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sf
민교 이야기
나로서 존재하기. 이보다 은밀하고 짜릿한, 오로지 나만의, 나에 속한 즐거움이 세상에 달리 어딨겠는가. 그렇다. 난 무엇보다 나를 사랑하는 인간이다. 다른 이들도 모두 나와 비슷한 것을 느낄까? 여러 책을 읽어봤는데,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세상 어떤 사람들은 마치 삶이 고통이며, 살아갈 가치 따위 없다는 걸 설파하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 인간 종에 대한 음모.
나는 소위 말해, 럭키 가이다. 희귀 난치병과 함께 태어났지만, 다행히도 수십 억 돈을 들여 미국에서 치료받을 수 있었고, 대학 졸업 무렵 그 가망성 희박하다는 췌장암 투병에도 성공한 나다. 그렇게 자연스레 병실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나지만, 병실에서 보낸 시간은 마냥 헛된 것이 아니었다. 그야 내 세계의 지평을 열어준 수많은 책과 만날 수 있었으므로.
그렇게 나는 내 행운 그리고 생명의 꿋꿋함에 자부심을 갖고 사람과, 세상 그리고 우주에 대한 흥미로 가득 차게 되었다. 그래, 나의 삶과 생명, 그리고 무한한 시간과 가능성에 대한 욕구와 열망은 분명 태아 시절, 유년기, 그리고 진화의 과정에 있어, 저 모든 것의 뿌리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난 것일 테다.
살아가며 느낀 바로는, 세상은 넓고 그 깊이는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었다. 풍부했으며, 경험해야 할 것이 너무나 많은, 파도 파도 끝이 없는 세계. 새로운 사람과 문화, 기술을 접할 때마다 날 매번 새로운 나를 만나볼 수 있었다. 그렇게 자연스레 세상, 무엇보다, 나를 점점 좋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는 조르바처럼, 내가 천 년 정도는 마땅히 살아야 할 사람인 것처럼 느끼게 되었다. 80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아직도 얼마나 알고 싶은 것과 하고 싶은 것이 많은지. 몸이 삐걱이고 정신의 불연속성을 느낄 때마다, 인생의 프로젝트에 박차를 가한다.
정말이지 시급한 문제
수명을 늘리자. 역노화 연구에 지구의 온갖 자본을 집중시켜야 한다. 우주를 연구할 때가 아니다. 오로지 생명공학. 유전공학 이 필드에 총력전을 치러야 한다. 생명 공학의 암흑기에 빛을 쬐여야 한다. 제법 많은 돈을 들였음에도 유의미한 결과를 가져오는 연구팀은 없었다. 어떤 기술을 동원한다고 한들 130세가 자연적 한계라는 걸 모두 암암리에 인정하고 있는 현실. 그럴 때마다 나는 너무나도 갑갑했고, 산소 결핍을 느꼈다. 태평하고, 느릿느릿하고, 별 걱정 없어 보이는 사람들에 화가 잔뜩 났다.
나는 이렇게 진지한데, 인생이 뭐 한낱 꿈처럼 느껴지는 건가? 가만히 기다리기만 하면 200년 300년, 어쩌면 영원불멸히 살 수 있는 세상이 찾아올 거라는 단꿈을 꾸고 있는 건가? 그런 세상은 그 누구의 손도 아닌 우리 손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일 텐데.
기본 소득에 만족하고 그냥저냥 즐거운 콘텐츠로 자의식을 몽롱하게 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 직접 달과 화성으로 떠나볼 생각은 안 하고, 고해상도 가상현실이나 관찰 예능으로 만족하는 이 무지몽매한 사람들. 아 안 되겠다. 정말 이대로는 안 되겠다.
2050년 기본 소득이 도입되기 직전, 모두의 불안이 인류 역사의 정점을 찍었던 시절만큼 사람들이 불안을 느끼게 만드는 방법은 없을까? 불안과 불만을 증폭시킬 수 있는 가장 훌륭한 기폭제를 찾을 수 있을까.
너무 어려운 일인가. 아니, 모든 경제 시스템을 진두지휘해 모든 인류가 수명 연장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단 하나의 방법이 있다. 어쩌면, 통할지도 모른다.
나의 가장 소중한 것을 위해 너희들의 가장 소중한 것을 거래하자. 나만이 발생시킬 수 있는 문제를 만들고, 나만이 낼 수 있는 해결책을 낸다. 바이러스를 퍼뜨린다. 그리고 그 해독제를 판다. 그것으로 커다란 세계 연합 정부의 금액을 가져오고, 그 해독제 연구에 있어서 노화, 그리고 역노화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것들을 연결시켜 다른 생명공학 관련 회사들 역시 뛰어들게 하는 등 등 다방면으로 연구에 박차를 가한다.
쓸데없는 요소들을 인간의 삶에서 쫙 뺀다. 그들은 역노화 연구가 끝날 때까지, 자신의 몸뚱아리와 시간, 실존을 전부 기꺼이 이 바이러스와의 전쟁에 내주어야 할 것이며 목숨과 자유, 시간의 소중함을 체감하는 귀중한 체험이 될 것이다. 어떻게 하면 백신의 희소성을 올릴까. 어떻게 해야 쇼를 잘 꾸려나갈 수 있을까.
내 머리는 어느 때보다 더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고, 나 자신이 이렇게 사랑스러웠던 적이 없을 정도로 엄청난 계획이 완성되었으며, 모든 일이 순차적으로 곧잘 진행되었다.
민교의 계획대로
"SC-18 신종 변이 바이러스 발견, 이번에도 해결은 역시 MK 제약!"
필히 민교가 흡족해할 만한 뉴스들의 연속이다. 바이러스의 전파 과정에서 발생된 변이의 대부분의 것들은 사실 민교가 의도한 것들이다. 사실 예상 못한 변이도 제법 발견되었기에 민교는 골머리 좀 앓았다.
바이러스의 각종 변이 때문에 백신과 치료제 연구에 세계 연합 정부가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할 정도가 되었다. 다른 분야의 모든 생산과 연구, 공정을 멈춰야 할 지경이었다. 심지어 간편식 외의 가공 및 조리조차 사치가 될 정도였다. 부동산 시장도 전부 엉망이 되었으며, 사람들은 모든 것을 즉시 교환할 수 있는, 현물성 띈 것들로 전환해 두려 혈안이었다.
그 바이러스는 너무나 치명적이었다. 그것은 호흡의 기능을 점차 상실하게 만들었다.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으며, 치료제 우선권을 위해 아이와 약자 먼저라는 사회 운동이 펼쳐졌으나 사실상 우선권은 돈 많은 자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이 역시 민교가 의도하고 계획한 구조였다.
비축해 둔 것이 없는 사람들에게 선택지 따위는 없었다. 여기 초췌한 눈을 뜨고 좀비마냥 팔다리를 달달 떨며, 길거리를 간신히 걸어가는 민수가 있다. 이번에 CH 제약에서 새로운 약물이 준비됐단다. 물론 이 역시 민교가 운영하는 하나의 제약 회사. 생동성 실험으로 인한 리스크는 오로지 민수가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치료제나 식량을 구할 수 없는 처지. 그는 기껏해야 한 마리의 실험용 쥐에 불과했다. 좀처럼 차분해지지 못하고 요란하게 쿵쾅이는 심장, 그리고 그와 대조되게 생기를 잃어버린 육신.
교훈?
훗날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일단 보험으로 돈을 최대한, 잔뜩 비축해 두시라. 자신의 존재와 영혼을 갈아 넣는 한이 있더라도, 생존이 우선 아니겠는가? 아무렴,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게 선이자 최고 가치이니까.
인간의 자연 수명은 38세. 우리는 돈이라는 자원을 통해, 간편하게 훌륭한 영양분을 함유한 음식을 교환해 얻을 수 있고, 세련된 병원에서 의료 서비스를 누린다. 그렇게 우리는 다른 동물과 달리 품위를 가지고 생각보다 오래오래 살 수 있다.
돈이 없어서 건강을 잃고, 빨리 죽을 것인가? 돈 덕분에 건강을 유지한 채, 조금 더 살 것인가? 돈을 벌 기회는 도처에 넘쳐난다. 할 수 있다. 당신의 쓸모를 세상에 증명하라. 절대 가만히 있지 마시라. 가만히 있는다는 것은 죽음에 동의하는 것과 다름없으니. 당신은 사랑스러운 아이와 정신이 예전 같지 못한 부모님의 죽음을 두 눈뜨고 목도할 것인가? 서두르자. 아직은 시간이 있다.
하지만
하지만 민교가 주도한 역노화 연구 진척은 시원찮았으며, 바이러스는 점차 민교의 예상 범주와 통제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덜컥 덜컥 죽어나는 사람들. 픽픽 쓰러지는 사람들. 페스트 이래, 이토록 죽음과 삶이 가까웠던 시절이 있던가.
수많은 아이들의 부모는 죽어가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빠가 미안해... 돈이 없어서, 능력이 없어서. 그동안 너무 게을렀어서... "
하지만 머지않아, 더 이상 돈조차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무한한 돈이 있더라고 해도, 당장의 바이러스를, 죽음을 막아 세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살아서 숨 쉬고 싶었다. 단지 그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엄청나게 사치스러운 소망이 되었다. 그런 세상이 되었다. 죽음을 삶에서 떼어 놓으려는 오만한 사람이 만들어놓은 끔찍한 세상.
더 이상 푸르지 않은 봄
가끔 사람들이 필요 이상으로 미리, 시간과 영혼을 잘라내어 팔고, 자본으로 환전해서 비축해 두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자본주의가 저속 노화와 수명 연장, 그리고 건강을 약속할수록 봄은 푸르른 계절이 아니라 불안의 스산함을 띄는 팍팍한 계절이 되어버리는 건가.
봄에 겨울을 준비하다가는 여름에 다 상해버릴지도, 솔티(Salty).
공기가 있고, 들이쉴 수 있는 건강한 호흡기도 있다. 무엇보다, 오늘은 날이 푸르다. 다만 머지않아, 스스로 호흡하는 방법부터 다시 익혀야 할 세대가 찾아올지도 모른다.
- 에고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