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무섭다는 그 바람, 나도 좀 맞아봅시다.
늦바람이 무섭다.
SNS랑은 담쌓고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 생각했다. 그런 데에 쓸 시간, 에너지, 데이터, 시력이 어디 있냐며 쯔쯧거렸다. 그런데, 빠졌다. 인스타에 빠졌다. 내가.
아줌마 늦바람의 핑계를 대자면 시작은 다른 아줌마들이다. ‘아줌마들’이라는 그룹이 어떤 사건의 발단이 되는 경우는 종종 생겨나는데 내가 아줌마이기 때문에 아줌마들과 가까이 지내보니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때문인지 덕분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아줌마들은 이런 거 안 하는 줄 알았는데 회원가입을 해보니 여기저기 아는 이름들, 얼굴들이 눈에 띈다. 하는 법을 대략 배우고 사진을 한 장 올렸다. 근래에 먹은 것 중 가장 근사한 피자를 찍어두었는데 그중 쓸 만했다. 사진 밑에 뭐라고 써야할 지 몰라 피자 이름과 식당 이름 정도를 적었다. 근데 뭐, 이거 어쩌라는 거야. 올리면 끝인가. 그래서 이게 뭐라는 거야. 그럭저럭 올리긴 했는데 맞는 건가. 팔로우가 뭔지, 팔로윙이 뭔지 한글로 써 있는데도 알 수가 없다. 까막눈이다. 막 눌러 보니 뭐가 보인다. 내가 올린 게 아닌데 뭔가 보인다. 오호라, 누가 이걸 올려놨구나. 이걸 구경하라는 거구나. 바로 느낌이 왔다. 슬슬 남의 사진을 구경하기 시작한다. 인스타그램이라는 매체의 목적이 내 사진인지 남의 사진인지, 그런 사진들의 목적은 도대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보이길래 일단 훑었다. 그렇게 가끔 들렀다.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릴 시간은 충분하나 딱히 볼거리가 없을 때, 예를 들면 한 시간 넘도록 진료를 기다리게 될 때나 혼자 전철로 멀리 다녀와야 할 때 한 번씩 들어가 보는 정도였다. 그런 식이었으니 별 흥미를 못 느낀 건 당연한 얘기.
그러다 인스타그램이 싫어졌다. 앱을 지웠다가 다시 깔은 게 세 번째다. 별 것도 아닌 것을 싫어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피자 사진 한 장 올려놓은 건 괜찮았는데, 남의 사진이 문제였다. 꽤 문제였다. 자주 만나 속 얘기를 풀어놓고 지내던 아는 언니가 있다. 내가 알던 이 언니는 대책 없는 시댁의 합가 제안 때문에 일주일 꼬박 잠 못 잔 이야기와 하늘에서 돈이 뚝 떨어졌으면 좋겠다는 푸념, 부쩍 욕과 거짓말이 늘어버린 아들에 대한 원망을 틈만 나면 늘어놓던 사람이었다. 나만큼이나 걱정 많고 고민 많은 쿵짝이 잘 맞는 사람이었다. 현실의 언니는 나와 비슷해서 좋았다. 서로의 속 얘기를 털어놓고 나면 어쩜 이렇게도 서로 비슷한 사람이 있냐며 깔깔대고 좋아했다. 그런데 언니의 인스타가 좀 이상했다. 내가 알던 그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인스타 속의 언니는 더없이 행복하고 부족한 게 없어 보였다. 남편과는 그런 잉꼬가 없고 아이들은 잡지 화보에 나오는 양 언제나 어디서나 반짝이고 예뻤다. 주말 저녁이면 다녀온 나들이에 관한 사진이 주르륵 올라오고 맛집에서 찍어온 음식 사진들이 어김없이 눈에 띄었다. 내가 알던 언니가 이 언니가 맞는가. 지난주에 만나 돈타령을 하며 한숨을 쉬던 언니는 누구였을까. 사진 속의 언니는 또 누구일까. 도대체 어떤 게 진짜 언니일까. 허세샷을 올리는 연예인들의 생각 없음을 안타까워했고 먹는 거, 입는 거, 자는 것까지 부지런히 올려대는 동네 아줌마들을 한심하게 여겼다. ‘나만 하지 않음’이 나름 만족스러웠다. 뭔가 특별한 느낌이 좋았다.
세상이 바뀌긴 했나보다. 물어오는 사람들이 하나둘 생겨났다. ‘인스타 하세요?’ ‘인스타 주소 좀 알려 주세요’ 내 주소를 나는 모른다. 가입할 때 뭐라고 썼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전 그런 거 안합니다’ 라고 쉬크하게 답하려 했는데, 정작 현실의 나는 ‘아, 지금은 안하는데, 곧 시작하려구요. 해야죠. 하게 되면 주소 알려드릴게요.’ 뭐 그리 대단한 거라고 약속에 다짐에 결심까지. 등 떠밀리듯 시작했다. 왜 하냐고 묻는다면 안할 수 없어서 한다고 그거 하나는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
그랬는데, 시작은 그랬는데 요놈. 갈수록 재밌다. 내 계정에 사진과 글들이 하나씩 늘어가고 팔로워와 좋아요 숫자가 차곡차곡 올라가는 모습을 보는 게 뜻밖에도 일상에 활력을 주는 게 아닌가. 이젠 내 인스타의 주소도 줄줄 읊을 수 있다. 내가 아침에 일어나 스마트폰으로 가장 먼저 확인해보는 게 인스타라는 것이 믿어지는가. 간밤에 하트는 몇 개나 늘었을까, 혹시 새로운 팔로워가 생겼을까. 궁금하고 설레는 맘으로 눈을 뜬다. 주식에 1억을 넣어놓은 분이 매일 아침 9시가 되길 그리도 기다린다는데, 요즘 내가 꼭 그렇다.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는 동안에도 인스타에 올리면 좋을 것 같은 일상의 소소한 사진을 찍고 퇴근 후 아이 침대에 슬쩍 누워 주루륵 올린다. 애들 사진과 읽었던 책 사진이 가장 많고 과감하게 화면 가득한 셀카를 올리거나 학교, 교실 사진도 올리고 내 책도 슬쩍 광고한다. 주말이면 예쁜 까페를 사진에 담고, 정성스런 음식도 놓치지 않는다. 동영상을 올리면 조회수가 훨씬 높아지는 양상을 눈치 채고부터는 동영상도 열심히 수집한다. 강박까진 아닌데, 타고난 범생이 성향 때문에 어이없게도 매일 다섯 개씩을 반드시 올린다. 매일 수학 문제집을 두 쪽씩 풀던 과거 학생 시절의 모습과 숙제를 해오지 않으면 혼내야만 하는 지금의 직업병이 합쳐져 꼬박꼬박 일기 쓰듯 다섯 개씩이다. 올릴 거리가 없으면 전에 읽었던 책을 꺼내어 사진을 찍어댄다. 사진만 찍고 다시 꽂아 넣는 나를 아이들이 이상하게 쳐다본다. 니들도 살아봐라. 돼지 저금통에 동전을 모아가듯 하나씩 사진으로 남겨 올리고 하트가 생기기를 새로운 팔로워가 생겨나기를 기대하며 밤을 보낸다. 어서 아침이 오기를 기다린다.
시작하지 않았다면 난 여전히 나와 아무 상관도 없고 내게 어떤 피해도 입히지 않는 ‘인스타하는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에 빠져 있었을 거다. 제대로 경험해보지 않은 세계를 일단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그들의 열심을 내 기준에서 쉽게 판단했을 거다. 실상 그들보다 훨씬 긴 시간 스마트폰을 내려놓지 못하는 하루를 살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덕분에 삶이 풍성해졌다.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이다. 일상에서 소소한 이야기 거리를 찾아야만 하루 다섯 가지 피드를 올릴 수 있기에 삶 구석구석을 섬세하게 관찰하게 됐다. 아이들의 모습을 더 예쁘게 담기 위해 애쓰고 쉽게 지나치던 글이나 그림도 되돌아본다. 사진에 어울리는 몇 가지 문장을 만들어내기 위해 고민하는 시간, 가장 적절한 해시태그를 고르는 동안의 짧은 고민들은 고맙게도 글 쓰는 작업에 힘을 보태고 있다. 덕분에 지나칠 뻔했던 사소한 일들도 어엿한 글감이 되어 한 편의 산문으로 화려하게 변신한다. 남들 다 쓰던 건조기를 뒤늦게 장만했을 때처럼, 늦바람난 인스타 전도사가 되어버렸다. 요즘 남편에게 인스타 사용법 특강 중이라 좀 바쁘다. 마누라표 특강이다. 알고 싶지 않은 사람을 교육시키는 어려움에 대한 피드를 올려야겠다. 게시물이라곤 내가 시범을 보이느라 올려놓은 가족사진 한 장뿐인 그의 계정이 무럭무럭 자라나길 도와야겠다. 이것이 참된 스승의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