐냐면,

그간 우리가 지난 14일간 매일 점심과 저녁, 두 끼를 사 먹었는데 28번의 식당 순례 동안 맘에 드는 음식을 먹은 건 단 두 번이었다는 얘기. 남편은 집에 가자마자 마트로 달려가 먹고 싶은 걸 쌓아놓고 배터지게 원없이 먹는 상상을 계속 하고 있다는 얘기.

그 얘기가 이렇게 길어졌을 뿐이다.


나폴리 피자는 어찌 허겁지겁 먹어치웠는지 사진 한 장이 없다. 줄서있던 가련한 여행객들 사진으로 대신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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