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록, 클라이브 웨어링의 사례
1985년 뇌염으로 인해 심각한 기억 상실증(순행성 및 역행성 건망증)을 앓게 된 클라이브 웨어링은 기억력이 몇 초밖에 지속되지 않아 마치 매 순간 의식이 처음 깨어나는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그는 “나는 드디어 깨어났다.”라는 기록을 반복해서 남깁니다. 그리고 그의 지난 모습을 촬영한 동영상을 그에게 보여주면, 그는 동영상에 나온 남자가 자신임을 강경하게 부정합니다. 그의 자아는 매 순간 새롭게 태어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짧은 주기의 윤회를 겪는 셈입니다. 뇌와 기억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그는 끊임없이 ‘지금 이 순간’에만 존재하는 자아를 경험하며, 그 자아는 이전의 자아와 연결되지 못합니다.
이처럼 ‘나’라는 연속적인 이야기는 기억과 뇌의 특정한 편집 과정을 통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요? 순간에 피고 지는 자아들을 매끄럽게 이어주는 뇌의 내러티브 중심의 처리가 없다면, ‘나’라는 연속적인 느낌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뇌신경해부학자인 질볼트 테일러는 뇌졸증으로 인해 좌뇌의 기능을 잠시 잃어버렸는데, 자신의 몸과 외부의 경계를 구분할 수 없게 되었으며, ‘나’라는 이야기를 지어내는 좌뇌가 완전히 침묵했다고 보고했습니다.
뇌는 순간에 피고 지는 자아들을 내러티브의 틀로 매끄럽게 이어주는 처리를 합니다. 밈 플렉스, ‘나’라는 느낌, ‘주체성을 홍보해야하는 언론부’, 기억 모두가 다 합세해서 일관성과 연속성을 만들어 주고요. 우리는 각기 다른 상황적 자아와 생각 조각들이 매끄러운 연속체라고 느낍니다. 1장에서 함께 본 착시에서, 우리는 언제라도 전체 그림을 한눈에 다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선명하게 볼 수 있는 영역은 좁은 영역이었습니다.
우리의 자아가 연속적인 이미지라는 느낌이 들지만, 실제로 우리가 이 순간 인식(구성)하는 이야기로서의 자아는 그 하나가 전부일 뿐, 그 나머지(과거의 자아, 미래의 자아)가 연속적이라는 것은 느낌으로만 존재하며, 에이 설마하면서 과거의 자아를 돌아볼 때, 과거의 자아 캐릭터는 그제서야 렌더링(텍스트나 이미지로 변환)되는 것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글을 읽을 때도 한 번에 한 페이지나 문단을 통째로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도, “이 단어”에 시선이 닿아야 비로소 단어를 인식할 수 있는 것처럼요.
(배드민턴 채를 구체적으로 한번 생각해보세요. 배드민턴 채의 가로 줄과 세로 줄도 상상하셨나요? 몇 줄씩 있나요? 그 배드민턴 채는 무슨 색인가요? 배드민턴 채의 무게는요? 모든 것은 우리의 깊고 풍부한 내면의 바다에 미리 준비되어 있지 않고, 그때 그때 즉흥적으로 렌더링 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자아는 단일한 것이라거나, 다른 것들과 빈틈없이 연결되어 있는 물리적인 연속체가 아니라는 겁니다. 신경과학자 그레고리 번스에 따르면, “우리는 자신이 생각을 만들어내는 주체라는 순간적인 ‘의식’을 과거와 미래에 자연스럽게 연결하며, ‘나’라는 것과 자아 정체성은 과거, 현재, 미래의 자아(캐릭터나 심부름꾼)를 매끄럽게 연결하는 유용한 환상”입니다. 우리는 다만 언제라도 지금을 살아갑니다.