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매력과 함정

24시간 계속되는 육아

by 이은경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부터

한숨을 좀 돌렸었다.

그 시간은 자연스레. 조금씩 길어졌고,

초기 적응 기간이 끝나면 슬슬

마음마저 완전히 분리되는 자유부인이라는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그 시간 동안 온전히 자유를 만끽하든

직장에서 커리어를 쌓으며 자아를 실현하든. 어쨌든. 육아에서 해방되는 몇 시간이

보장된다.


그렇게 조금씩 아이들과 육체적 정서적

거리를 넓혀가고 있었다.

제법 자연스럽게 잘 넓혀왔고,

점점 더 넓어지리라 기대했는데

이만큼 키웠으니 이제 됐다 싶었는데.

이만큼 키운 기념으로 함께 온

먼 나라에서 오랫만의 24시간 밀착육아가

시작되었다.

이런.


차려주기만 하면, 시켜놔주기만 하면

밥도 꿀떡거리며 잘 먹고

알아서 샤워도 하고 잠들기 전엔

양치질과 일기쓰기를 거르지 않는

'이만큼'이나 자란 아이들이다.

육아라고 부르기엔 150센치가 넘은

아들을 내가 돌보고 있는건지

그가 나를 지키고 있는건지 헷갈릴 정도.

행인지 불행인지.


그래서 이건 육아도 아니라 생각했다.

이건 여행이지 육아가 아니며

아이들은 이제 각자의 앞가림을 너무나

훌륭하게 잘 해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돌봐주어야할 대상이 아니며

여행을 함께 즐길만한 좋은 파트너들이라는 생각들로 자꾸 나를 다짐하고 또 했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이제 한국을 떠나온지 만 4일째.

이제 겨우 이 곳의 시간에 적응하고

슬슬 여행에 발동을 걸어가고 있는 중일 뿐이었는데 어머나 어머나.

아침에 빨래거리를 싸들고 숙소 근처

빨래방을 찾았다.

빨래 훔쳐가는 놈들을 조심해야한다며

남편은 빨래를 지키고 앉아있자고 했고,

애들만 숙소에 두기가 찜찜하여

남편을 돌려보냈다.


파리까지 와서 빨래방에 앉아

빨래를 지키고 앉아 있는 신세라니.

처음엔 이랬는데.

5분이 지나고 10분이 지나면서

나도 모르게 상쾌하고 또렷해지는 느낌.

이유를 가만 생각해보니.

만 4일만에 아니지, 출발전 몇일까지

합치면 일주일만에 혼자 있게 된거다.

여행준비부터 출발, 도착, 여행일정

모두를 찰떡같이 붙어서 함께 했던

세 남자와 처음으로 떨어지게 된거다.


기념으로 잽싸게 커피를 한 잔 샀다.

자유 부인이라면 커피를.

이건 그냥 외워야 한다.

왜냐고 묻지 말고 통째로 외워야 한다.


빨래방 구석 의자에 앉아

뱅글거리며 돌아가는 세탁기를

쳐다보며 마시는 달달한 커피라니.

세상 이렇게 달콤할 줄이야.


43분의 세탁과 9분의 건조.

아쉬운 시간이 흘렀다.

한 시간도 채 안되는 자유였지만

충분히 상쾌했고 공기는 달랐고,

정신이 또렷해져왔다.


역시.

애들이 이만큼이나 다 커서

나는 더 이상 아이들 때문에 스트레스

받지 않는다 생각했던건 착각이었다.

그냥 그렇게 믿고 싶었을 뿐이었다.

40키로를 거뜬히 넘기는

거구의 아들들은 여전히

신발끈을 묶어달라 하고, 설거지를 대강 헹구어 놓고, 아빠 양말을 슬쩍 갖다 신는다.

때마다 시원한 물을 찾으며, 너무 많이 먹기도 하고 너무 적게 먹기도 한다.

새벽부터 일어나 잠을 깨워놓기도 하고,

혼자 심하게 늦잠을 늘어지게 자기도 한다.

어느 하나 신경쓰이지 않는 일이 없다.

어느 하나 손이 필요하지 않는 일이 없고 말이다.


그래도 여행속 육아가 견딜만한 것은

잠시지만 아이들의 눈을 빼앗는 볼거리들덕분이며 ,지쳐서 아이에게 짜증을 내는 나를 신기하게 쳐다볼 많은 현지인들 덕분이다. 이것들 덕분에 위기를 넘긴다.

나 역시 아이의 성가신 요구와 짜증에

빠져있을 틈이 없다. 어느새 눈 앞에 나타난 노틀담 성당과 몽마르뜨 언덕을

카메라에 담느라 내 손과 눈과 마음이 설레인다. 짜증을 내고 싶은데 시간이 없다. 왠만한 요구는 순순히 얼른 들어주고

다시 풍경들에 눈을 돌린다.

여행과 육아의 비중이 굳이 따지자면

51대 49정도다. 98쯤의 무게로 육아에 눌려지내던 날들을 지금도 기억한다.


몇 년만에 해보는 24시간 밀착육아.

4일 했는데 할만한데, 앞으로 남은 2주간

내 육아에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나는 과연 길바닥에서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르며 분을 삭이지 못하는 엄마로

길이 기억에 남게 될 것인가.

관전 포인트다.


기대되는건지 걱정되는건지

정확하지 않지만 결과가 매우 궁금하다.

여행을 마친 후,

18일간의 초밀착 육아에 관한

보고서를 한 편 써보리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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