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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경 Mar 10. 2019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바라는 만큼 시간을 실컷 쏟아라


'책을 내고 싶다'는 바람으로 글을 쓰려는 혹은 쓰고 있는 당신에게.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 바라는 만큼 시간을 실컷 쏟으라는 조언. 

이것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지극한 사연을 이제부터 하나씩 풀어보려 한다.  


타고난 글쟁이들이 가끔 있는 것으로 안다. 우리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 법한 소설가 몇 분이 그 주인공인데, 그분들께 '타고나셨나요, 노력이신가요'라는 확인을 해본 적이 없으니 어쩌면 그분들도 실은 타고난 글쟁이가 아닐 수 있다. 그분들은 나와 다른 타고난 글쟁이라고 믿고 싶은 마음도 크다. 타고난 글쟁이라는 말은 대단한 칭찬이지만 한 편으로 꽤나 기분 나쁜 표현이 될 수 있다. 그분들이 글을 쓰느라 들이는 수고와 노력을 '타고났다'는 말 한마디로 뭉게 버리고 있으니 말이다. 올림픽이나 월드컵에서 대단한 활약을 펼친 선수들의 일화는 몇 가지 교훈을 주는데 사실 우리가 결국 마음에 남기는 말은 '타고난 운동신경'이라는 적절한 핑계가 아닐까. 그들이 최고의 선수로 성장하기 위해 겪었던 오랜 기간의 고통스러운 훈련보다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결코 내가 갖지 못한) 우월한 유전자의 존재가 실은 게으른 우리에게 카스텔라 같은 위안이 되기 때문이다. 


첫 책을 내고 많이 들은 말은 '수고했다'였지만, 내 이름의 책들이 몇 권 되자 슬그머니 인사말이 바뀌었다. 

"원래 글 잘 썼었지? 어쩐지"

질문의 속뜻을 모를 내가 아니다. 나는 여우다. 

'알고 보니 원래 잘 쓰는 사람이었었던 걸 몰랐구나, 너는 원래 잘 썼기 때문에 이렇게 짧은 시간 많은 책을 낼 수 있는 거야. 그렇지 않고는 이럴 수 없어. 이건 네가 가진 재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거지, 평범한 사람이 이렇게 할 수는 없는 거야.'

칭찬인데 칭찬이 아니다. 긴 머리 훌렁 까고 상투 꼭꼭 틀어 올린, 노량진의 삼수생과 하나 다르지 않은 전투적이고 처량한 꼴로 새벽마다 노트북 붙들고 있는 나의 노력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나는 타고나지 않았다. 나는 매일 읽고 날마다 쓰기를 기계처럼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하루라도 글을 읽지 않는다고 내 입 안에 가시가 돋지 않았지만 그런 날이면 불편한 마음에 기어코 잠자리에라도 소설책 한 권을 끌고 들어가야 맘 편히 잠들 수 있었다. 일종의 강박이라 생각할 텐데 그 생각이 맞다. 강박이다. 책을 읽고 쓰지 않은 날의 불안감은 나를 점점 더 압박했다. 타고난 글쟁이였다면 쉬고 싶은 만큼 맘 편히 쉬다가 별안간 들어앉아 훌렁 써내면 그만 일 텐데, 노력하지 않은 날에 대한 죄책감이 눌러오는 걸 보니 타고났단 말을 듣긴 애초에 글렀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평범한 작가 지망생일 뿐이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여전히 강박에 시달리는 작가가 되었다는 것뿐. 


기적이 한 번 있긴 했다. 첫 책을 위해 만든 원고를 백 군데 넘는 출판사에 보냈고 이틀 만에 기적이 일어났다. 계약을 하잔다. 왜 책을 내는데 계약을 해야 하는지도 몰랐지만 어쨌든 연락을 받았으니 믿어지지 않았다. 연락을 받은 후에 부랴부랴 '출판 계약'이라는 단어를 검색하고 인세니, 계약 서니 하는 단어들을 메모하여 약속 장소로 나갔다. 지나고 보니 이건 정말 기적이었다. 글이라곤 일 년에 두 번, 반 아이들 성적표 종합의견 적어줄 때나 겪는 행사 같은 것이었고 원고 쓰는 법은 글로 배웠다. 도서관에서 빌려다 놓은 책 쓰기 관련 책들을 보고 더듬더듬 흉내를 냈을 뿐이다. 그렇게 만든 원고가 계약에 성공했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기적. 나 사는 게 불쌍하여 하나님이 한 번의 기적을 주셨으니 그때가 그때인가 보다. 단 한 번의 기적을 만났고 이후로 어떤 기적도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노력한 만큼, 딱 내가 들인 시간만큼의 정확한 열매가 맺혔다. 출판사에서 모두 거절하여 직접 차린 1인 출판사에서 낸 책이 100만 부 넘게 팔렸다는 '언어의 온도' 같은 기적은 내게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하루하루 치열하게 쓰고 써놓은 글이 맘에 들지 않으면 하루 종일 기분이 엉망이라 괜스레 짜증만 내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의 글 쓰는 이야기, 늘 턱걸이로 책을 내고 그 책은 딱 턱걸이처럼 슬금 팔리다 말지만 그럼에도 그만두지 않고 근근이 글쓰기를 이어가는 사람의 이야기. 이런 사람 이야기라면 귀를 기울여볼 법하지 않은가.


당신에게도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당신도 기적을 원한다면. 


기적은 일어나지 않지만 기적은 일어난다. 

바라는 만큼 시간을 실컷 쏟는다면 말이다. 


글쓰기에 실패하고 글쓰기가 두렵다면 그럼에도 글을 꼭 써야겠다면 새겨들을 만한 이야기를 이제 하나씩 풀어내어보련다. 역시나 두려운 사람일 뿐이지만. 




이은경 Writer

bobguelt@hanmail.net

인스타 @lee.eun.kyung.1221

함께쓰는공간 https://cafe.naver.com/readingwriting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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