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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경 Jan 13. 2019

매사에 대충인 사람이 살림을 하면

잦은 병원행,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집 요리 담당이다. 나는 이 일이 좋다. 이상하게도 요리를 하면 식구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때로는 지나치게 이르거나 늦은 시간에 홀로 부엌에서 시간을 갖는 기분도 나쁘지 않다. 물론 미치도록 짜증나는 순간이 훨씬 더 많지만 말이다. 바쁘게 저녁 준비를 하다가 너무너무 밥을 하기 싫어 싱크대 앞에 서서 눈물을 철철 흘린 적도 있다. 밥하기 싫어서 울었다고 했더니 누가 나보고 또라이란다. 크게 틀린 말은 또 아닌 것 같다.


요리는 재료가 중요하다. 재료는 미리 준비되어 있으면 좋지만 그렇지 않다 해도 방법은 있다. 있는 재료들로 어찌어찌 그럴싸한 요리를 만들어내는 건 집마다의 요리 담당들이 가진 재주이자 특권이자 짜증 유발 동기이기도 하다. 남편이 사들고 온 전동 킥보드는 어떻게 다뤄야 할지 조금도 관심 없지만, 전기렌지의 잔열을 효율적으로 쓰는 방법과 스텐 후라이팬으로 계란 후라이를 할 때 늘어 붙지 않게 하는 요령은 잘 알고 있다. 요리가 완성됐음을 알리는 고슬고슬한 냄새가 나면 가장 어울림직한 그릇을 꺼내 담는다. 아이들을 위해 준비한 반찬을 그들이 열광하는 라이언 캐릭터가 그려진 그릇에 담을 때가 가장 즐겁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흰 그릇에 라이언 얼굴 하나가 그려있다는 이유로 그 그릇에 밥을 먹기 위해 싸우는 아이들을 보는 게 퍽 신기하다. 어쩌면 그 모습이 귀엽고 재미있어 라이언 그릇을 하나 더 사지 않고 있는 것도 같다. 언젠가 아이들은 더 이상 그 그릇에 관심 없어질 것이고, 그 땐 좀 서운할 것 같다.

요리를 끝내면 대단한 성취감이 든다. 능력 있는 주부가 된 기분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빠른 시간에 요리를 완성하는 것은 자신 있다. 맛은 알 수 없다. 맛은 중요하지 않다. 요리가 완성됐는가가 중요하다. 출근 전에 먹을 수 있겠는가, 퇴근 후 30분 안에 완성했는가가 중요하다.      


큰아이가 지난주에 무려 2주 동안이나 장염으로 고생했다. 추워지는 날씨가 아쉬워 날마다 놀이터를 지키더니 탈이 난 모양이다. 배가 살살 아프다 하더니 자다가 구토를 하고 통 먹지를 못했다. 이 아이에게 장염은 처음인지라 맹장이 터진 건줄 알았다. 생전 엄살이 없던 아이가 배를 잡고 구르자 그 때서야 상황의 심각성을 알고 병원을 향했다. 어둑해진 놀이터를 호령하던 팔팔하던 남자 아이는 순식간에 세상 잃은 표정의 환자가 되었다. 이제 아이들이 많이 자라 소아과 출석 도장을 그만 찍어도 되는 날이 왔다며 큰소리치던 나도 시름 가득한 보통의 간병인이 되었다. 아들과 엄마는 그런 관계다.

좋아하는 고기를 구워주면 아무리 늦은 아침 시간이나 피곤한 저녁 시간도 서로 부드럽게 넘어갈 수 있었는데 이도저도 못 먹는 아이를 어찌할 것인가. 한 번 걸린 장염이 나으려면 꼬박 3일은 기다려야 하고 그 긴 시간 죽만 먹어야 하는 아이는 내내 칭얼거릴 것이다. 내게는 그걸 받아줄 인내심이 없었다. 슬쩍슬쩍 안되는 음식도 먹여가며 아이와 타협을 했다. 죽에 계란말이를 얹어주거나, 김을 싸서 먹게 허락해준다거나 하며 3일을 지냈다. 다 끝난 줄 알았다. 그런 요행은 끝을 끝이 아니게 만든다. 난 그렇게 아들과 타협하고 좋은 엄마인척 따뜻한 요리사인척 요령을 부린 결과, 꼬박 2주 넘게 배를 붙잡고 인상을 찌푸리는 아들의 수발을 들어야했다. 3일만 잘 참고 성실하게 흰죽으로 간병을 했다면 그 3일로 끝났을 잔병이었다. 그게 2주가 되도록 혹독하게 앓아내야 했다. 엄마 탓이다. 죽을 먹기 싫다고 말했을 뿐인 아이에게는 잘못이 없다.


미련하고 어리석고 생각이 짧은 엄마 밑에 태어난 탓에 3키로를 덜어낸 쏙 빠진 몸으로 간신히 완치를 선언했다. 갑자기 닥친 이번 장염 사태로 세 군데의 병원과 네 군데의 약국을 찾아야 했고 병원비, 약값만도 몇 만원이 훌쩍 넘어갔다. 학교에 하루 결석을 했고, 이틀은 병원에 들렀다 가느라 지각을, 보건실 신세를 진 날도 세 번이나 되었다. 아이는 고생을 했고, 빠른 요리에 자신 있어 했던 아이의 엄마는 요리에의 의욕과 자신감, 스피드를 한 번에 잃었다.

기름진, 튀긴, 차가운, 뜨거운, 딱딱한, 단, 짠, 거친, 밀가루로 만든 모든 음식을 제한하라는 명을 받았고 그걸 어기다 병이 깊어지자 정신을 차려야 했다. 죽 말고는 먹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어떤 맛난 죽도 애피타이저일 뿐, 끼니가 될 수는 없음을 절감했다. 혹 아주 가끔 끼니를 대신해주기도 하지만 그건 여러 기름진 음식들 사이에 한 번으로 족하다는 것도 확실히 알았다.

사랑하는 가족, 그것도 아이의 통증을 지켜보면서도 싫어하는 죽 말고는 그닥 내밀게 없는 엄마의 무력함을 생생히 경험했다. 내가 자신 있어 하던 얄팍한 요리라는 것은 왠만하면 다 입에 맛있고, 대부분의 시간 허기져있는 건강하고 식욕 왕성한 성장기 아이들에게나 환영받는 것이었다. 그 시기의 남자 아이들은 대부분의 음식을 맛있게 느끼며, 뭐든 일단 식탁 위에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다는 것에 만족하며 산다. 그들이 절망하는 순간은 음식이 맛없을 때가 아니라 음식이 없을 때라는 것. 내가 요리에 유능하다고 느낀 건 내 요리의 완성도가 높아서가 아니라 때에 맞추어 먹을 것을 주는 사람이라는 존재에 대한 환호였음을 알았다.


적당히 슬그머니 넘어가곤 하며 이 날까지 그럭저럭 살아왔음을 고백한다. 완벽하게, 철저하게, 제대로라는 틀에 갇히면 창의성이 없어진다며, 창의성 없는 인생은 재미도 가치도 없는 거라는 별 희안한 핑계를 대며 매사가 대충이었다. 아이를 키울 때도 그런 식이었다. 소아과 진료 후에 받아온 콧물 시럽 6ml를 먹일 때도 정확하기 위해 굳이 애쓴 기억이 없다. 한 번 쭉 짜서 나오는 시럽이 5ml나 7ml라 하더라도 그대로 진행. 어떨 때는 용량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해 10ml를 먹인 적도 있고, 아침저녁 두 번만 먹이는 약을 깜빡하고는 아침점심저녁으로 세 번씩 먹이기도 했다. 그렇게 먹고도 탈나지 않고 자라준 아이들에게 고마울 뿐. 아이를 돌보는 중에 저지른 대충대충 넘어간 사례들은 다행히 절반도 들키지 않았다. 엄마니까 가능했다고 본다. 남편은 굉장히 꼼꼼한 사람이지만 어찌됐건 아이들과 늘 붙어 지낸 건 나였기 때문에 들키지 않고 넘어간 일이 제법 많다. 대충 마무리해 버리는 게 익숙한 사람이지만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게 되면 완전 범죄를 위해 머리를 팽팽 돌린다. 쓰다 보니 이제껏 대충 넘어갔던 일들이 줄줄이 생각나는데, 그래서 이 글은 여기서 그만 마무리 지어야겠다. 책을 즐기지 않는 남편이지만 내가 쓴 책은 읽어 보는데, 굳이 한소리 들을 일을 낱낱이 적어가며 기록으로 남길 필요가 뭐란 말인가. 결국 그렇게 키워내고 있는 아이들은 이제 엄마키를 위협하는 장정이 되어 가고 있는데 그 사실 하나로 충분히 감사할 뿐이다.


이은경 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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